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에게>
그리움이 서린 삶. 왠지 모르게 슬퍼보였던 한국의 윤희와 일본의 쥰. 그 둘에게 서린 실체 없는 슬픔이 어디서부터 연유한 것인지에 대해서, 영화는 쉽게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그저 둘 사이에 이런 일이 있지 않았을까-하고 추측 하게만 할뿐. 그 둘의 사랑과 이별은 영화가 비추지 않은 과거에만 있다. 현재 영화상에서 그 둘에게 존재하는 것은 오롯이 남겨진 그리움 하나뿐.
<미드나잇 인 파리> 속 파리가 낭만의 도시, <만추> 속 시애틀이 쓸쓸한 도시, <무간도>의 홍콩이 비정한 도시라면, <윤희에게>의 오타루는 그리움의 도시다. 윤희와 쥰, 두 여자는 서로를 그리워한다. 다시 보고파하고, 다시 만나 이야기 나누고파 한다. 하지만 세상의 잣대에 눌린 건지 아니면 스스로의 잣대에 눌린 건지, 둘은 좀처럼 서로를 향해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한다. 그러던 중 오타루에 살고 있는 쥰이 먼저 편지를 써보낸다, 윤희에게. 물론 쓴 건 쥰이지만, 정작 그걸 한국으로 부친 건 쥰의 고모. 허나 어쨌든 손을 먼저 내민 것은 오타루이지 않나. 그래서 오타루는 그리움이 켜켜이 쌓이는 동시에 그 그리움이 눈녹듯 해소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일본 오타루에 사는 쥰의 고모는 매번 말한다. '이 눈이 언제쯤 그칠까?' 한국 예산에 사는 새봄은 윤희에게 또 말한다. '엄마, 우리 눈 많이 오는 곳으로 여행갈까?' 이 영화에서 시종일관 줄기차게 내리는 눈은 윤희와 쥰의 그리움이다. 그리고 자신의 딸에게 담배를 끊으라 말하며 정작 스스로는 담배를 태우는 윤희의 모습. 윤희는 영화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골목 전봇대 뒤에 숨어서 몰래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윤희가, 이제는 대놓고 담배를 태운다. 맞다. 담배는 윤희의 본질이자 또다른 그리움의 형태다. 윤희는 오타루로 건너온 뒤부터 담배를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쥰은 그녀 고모를 이어받아, '이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라 말한다.
이제 그 둘은 담배를 피울 것이고, 눈은 녹을 것이다. 다시 쌓일지라도. 결국 <윤희에게>는, 그리움이 눈처럼 쌓이고 담배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영화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