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낼 시간>
그래도 한 때는 나름 이름을 날렸던 아이돌 출신의 세 사람. 하지만 이른 나이의 데뷔는 모두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들었고, 꿈을 함께 시작했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하나둘씩 떠나갔다. 불합리한 계약 조항과 일방적인 팀 해체 통보로 향후 몇 년을 회사에 저당잡힌 태희. 그리고 같은 팀 멤버의 죽음 이후로 마음이 무너져버린 사랑과, 그런 그녀를 돌보느라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하는 팀의 전직 리더 수민까지. 세 사람은 그동안의 실패를 스스로 위로하기라도 하려는 듯, 단돈 98만 원을 쥐고 제주도 여행을 떠난다.
파티는 그 준비부터 즐겁다. 장소를 꾸미고, 어떤 음식을 어느 접시에 담아먹을지 고민하며 친구들을 초대하는 시간. 이어지는 파티 자체도 역시나 재미있고. 하지만 언제나 손님 치른 직후가 문제다. 시끌벅적 손님들이 우르르 떠난 직후의 그 고요함. 그리고 그 안에 은연히 깃든 왠지모를 상실감. 파티는 짧은데 식탁을 치우고 쓴 접시들을 설거지하는 건 왜이리도 길고 고단한가. <힘을 낼 시간>은 그 파티 이후의 모습을 맞이한 세 주인공을 통해, 하나의 파티가 끝났다고 해서 그게 인생의 전부는 건 아니란 사실을 조근조근 이야기한다.
한창 공부하고 또 놀고 즐거워야할 20대 중반이란 나이. 하지만 너무 일찍 실패의 쓴맛을 경험해버린 세 청년들. 그들은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잃어버리고, 또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식당 옆자리에서 수근대던 사람의 뒷통수를 때려 그나마 갖고 있던 98만 원도 합의금으로 모두 날려 버린다. 그렇게 여행와서까지 감귤 따는 일을 하며 일급을 받게 되는 세 사람. 여행도 일이 되는 비극. 아니, 어쩌면 인생 자체가 실은 하나의 길고 거대한 연속 업무일지도 모른다.
극중 수민은 자신들이 과거에 아이돌이었단 사실을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드러내길 싫어한다. 더더군다나 죽은 팀 멤버에 대한 이야기는 더더욱. 그래서 함께 여행을 온 태희 뿐만 아니라 제주도에서 그녀와 마주친 사람들 모두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린다.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거나 대화 주제를 다른 쪽으로 홱 돌려버리거나.
이는 당연히 이해가 된다. 수민은 자신이 실패했단 사실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가까운 사이였던 팀 멤버의 죽음에 대해 구태여 왈가왈부하며 다시 그녀를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는 그녀가 당연히 존중받아야할 부분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옛말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정말로 맞다 여긴다. 아픔을 자꾸만 폐쇄적으로 혼자 이고지게 되면 그건 그저 더욱 커질 뿐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용기내어 먼저 말해주는 마음을 베풀어준다면, 당신 역시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올 수 있다. 수민과 사랑, 태희 세 사람의 테두리에 끝내 소윤이 들어와 ‘우리’를 완성했던 것처럼.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우리’로 남아있다면 언젠가 그 뜨거운 여름밤 역시 다시 돌아오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