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EKOON Feb 02. 2023

나라고 달랐을까?

<나르비크>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전략적 요충지였던 노르웨이의 나르비크. 이 작은 마을을 차지하기 위해 나치 독일군이 몰려든다. 기세등등 하다못해 마치 제대로 맞붙기도 전에 이미 승리라도 한 것인양 당당히 구는 독일군 앞에, 나르비크를 수비하고 있던 노르웨이군은 후일을 도모하며 빠른 걸음으로 퇴각을 서두른다. 그렇다면 지금 수비대도 없는 나르비크에 남은 것은 누구인가.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그것은 무력한 민간인들이고 이들은 어찌되었든 자기 눈앞의 생을 살아내야만 하는 처지에 처한다. 


사실 <나르비크>는 전쟁 영화적 스펙터클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영화다. 연합군 측 영국함대와 독일함대 사이의 치열한 공방전은 극중 인물들의 대사로만 그 구체성을 띌 뿐, 그것이 실제 화면에 비치는 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클로즈업 없이 와이드한 앵글로만 전달되기 때문에, 스펙터클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뒷배경의 이야기로만 따로 보이는 정도. 여기에 나르비크를 다시 수복하려는 노르웨이군과 프랑스군 연합, 그리고 독일군 사이 전투 장면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 또한 그다지 스펙터클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제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전쟁 장르 영화로써 응당 해야할 숙제를 설렁설렁하는 것처럼 느껴질뿐. 


그래서였을까, <나르비크>의 초점은 다른 곳으로 튄다. <나르비크>는 전쟁 영화가 아니라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일 뿐인 것이다. 영화가 더 깊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언뜻 보면 주인공처럼 보이는 노르웨이군 소속 군인 군나르가 아니라, 그의 아내이자 한 아들의 엄마인 잉리드다. 잉리드는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영국의 주요 인사들을 숨겨주고 또 나름의 첩보 활동을 하는 등 자신의 조국을 침탈 하러 온 독일군에 맞서 이른바 애국적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마을을 중심으로 한 공방전이 치열하게 가속될 수록 그녀는 많은 것을 잃어가며 애국자로서의 자신을 조금씩 내려놓는다. 처음엔 군인인 남편이 끌려갔고, 나중엔 잘못 떨어진 포탄에 시아버지를 잃었으며, 이후엔 하나뿐인 아들이 시나브로 죽어가는 것을 목도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일하게 남은 희망인 아들을 살려내기 위해 그녀는 끝내 자신이 숨겨주는데에 일조 했었던 영국 인사들을 독일군에 밀고 하고야 만다. 


인류의 역사는 반복되고, 그 안의 디테일 또한 동서고금을 막론한채 구천을 떠돈다. 저 먼 이역만리의 노르웨이 이야기가 꼭 아니더라도, 우리 또한 비슷한 역사를 치렀고 또 그 안에서 비슷한 상황을 발견하지 않았었나. 적극적인 애국이나 적극적인 매국 둘 중 하나를 벗어나 그저 살기 위해, 또 그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저질렀던 여러가지 일들. 예컨대 가족을 죽이겠단 겁박에 숨겨주었던 애국투사들을 일제에 넘긴다거나 했던 일들. 물론 그 같은 행태들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만 일견 이해가 된단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나라고 달랐을까? 내 목숨과 내 가족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나라고 달랐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을 옹호하진 않지만, 적어도 막무가내식 비난을 할 순 없을 것 같다. 오히려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은채 끝까지 나라와의 의리를 지킨 사람들을 더 대단히 여기게 될 뿐. 


내가 이해하고 자시고를 떠나, <나르비크>는 딱 하나만을 중요하다 제시한다. 가족의 사랑. 그리고 자신을 위해 상대가 그런 선택까지 했다는 걸 어느 정도는 이해해주는 것. 전투가 끝나고 노르웨이군에 의해 나르비크가 수복된 이후, 잉리드는 동네 사람들에게 화냥년 취급을 당한다. 독일 간부와 붙어먹고 나라를 팔아 먹었다는 것. 갖은 고초를 겪으며 아들을 살려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매국노라는 욕지거리 뿐. 이에 나르비크로 갓 돌아온 군나르 역시 처음엔 그녀를 비난하지만, 영화의 결말부에 이르러선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그저 그녀를 안아주는 것으로 그 모든 걸 대신한다. 그런 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이 아닐까-하고 되뇌어본다.


<나르비크> / 에리크 숄베르그


이전 15화 인간이란 존재를 믿고 싶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