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닿기도 전에 통보받은 부고들

<아이리시맨>

by CINEKOON

영화는 내내 극중 인물들의 부고를 전한다. 재밌는 건, 해당 인물이 채 죽기도 전에 관객들에게 그 부고가 전해진다는 것이다.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 조 페시가 각각 연기한 주요 인물 3인방을 제외하고 어떤 인물이 화면에 첫 등장 하게 되면, 그 아래 자막으로 그 인물이 나중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는지가 나온다. 더 재밌는 건, 화면에 등장해 그 자막을 받게 되는 인물들의 얼굴 표정이나 상태가 하나같이 다 열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술잔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등장한다. 하지만 그 밑엔 자막으로 그의 부고가 뜬다. 또 어떤 사람은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며 의자에 앉아 등장한다. 그리고 그 밑엔 어김없이, 그의 부고가 뜬다. 결과론적으로 이는, 이 무시무시한 남자들 모두 끝에 가선 시시하게 죽을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리고 세 시간 반에 걸쳐 수십 명의 부고들을 연이어 받았던 관객들의 처지에, 영화 후반부 로버트 드 니로의 프랭크가 합류한다. 프랭크는 지미를 믿었고, 좋아했고, 가까웠고, 존경했고, 또 사랑했다. 하지만 러셀은 지미에 대한 프랭크의 그런 감정들을 알고 있었음에도, 프랭크에게 지미를 죽이란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로버트 드 니로라는 대배우의 진가가 다시금 드러난다. 그 짧은 시간, 그 짧은 순간동안 불길하게 움직이는 조그마한 눈동자. 프랭크는 지미의 부고를 받은 것이다. 지미가 죽기도 전에, 프랭크는 지미의 사인을 알 것 같았다. 총격에 의한 사망. 그리고 프랭크는, 지미가 죽기도 전에 그를 죽인 그 범인 역시 알 수 있었다. 그건 프랭크 자신이었을테니까.



그래서 나는 <아이리시맨>이, 미처 닿기도 전에 통보 받은 부고들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삶에는 불가항력이 존재한다. 그 중 가장 강한 건 역시 '죽음'이겠지. 그런데 그 죽음을 미리 아는 것. 그게 좋기만 한 일일까? 남의 죽음들을 계속 보고 또 보내고도, 덩그러니 남아 그 삶을 여전히 살아내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외롭지 않을까. 그게 좋기만 한 일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마틴 스콜세지와 로버트 드 니로는 프랭크가 지미의 아내에게 전화하는 장면, 그리고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그저 보여 준다. 그래서, 그게 좋기만 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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