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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Dec 06. 2023

핏줄이 아니라 추억으로 묶이는 것

<퀴즈 레이디>

누가 뭐래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꼭 피가 섞였다고 해서 가족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고. 위대한 모성과 부성은 아이를 낳는 순간 자연히 생기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맹신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그걸 순진하게 믿기엔 세상에 그 반대의 경우가 너무도 많다. 오늘도 TV 뉴스에서 자신의 15개월짜리 딸을 창밖으로 홧김에 내던진 엄마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또, 비록 피는 섞이지 않은 경우이겠지만 부부싸움을 하다 둔기로 자신의 아내를 패죽인 남편에 대한 소식 또한 들었고 말이다.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건 친구나 연인 같은 다른 인간 관계에서도 모두 통용되는 말이겠지만, 가족에 있어서도 결국 중요한 건 서로에 대한 태도와 그 기억이라고. 피가 섞였다고 자연히 친해질 수, 존경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게 진리였다면 세상에 앞서 말했던 그런 사건들은 없었겠지. '가정폭력'이란 단어 역시 당연히 없었을 것이고 말이다. 


본디 버디 무비라면, 짝꿍으로 짝지어진 두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이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퀴즈 레이디>의 제니와 앤도 마찬가지. 언니인 제니는 관심사가 시시각각 바뀌는 사람으로, 나쁘게 말하면 꾸준함과 성실함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타입. 어디로 튈지 모르는데다가 가끔 보면 공적인 의미에서의 예의도 잘 모르는 사람 같다. 반대로 동생인 앤은 굉장히 소심한 타입으로, 어딜 가서나 주목 받길 싫어해 심지어는 자신의 당연한 권리도 주장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왈가닥 언니와 소심한 동생의 로드 트립이라니, 버디 무비로써 갖출 건 다 갖춘 셈. 


하지만 <퀴즈 레이디>는 두 자매를 다룬 버디 무비로써 제 역할을 다하면서도, 가족에 있어 결국 중요한 건 추억이란 이야기까지 잘 말하고 있는 영화다. 결코 맞닿을 수 없을 것만 같던 두 자매는, 과거 서로가 서로를 위해 행했던 추억들을 꺼내며 가까워진다. 부모님의 이혼 이후 잠깐 얹혀살게 되었던 친척의 집. 그 집에 무한한 불편함을 느꼈노라 앤이 고백하자, 이에 다소 홧김이긴 했지만 제니 역시 실은 그를 알고 있었다며 자신이 도와준 부분도 있었노라 귀여운 생색을 낸다. 그리고 결국 함께 방송에 나가 파트너로서 퀴즈 챔피언의 자리를 따게 된다. 옛날에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비록 망할 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함께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보자-라고 말하며 언니인 제니를 무대 위로 끌어올린 앤. 그 둘이 퀴즈 챔피언이 된 비법은 가족으로서 둘만이 공유하고 있는 추억을 경유해 퀴즈를 푸는 것이었다. 


정반대 스타일이던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다 끝내 퀴즈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리란 것. 영화의 시놉시스와 예고편만 보아도 우리는 충분히 다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퀴즈 레이디>는 그 뻔한 길을 뚜벅뚜벅 그냥 걸어가면서도, 시종일관 귀엽고 훈훈한 모습을 보여 보는 이를 따스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 할리우드를 이끌어가고 있는 두 한국계 여성 배우의 활약이 보는 재미를 가중시킨다. 특별한 건, 평소의 연기 이력으로만 본다면 산드라 오와 아콰피나의 역할이 바뀐 것처럼 보인다는 거. 본래 이런 기획이었다면 산드라 오가 제정신인 언니 역할을, 아콰피나가 왈가닥 동생 역할을 했을 것 같다. 하지만 <퀴즈 레이디>는 그 반대의 역할을 각 배우에게 부여함으로써 오히려 두 사람의 매력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피가 섞였다면 법적, 사회적 의미에서 가족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작은 그랬을지언정, 그 가족됨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함께한 추억이다. 그 추억의 빛깔 여부에 따라 어떤 가족은 더 끈끈해질 것이고, 또 어떤 가족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은채 단절된 삶을 살게 되겠지. 그런 의미에서, 제니와 앤이 추억으로 말미암아 서로를 다시 발견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많이 뻔하고, 무척 전형적인 영화였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이 다시금 가족이 되어 기뻤다. 


<퀴즈 레이디> / 제시카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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