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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Jun 04. 2021

[출간전 연재] 이게머선 129?!

끈기 없는 프로이직러 90년대생이 되다

*본 글은 종이책 출간 전 발행 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향후 출판 서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20-2021 중반까지 발생한 근황


2020년 새해부터 정신이 없었다.

코로나가 스멀스멀 기승을 부릴 때쯤 설날 휴가로 남편과 같이 한국에 들어왔다가 나는 NGO 국제보건 사업 담당자로 취업이 되고, 남편은 돈벌이를 하러 다시 중국으로 복귀했다.


중간에 비자가 만료되고, 코로나가 어느 정도 안정될 때까지 중국에서 새 비자를 주지 않아 강제 기러기 부부로 8개월을 보냈다.


코로나, 코로나, 그것은 내 업무도, 개인생활도 마비시켰다.

고민 끝에 나는 이직을, 남편은 사직을 결심하고 2020년 10월에 감격스러운 상봉을 하고 일하는 외벌이 와이프로, 살림하는 남편으로 각자의 포지션을 잡았다.



임기제 공무원 지원과 면접

위와 같은 이유와 방법으로 새로운 10개월의 NGO 경력을 뒤로하고 공무원의 길로 들어섰다. 2020년 들어 가장 핫한 '역학조사관' 업무를 시작했다. 그전까지 역학이란 연구계획서, 교과서, 논문에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존재였는데 말 그대로 역학;역으로 추적하는 일로 바뀌었다.  


구구절절 설명보단 뉴스를 보시라.

그 뉴스들에서 비추는 모습과 98% 흡사하게 일을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뉴스에서는 피곤하고 불쌍하게 보이는 보건소 공무원들이 실제로는 번아웃으로 늘 화가 나고 불안해 보이는 모습으로 찌들어 살고 있었다.


전쟁통에도 애는 생긴다는 말처럼 일이 잘 맞았던 건지, 포지션을 바꾼 우리 부부가 합이 잘 맞았던 건지, 덜컥(뱃속 당사자에겐 미안한 표현이지만 사실이 그랬다) 아가가 방문해주었다. 가족계획은 실패(?!)했지만 별다른 수고 없이 생겨나 주고, 주 7일이라는 악질적인 스케줄에도 어디 하나 이상 없이 매우 잘 커주어 기특하게 여기며 슬슬 미래에 대한 현실적 고민들이 총알처럼 날아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임신한 몸은 역시 보통 사람의 3/1 고갈된 체력으로 살아가는 상태였다. 

겪어보니 알겠더라, 는 심정이다. 세대를 막론하고 '임신한 여자가 못한다고 하면 편견이 더 생길 거야. 똑같이 해내야 해.'라는 마음가짐이 육아까지 연결되어 일하는 여성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있는 것 같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고 개와 고양이가 다른 것처럼 고유성이 있는 부분은 깡그리 무시하고 비임신 여성, 일반 남성과 똑같이 해내야 한다는 의무감은 DNA로 가지고 있는 것인지 참 연구대상이다.


입덧 약 먹으며 대소변 볼 시간에 변기통에 토하며 오히려 식욕이 줄어서 일할 시간이 생겼으니 좀 힘들어도 완주할 것이다, 는 호기인지 오기인지 모르게 열심히 달려왔다. 


임신 6주 차에 처음 두줄 스틱 확인하고, 산부인과에 진단서를 받은 뒤로부턴 야밤에 확진자를 받는 일(퇴근 후 자정까지 뜨는 확진자에게 기초 역학 조사하고 전산 올리기 at home)에서 살짝 배제되었으나 너무 많이 나올 때는 달라붙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주말과 평일의 경계가 없어지고 주 6.75일 내지 7일을 석 달간 했다. 입덧과 함께한 시간들이었다. 일에 집중할 때는 토하고 싶은 기분을 잊고 거짓말하고 욕하는 민원인들에게 온 신경을 쓸 수 있어 나름 살만했다. 


살림하시는 분이 기사도 되어 자차로 출퇴근시켜주시고 밥해주시고 집안일해주셔서 남편이 없으면 빨래 하나 돌리지 못하는 '무능력한' 인간이 되었다.


별 이상 없을 거라 자부한 몸이 슬슬 삐걱대더니 이제 좀 그만하라고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무시할 수 있을지언정 의사 선생님과 남편은 그럴 수가 없었다. 


천사 같은 산부인과 주치의 선생님, 

"일을 몇 시간 하신다고요?!!"

"그거 가만히 앉아서 서류만 보는 게 아니라 전화로 엄청 시달리시잖아요."

"아냐..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에요. 둘 다 양립할 수 없는 순간도 있어요. 하나는 포기하셔야 해요."


내조의 왕 남편,

"출산휴가까지 4개월을 버티긴 하겠지. 그 사이 몸 안 좋아지면 그 뒤엔 더 포기하기 힘들어져. 이제 그만해야 될 것 같아."

"애 중요하지. 근데 지금처럼 일하면 아이뿐만 아니라 너도 나중에 탈 나."


결론은 '그만해라.'였다.


물론, 그만하라고 종용하기 전에 조건을 걸어두긴 했다. 

1) 하루 8시간 내로 쉬엄쉬엄 일할 것

2) 확진자가 너무 많아도 너의 할 일만 하고 퇴근하고 덮어둘 것

3) 스트레스를 받지 말 것


뭐, 저것은 마치 내일 코로나가 끝나면 계속 다닐 수 있다는 내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게 말이 되나.

고집을 부리고 싶었지만 본능적인 몸의 상태가 호전적이지 못하니 내 한계는 여기까지, 하고 선을 긋고 작별인사를 했다.


12월부터 지금까지 더 힘든 상황도 겪어냈건만 후회할 것 같진 않았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내 인생이 제일 중요하고, 내 경력과 수입이 소중하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이가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야속한 일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몸은 예상보다 힘들었으나 작은 콩알 때문에 내 인생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무언가가 나를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의 선택이 꼭 요 콩알 때문이라고 해도 후회보단 두고두고 고마워할 것 같다. 


말랑말랑한 모성애보단 그냥 이렇게 살게 되어 정방향으로 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또 그만뒀다.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되었다가 복귀하면서 이젠 진짜 오래 일할 거야, 하는 직장을 1년도 못 채우고

한번 퇴사, 다음 해 또 퇴사, 조각도 아닌 나노 경력이 2개나 더 늘어났다.


정말 이게 머선 일이고(129)(=무슨 일이냐)였다.

이력만 대충 훑어봐도 일 우습게 알고 잘난 것도 없는 게 이상한 경력 좀 쌓고 외국어 점수 쫌 있다고 지 입맛에 안 맞을 때마다 그만두는 형국이다.


이제 나를 받아줄 건 뱃속 아기가 육아해달라고 팔 벌리는 게 전부겠지, 몸도 무거워지는데 몇 년 육아하다 애기 유치원 가면 취업 나서야겠지 하고 생각할 무렵, 나에게 손 내밀어 자리가 있다 하시는 전전 직장 상사님의 소식을 알게 되어 기다리고 있었다.


퇴삿날 연락드려보니 자리가 있으니 언제부터 가능하시냐 하여 2주 쉬고 가능하다 했고 접수하셨다.


남편은 내가 가게 될 직장 근처로 서류를 냈고 그저 야근 없고 주말 근무 없는 곳이면 된다는 제안으로 단번에 취업이 됐다.


사실, 사직을 하면서 몸이 힘들기도 하니 일을 나가지 말까, 생각도 들었는데 남편이 극구 반대했다. 경험을 통해 깨달은 와이프라는 사람의 특성 때문이었다. 


남편과 크게 싸운 내용 중 대개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었다. 일은 일이고, 회사가 어쩔 수 없이 일이 많고 눈치가 보여도 돈 받고 하는 일로 치부해야 하는 사람이다. 책임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의 관점이 달랐다. 반대편에 있는 와이프는 일은 하루 일과 중 80%를 차지한다는 개념으로 맘에 들고 적절히 능력치 끌어올리는 업무를 택해서 신생아처럼 끼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사는 게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고 남편이 증언했다. 


"일을 하면서 생기가 돌다니, 이해는 할 수 없어도 신기하게 납득은 간다."


보건소에서 의원면직(공무원 퇴사의 다른 말) 한다 했을 때도 날 붙잡은 말은, "넌 이 일을 좋아하니까 다녀야 해."였다. 대충 봐도 일하면서 생생해 보인다는 뜻일 것이다.


약간 미친것 같아 보인다고 나조차도 수긍할 때가 있었다. 

밤 8시경에 퇴근해서 토한다고 화장실 달려가서 빈속에 위액을 쏟아내고 씻을 힘도 없어서 화장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는데 띠링띠링 확진자 결과 나왔다고 일하라는 알림이 울리길래 옷도 안 벗고 컴퓨터 방으로 일하러 들어갔는데 1시간 정도 일을 하는 동안 쌩쌩해지더니 태연히 나와 샤워하고 기절했다. 


그리고 아침에 죽을 것 같다고 끙끙대는 걸 보면서 남편도, 나도 '이건 정말 의도하고 일을 좋아해야지, 하고 맘먹은 게 아니라 본능이다. 이건 찐이다.' 하고 생각했다. 


일련의 시간들 속에서 남편은 확고해졌다. 

"너는 바깥일이 메인이고, 나는 가정일이 메인이다. 아이가 나와서 돌봄의 손길이 필요한 상황이 닥치면 무조건 내가 그만두고 전업 육아를 할 것이다. 네가 하고 싶은 일에 따라 생활비가 모자라면 내가 알바든 뭐든 집 가까이에서 일하고, 역학조사관 일처럼 목숨 바쳐하는 일만 아니라면 일을 그만두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네가 집에만 있는 순간, 그건 너와 나 둘 다 불행해지는 일이다."


누군가의 동의를 얻고 가정의 모습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끈기 없는 90년대생 임신부는 쉬지 않고 조각 경력을 만들러 간다. 어김없이 하는 다짐을 갖고 말이다. 

'이번엔 큰 조각이게 해 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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