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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Sep 30. 2021

공황과 폭력, 무례와 무력감

<킬링 소프틀리>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를 최대한 궁리해본 것처럼 말하지만 결국은 다 한심한 작태로 귀결되는 두 얼간이. 그 두 얼간이가 중대 사고를 친다. 지들 딴엔 똑똑한 계획이라 생각했지만, 궁극적으로는 허접했던 계획. 동네 큰 손들이 노는 도박장을 털자? 이미 전에 털어먹었다가 사면 아닌 사면을 받았던 놈이 따로 있으니, 이번에 털면 또 그 놈이 배후인 줄 알지 우리는 무사할 것이다-라는 착각. 그러나 이를 담당한 실무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간단한 해결법이 있었다. 예전 그 놈도 줘패고, 이번 놈들도 줘패자는 것. 그리고 이 말에는 놀랍게도 설득력이 있었다. 현행범은 현행범대로 처벌하고, 전범은 전범대로 또 처벌해야 앞으로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것. 납득가능하되 한편으로는 좀 냉혹하게 까지 느껴지는 해결책. 하여간 그 두 얼간이 놈들 때문에 지금 잘 살고 있던 마키는 전범으로서 뒤늦은 처벌을 받는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실무자이자 해결사는 일견 친절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나 결국엔 냉혹하고 무자비한 사람이다. 어쩔 수 없이 윗분들 말씀에 따르면서도, 살인을 저지를 때는 최대한 덜 감정적으로 깔끔하고 부드럽게 죽이고 싶다는 그의 태도. 어쩐지, 국가공무원이나 은행원의 마인드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리차드 젠킨스가 연기한 중간책은 또 어떤가. 그는 상급자와 실무자 사이에서 답답한 소리나 해대는 우유부단의 아이콘 같은 사람이다. 제임스 갠돌피니가 연기한 킬러 역시 마찬가지. 그는 술과 섹스에 쩔어 공황을 겪는 사람이지. 여기에 벤 멘델슨의 약쟁이와 스콧 멕네이리의 애송이가 끼어든다. 어느 하나 정상적인 사람이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국내 개봉은 2013년이고 미국 본토 개봉은 2012년 연말이었다. 그러나 제작 과정까지 생각하면 적어도 2009년이나 2010년 쯤엔 기획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된 2008년 미국의 금융 위기가 이 영화의 직접적인 배경이란 것을. 영화도 이를 애써 숨기려 들지는 않는다. 영화는 인물들 뒤로 황량하고 황폐한 미국의 풍경을 전시하기 바쁘다. 주인공들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아니, 각종 헛짓거리들을 벌이다 비참하다면 비참하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허무하게 죽어나간다. 그리고 이 곳곳을 벽돌 사이 시멘트 바르듯 채워넣어진 TV 뉴스 속 정치인들의 감언이설. 우리는 모두 하나고, 미국은 버틸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미 그 아래 사람들은 균열되다 못해 붕괴된 현실. <킬링 소프틀리>는 21세기 극초반, 무너진 미국에 남은 것은 공황과 폭력, 무례와 무력감 뿐이라고 말하는 영화다. 

<킬링 소프틀리> / 앤드류 도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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