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래기 역조관의 나날
*본 글은 종이책 출간 전 발행 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향후 출판 서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달이 지났다.
1년의 확진자 중 절반이 12월에 나온 시기를 역학조사관으로 지내고 나니 1월 중순부터 2월은 숨고르기의 시간이다. 폭풍전야 같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상황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6시에 퇴근하는 일상, 주말에 온전히 쉬는 일상 등은 꿈꿀 수도 없으나 퇴근이 자정을 넘길지, 라꾸라꾸를 펴야 할지를 고민하지 않고 집에 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주어져서 조금 나아졌다고 할 순 있겠다.
한 달이 지나면서 고비가 왔다.
이 지긋지긋한 전염병.
끝날 기미가 안 보이는 극강의 빌런들.
신입이라 아무것도 모른다고 초보운전 팻말 하나로 여기저기 치고 박는 나 자신의 실수 연발들.
5년 만에 겪는 병원과도 같은 초긴장 상태.
앙상블 상이 있다면 바로 12월의 내게 주어져야 했다.
모든 것들이 맞물려 아주 조화롭게 괴롭혔다.
그러다 문득, 내가 싫은 것이 일인가, 상황인가, 생각해 봤다.
일이 싫지는 않았다.
사람들도 나쁘지 않았다.
급여도 내가 받아봤던 보수 대비 가장 높았다.
단 하나.
코로나가 너무 기승을 부린다는 것만 빼면 다닐 수 있겠다는 결론이 났다.
그리고 그마저도 일 자체가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것이다.
일의 특성상, 감염병이라 바빠질 때 바빠지는 걸 감수한다면 결국 남는 사람이 승자인 것이다.
게다가 몇 번의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기에 지금 직장이 힘들지만 고마운 점이 없지 않다.
한 자치구에서 면접을 볼 때, 작정하고 나의 경력을 물고 늘어지며 압박하던 게 생각이 났다.
"밤에도 전화 가고, 새벽에도 출근해야 돼요. 주말은 당연히 없고요. 요즘 사람들 워라밸 중요시한다는데 괜찮겠어요? 경력도 다 짧은데?"
어찌어찌 답변은 했다만 썩 유쾌하진 않았다.
'역조관 하기만 해 봐라. 출근하지 말래도 할 거다. 두고 봐라.'
출근을 하지 말래도 하는 상황은 없었지만 정말 두고 보라는 식으로 열심히는 하고 있다.
퇴근해서 밤에도 확진자가 생기면 전화하고, 주말에도 유선으로 지원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 중이다.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위의 멘트처럼 세상은 정말 양 극단에 선 사람들이 정말 많다.
한 가지 주제를 두고서는 더욱 그러하다.
코로나.
이름만 들어도 옮아서 죽을 것 같은 병.
감기 보다도 못한 병.
자가격리.
감옥과 다름없이 나를 억압하고 돈을 빼앗는 것.
아싸, 집에서 쉬면서 돈도 벌고 일도 안 나가고 좋다.
선별검사.
나를 절대 검사장에 데려갈 수 없드아.
무료니까 세 번, 네 번 받아야지, 또 받아야지.
방역수칙.
아무 데도 가지도 않고 만나지도 않고 먹지도 말아야지.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다 만나고 다녀야지.
등등등
현장에서 보면 중간인 사람은 왜 이다지도 없는가.
괴롭다...
이제 현장도 나가고 있다.
내가 운이 좋은 건지, 아직까지 협조적인 분들만 만나고 있다.
특히, 미디어의 영향으로 의사/간호사 다음으로 역학조사관이라는 직업을 알게 돼서 코로나=역학조사관=개고생 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박힌 것 같다.
어딜 가도 누굴 만나도, 본인의 감정에 휘말려 육두문자를 휘갈길 때도 늘 '고생하는 사람들', '힘든 건 아는데' 하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 말을 듣는 것만큼 고생하는 것 같다가도, 그렇게까지 힘든가, 하고 반문한다.
진짜 생으로 고생하는 의료진에 비하면, 합병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에 비하면, 생계가 위협당해 서너 개의 일로 하루 몇 시간도 못 자는 사람들에 비하면, 그냥 평범한 직장인보다 조금 더 일을 하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한 마디씩 붙여주면 고맙다.
"고생하시네요."
"수고하십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