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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Jun 15. 2022

싸우는 이유를 잊지말자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아론 소킨이 각본을 쓰고 직접 연출까지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실화 소재라는 점에서는 <소셜 네트워크>와 <머니 볼>이 떠오르고, 법정 드라마라는 점에서는 <어 퓨 굿맨>이 연상된다. 뭐, 다 보고나서 하는 말이지만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이 그 세 영화들보다 더 훌륭하다곤 못하겠다. 그러나 그 자체로 충분히 완성도 있는 영화를 아론 소킨은 연출해냈다. 꼼꼼하게 조율해낸 대과거와 과거를 통해, 관객들이 현재를 직시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영화. 영화 속 말마따나 화면 안엔 60년대가, 화면 밖엔 2020년대가 존재하고 있는 걸 확인시켜주는 영화.


아론 소킨이 각본과 연출을 겸했으니, 어느정도 리버럴한 성향의 법정 드라마가 나올 것이란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영화가 그 근간으로 삼고 있는 역사 속 실제 이야기도 그렇고. 뭐, 리버럴 법정 드라마인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거대하고 이미 단단해서 절대로 깨뜨릴 수 없을 것처럼만 보이는 국가 등의 거대 권력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관철 시키고자 투쟁을 벌이는 개개인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고 재미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야기가 유명한 건 그게 성경에 쓰여 있어서만이 아니다. 그 자체로 존나 재밌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절대로 꺾을 수 없을 것만 같던 강대한 적을 기어코 끌어 내리고야마는, 결국 바위를 개뜨려버리는 달걀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통쾌하지 않은가.


다만 미리 걱정했던 것은, 그 과정을 너무 낭만적으로만 묘사할까봐. 앞서 말해 워낙 뻔한 이야기인지라, 그 타오르는 감정의 불꽃들로만 영화를 진행시켜나간다면 그 진부함에 오히려 더 치를 떨게 될 터이니. 딱 그 정도를 걱정한 것이었다. 허나 아론 소킨은 자신의 글솜씨를 절륜하게 쓴다. 결과적으로는 통쾌함을 담보하는 이야기지만, 아론 소킨은 그 달걀들 사이의 인간적 문제와 그로인한 실수 등을 감추거나 가리지 않는다. 되려 그들의 무능과 무절제한 흥분을 더 가감없이 드러낸다. 그러므로써 얻게 되는 묘한 균형. 그 균형적 감각이 영화에 짙게 베어있었다. 확실히 이건 좀 의외다.


어떤 싸움이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본질을 잊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망각과 자기기만의 동물인 인간이기에, 명분 있고 논리적인 출발을 했을지는 몰라도 싸움이 길어지고 또 지루해질 수록 이후엔 그것이 점점 변질되거나 부패하기 마련이다. 제일 최악의 경우는, 그 본질 자체를 잊는 것이겠지. 문제는 그렇게 싸우다간 정작 싸웠던 이유를 잃게 된다는 것이고, 때문에 끝내 이겼을지라도 본래 목적이 희미해 진다는 것이다.


바로 그 점에서,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의 결말은 유의미하다. 진보와 보수, 젊은이와 늙은이, 남과 여,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백인과 흑인 등등 서로를 다르게끔 보이게 하는 모든 걸 떠나서. 우리가 왜 싸우고 있는지, 왜 싸워야 하는지를 잊지 않는 것. 이 감정의 불길과 이 역사의 큰 물줄기가 각각 어떤 발화점과 어느 수원지에서 시작되었는지를 굳게 마음 속에다 새기는 것. 그 정신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결기 같은 것이 영화의 결말부에 느껴져서 괜시리 마음이 뜨거웠다.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 아론 소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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