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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Mar 02. 2023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타르>

전락에서도 스펙터클을 찾을 수 있다면. <타르>는 그 증거가 되어주고, 그 안에서도 특히나 명연으로 빚어낸 케이트 블란쳇의 표정은 또렷한 실증으로 남는다. 모든 것을 다 가진채 정상에서 군림하던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서 특이점을 맞고, 그로인해 점점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다는 몰락의 서사는 지금까지 흔했다. 하지만 그 짐짓 뻔해보이는 서사에 케이트 블란쳇은 스스로를 온전히 던져냄으로써, 그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야기도 특별한 것처럼 보이게끔 <타르>를 빚어냈다. 감독과 작가를 넘어, 거장이 된 배우를 오롯이 끌어안아보는 경험. <타르>는 그야말로 케이트 블란쳇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하다. 


리디아 타르는 모든 것을 가졌다. 세계적인 지휘자로서의 명성은 그녀를 바쁘게 만들어주었고, 또 원하는 것만 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었으며, 자신만의 잣대로 남들 또한 평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녀는 크고 넓어 때때로 그 빈 공간들이 무섭게 느껴질 정도인 집에 산다. 사랑하는 연인,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 여기에 그녀에겐 따로 작업할만한 작업실도 존재하고, 또 조용하고 빠른 고급 스포츠카도 있다. 그렇게 그녀는 정말로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다 누리는 듯 보인다. 그런데도 왜 그녀는 시종일관 불안에 떠는 것일까? 왜 잠을 자다가 알 수 없는 소음에 눈을 뜨고, 왜 메트로놈의 정박자에 정신을 놓으며, 도대체 왜 지하실에서 홀로 도망치다 넘어지는 것일까? 그저 그녀가 자신의 업계에서 1인자이기 때문에? 1인자의 신경질적인 고독함, 뭐 그런 건가? 


영화는 그 자리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은 뒤 그저 공백으로만 채웠다. 그러니까, 결국 그 구멍 안 공백에 대한 질문은 순전히 관객들 몫이다. 자살한 과거의 제자가 써두었던 유언처럼, 그녀는 정말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사람들을 멋대로 부리는 사람일까? 정말로 자신이 가진 것을 활용해 상대의 감정을 홀랑 벗겨먹는 사람일까? 정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통해 협박해서 제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일까? 리디아는 그런 사람인 것일까? 감독과 작가, 심지어는 해당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배우조차 그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읊조려 주지 않는다. 정말로? 정말로 리디아는 그런 사람인 걸까? 그렇담 그녀가 겪은 그 모든 파국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을 넘어 업보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물론 계속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영화가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주고 있지 않기에, 어쩌면 리디아는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일에 출중 했을 뿐인데, 그런 리디아를 시기한 몇몇 사람들의 거짓말로 인해 이런 사단이 벌어진 것일 수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그 끝을 향해 갈수록, 관객들의 머릿속에는 리디아를 향한 더 강력한 의심들이 들어차 마구 증식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리디아 타르는 <위플래쉬>의 테런스 플레쳐의 훨씬 부드러운 버전으로 관객들 뇌리에 각인된다. 


듣기로, 서구권에 'Tarr'이란 성씨는 존재하지만 'Tar'은 존재하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보기 힘든 성씨라고 했다. 그런데 왜 굳이 영화는 주인공의 LAST NAME 빈 칸에 'Tarr'가 아닌 'Tar'을 썼을까. 'Tar', 그러니까 타르라고 했을 때 보통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점성을 가진 검은색의 액체이다. 그것은 아스팔트에 쓰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 하나의 못을 이뤄 과거 여러 고대 생물들을 빠뜨려 조금씩 천천히 죽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발암 물질이고. 여기에 <타르>는 애너그램으로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덧댄다. 'Tar'은 'Art'가 될 수도 있고 'Rat'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리디아 타르는 과연, 순수하게 '예술'에 헌신했던 억울한 피해자였을까? 아니면 '쥐'처럼 여러 타인들을 물어뜯고 옥죄이며 업계를 흐트러뜨린 가해자였을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그리고 그 불안은 걱정과 우려의 심리적 발현이다. 리디아 타르는 1인자로서 불안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1인자로서 저질렀던 과거의 만행들 때문에 불안했던 것일 수도 있는, 완전히 반대의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그녀가 그토록 불안에 떨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녀를 밤에 잠 못 들게 만들었을까? 예술가인지 쥐새끼인지 모를 그녀에게, 불안이 검은 타르처럼 흘러넘친다. 


<타르> / 토드 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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