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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Jun 15. 2022

스스로에게 반창고를 처방 바람

<로켓맨>

실존하는 유명 뮤지션의 일대기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아류 기획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덱스터 플레쳐도,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브라이언 싱어의 뒤를 이어 <보헤미안 랩소디>의 뒷마무리를 담당했던 감독이었지 않은가. 다만 개인적으로 좀 더 <로켓맨>이 불확실해 보였던 것은, 내가 엘튼 존을 잘 모른다는 데에 있었다. 물론 그의 삶에 대해서는 영화가 다 이야기해주고 있으니 별 탈 없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그의 노래들을 잘 모른다고. 기껏해야 <라이온 킹> 넘버들 밖에 모르는데... 하여튼 거기서 오는 불안감이 좀 있었다. 뭘 좀 알아야 즐길 거 아냐.


근데 존나 유치하지만 그럼에도 이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게, 음악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이다. <라이온 킹> 이전 엘튼 존의 노래 한 곡도 몰랐었는데 영화 보는내내 괜시리 흥얼거리게 되더라. 괜히 천재가 아니구나 싶기도 했고. <보헤미안 랩소디>의 노래들이 '어? 이거 어디서 들었는데?'에 가까운 반가움이었다면, <로켓맨>의 노래들은 '초면인 노래들인데도 좋구나'와 같은 흥겨움이었다. 음악 문외한이긴 하지만 엘튼 존 이 양반 정말 장르를 넘나드는 천재였더구만.


노래 자랑은 이쯤하고. 어쨌든 영화니까 드라마를 좀 더 우선시 해서 봐야겠지. 영화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부터 가장 최근까지의 모습을 순차적으로 성실히 펼쳐낸다. 좋은 배우진을 욱여 넣은 만큼 각 캐릭터들 연기 보는 맛이 확실히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기할만한 것은 역시 타이틀 롤을 맡은 테런 에저튼. 사실 <킹스맨>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정도를 기대했던 배우는 아니었는데 확실히 잘하더라. 그러니까, 연기력 자체만 놓고 봐도 훌륭하지만 확실히 연기 욕심과 그 지향성이 있는 듯한 느낌의 배우라는 점에서도 놀랍다. 무엇보다 노래도 잘하고.


<보헤미안 랩소디> 보고나서도 비슷한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일종의 '천재 서사' 자체에는 별로 흥미가 안 생기지만 그 이면에 있는 결핍에 대한 이야기엔 언제나 동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상처받고 부서진 사람들. 난 언제나 그런 사람들에 흥미가 생기고 언제나 그런 사람들에게 마음이 간다. 따스한 말 한마디나 손길 한 번을 건네지 않았던 매정한 아빠. 가까스로 커밍아웃한 아들에게 넌 언제나 영원히 혼자일 거라며 독설을 내뱉는, 그러면서도 짐짓 본인은 스스로에 대해 현실을 직시하는 성격이라고 자평할 것만 같은 엄마.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내 주머니의 돈을 사랑하고 있었던 기생충 같은 매니저까지. 보는내내 빡치게 만드는 주변 인물들을 보며 내가 엘튼 존이었어도 마약 빨았겠다 싶었다.


그런데도 중요한 건, 결국 부서지고 찢어졌더라도 스스로가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대는 다음 세대를 향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다소 오그라드는 말이지만 다른 건 모르겠고 너희가 너희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이 비정한 세상 그 누구도 너희들의 부모가 아닌 이상 그냥 너희를 사랑해주진 않을 거라고. 오히려 깎아내리기 더 바쁠 거라고. 그러니까 사고가 나면 안전벨트와 에어백이 너희를 최소한도 내에서 보호해주듯이, 너희 스스로가 너희를 위한 안전벨트와 에어백이 되어야 한다고. 표현은 어찌해도 상관없다고. "좆까!"여도 되고 "고생했어~"여도 된다고. 어찌되었든 너네가 너네를 가장 먼저 사랑해주지 못하면 이 세상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러지 못할 거라고.


내가 뭐 대단한 현자나 사상가인 것은 아니고, 상술했던 저 표현들 역시 나도 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들이지만. 난 정말로 저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엘튼 존의 상처들은 분명 다른 사람들에 의해 난 것들이다. 그러나 엘튼 존 본인도 스스로에게 반창고를 붙여주지 않았던 죄가 있다. 결국엔 절친한 친구의 말을 듣고나서야 스스로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지 않나. 


<로켓맨> / 덱스터 플레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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