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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May 12. 2021

[출간전 연재] 대단한 사람들

엄마가 된 여자들

*본 글은 종이책 출간 전 발행 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향후 출판 서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갓 졸업하고 23살(생일이 빠름)에 일한 병동 간호사 생활은 '오래 못할 일'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동경해 마지않는 의사라는 직책도 과장, 교수, 레지던트, 인턴 모두 쌔가 빠지게 고생하고 자기 생활이 반토막 난 사람들이었다. 


호의호식하려고 어려운 일을 택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호의호식 비슷하기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병원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고된 일임을 몸으로 깨닫는 시간이었다.



내가 일하던 병원은 지방 의료원으로 대학병원이 아니라서 레지던트들이 두세 달에 한 번씩 턴을 돌았다. 두세 달에 한 번씩 레지던트들이 바뀌었는데 그중 한 분이 지금에 와서 생각이 문득 난다.


그녀는 임신 중기를 접어들던 임산부로 1년 차 레지던트로 왔다. 

그 말인즉슨, 인턴을 뗀 지 얼마 안 된 작은 지방의료원에서 인턴과도 같은 모든 일들을 떠안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처음 왔을 때부터 임신인가?, 할 정도로 티가 났으니 체력을 점점 고갈하는 레지던트 생활을 과연 무사히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다(남 걱정할 처지 아닌 신규가 이 생각할 정도면 뭐). 


게다가 그녀가 있을 당시, 너무도 어려운 와상 환자들이 많은 때였다. 보호자들이 케어가 잘 안돼, 몸 상태며 기본적인 위생 상황이 해결되지 않아서 1년 차가 가서 케어해 줄 것이 많을 때였다. 


몇 번 어시스트를 한다고 따라나섰다가 뒤에서 지켜보는 초짜 간호사는 표정을 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여럿 있었다. 사진이 아닌 이상, 표현할 수 없는 오래된 와상환자의 피부 상태는 레벨 D 방호복을 입고와도 숨길 수 없는 냄새들이 코를 찌르고 그 상태라도 비교적 정상의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애쓰는 의료진이 있었다. 


지금의 내가 돌이켜보니 그때가 최악의 입덧 시기였지 않았을까.

보호자 없는 환자들이 가득하던 병동을 하루 종일 돌고, 새우잠을 자는 레지던트 생활이 그녀라고 달랐겠는가. 그나마 대학병원보단 타이트하지 않은 분위기라 다행히 출산휴가를 넉넉히 받고 들어갔고, 남은 일정을 다른 동기들이 채워준 배려가 있어 무사히 출산했다고만 건너 들었다.



임신을 안 지 2개월이 지났다. 

계획하지도 않고, 상상도 못 했던 일이라서 깜짝 놀라긴 했지만 한편으론 요즘 그 어렵다던 임신을 고민 없이 이루게 해 준 내 몸과 남편의 의외의 건강함과 지옥 같은 스케줄 속에서 견뎌준 태아가 고마운 하루하루였다.


그럼에도 하던 일이 임신했다고 봐주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단 하루라도 숨통을 놓아주던 일상은 주 7일이 되었고, 밤중에도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임신했다고 포기하면 안 돼. 할 수 있을 거야.'

호기로운 마음가짐으로 두 달을 잘 버텨준 몸이 삐걱대더니 본능적으로 끝이 왔음을 눈치챘는지 타이밍 좋게 둑이 무너지듯 후두두둑 하혈을 하기 시작했다.


응급실에서 급한 불을 끄고, 다음날 원래 진료하던 산부인과에 가서 직밍아웃을 했다. 

"저 역학조사관으로 일하고 있어요. 사실 그래서 일을 많이 하고 있어요."

항상 천사같이 온화하던 선생님이 머리를 감싸 쥐며 비장하게 한 마디 건네주셨다.

"두 가지를 가질 순 없어요. 한 가지는 포기하셔야 해요."


그간 쌓인 직장인으로 대우받고 싶은 깃털과도 같은 자존심이 버려지지 않고 남아서 심적으로도 여기선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최종적으로 가장 길게 다닐 거라던 장담이 가장 짧은 직장생활로 마감을 하게 되었다. 



병원 생활하면서도 임신해서 하는 생활을 나는 앉아서 일하면서 왜 못했을까. 

자괴감과 좀 더 편하게 살고 싶다는 욕심이 어우러져 평범한 임산부로 돌아가기로 했다.

조각 경력에 작은 조각 하나를 더 띄워 보낸다.

슬프면서도 기쁘고, 착잡하면서도 후련한 마음을 쓸어내리며 남편의 품 안에서 위로를 받으며 쉬고 있다. 


남편이 가장 걱정한 직장도 집도 없는데 아이만 생겨버린 철부지 부부가 되어 버렸다.

앞으로도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스쳐 지나간 경력과 돈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중국에서 외벌이 하던 남편보다 수입이 많은 순간이 있을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주 7일을 일한 보상치곤 조금 적을 순 있지만 내 수중에서 벌 수 있는 액수 중에선 가장 많은 액수였을 것이다.


아쉽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아이가 한 번에 와줬으니 내려두어야겠다. 

대단한 사람들이라 칭송하기 아깝지 않은 자리에서 나는 내려왔다. 


나를 뺀 대단한 사람들. 

p.s. 엄마가 되어 가장 어려운 곳에서 일하는 많은 여성들의 뱃속과 몸속에 건강만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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