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직을 찾는다고 하면, 고리짝 시절에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던 나이든 장인들을 떠올린다.
10대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한 분야에서 오래 몸담고 전문가가 된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요새는 어떤가
한가지 직업이나 직장으로 10년 이상 해본 사람이 드물다. 오래 일한 것만으론 후킹할 수 없어 거기에 한 수저 천직임을 강조한다.
천직을 찾는다는 건 어떤걸까?
한 개의 직업, 한 곳의 직장에서 무조건 오래하면 되는 것일까?
막상 머리가 희끗할 정도로 해봤는데 천직이 아니었음을 깨달으면 어떨까?
의외로 나이 먹고 새로 직장을 찾았는데 감춰진 재능이 발견되는건 아닐까?
미래를 확신하는 건 미래에서 온 사람만이 가능하다.
나도 내 미래를 알수없고 무엇이 천직일지는 모르지만 다년간의 직업 경험을 통해 얻어본 고찰을 나눠보고자 한다.
처음 진로를 선택한 건 어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안정성 때문이었다. 취업이 잘 되고, 취업 후에도 먹고 살 걱정 안해도 되는 직종을 선택하라 해서 초/중때는 교사나 뭐 그런걸 썼던 것 같다.
그러다 대학 입시가 다가왔고, 그간 심도있게 고려하던 분야인 의료계통 중 하나인 학과를 쓰기로 했다.
보자, 현실적으로 의료계통에서 원톱은 의사다. 하지만 내 성적으로는 언감생심이다. 수능 준비형이 아닌, 수시형이었기 때문에 수능으로 뒤엎을수도 없었다. 그 다음으로 고려할 학과들 중 가장 컷트라인이 높은 학과는 간호학과였다.
다른 보건계열이 별볼일 없는 게 아니라 인력을 가장 많이 채용하고 가장 초봉이 높은 직군이었다. 결국 그런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였다. 업무강도가 세고 이직율이 높으니 20대 초반 대졸자도 월급 300-400 받으며 별다른 스펙없이 취업이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현실을 아예 무시한 건 아니었다. 가족 중 외가가 다 간호사로 오랜 시간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른들의 말씀은 일리가 있었다. 더 중요한 질적 가치가 있다는 건 일을 하면서 깨달았지만 말이다.
고등학교 내신 성적 맞춰 진학한 학교였지만 다들 나보다 공부를 잘했다. 여학생들뿐이니 출석과 과제를 더 열심히 한 탓도 있으리라. 같은 방 룸메 언니는 올 A+을 받았는데 내 첫학기 성적이 겨우 3.1인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언니가 한가지는 맞추고 한가지는 틀렸다.
우리 학교가 인서울이 아닌건 맞았고, 결론적으로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3.1이 내가 받은 가장 높은 상대평가 점수였다. 3학년부터는 실습이 들어가면서 절대평가 점수가 있기 때문에 그나마 졸업할 수 있었다.
수업은 재미없었고, 외우는 건 잼병이었다. 그리고 1학년에게 자유시간은 많았다. 내 고향은 파주, 학교는 부산, 고로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야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대외활동을 신나게 하고 싶었던 나는 고 1때부터 장애인 영화제 봉사단 등 소규모 영화제 지원스탭을 했었다.
하루종일 수업을 듣지 않는 대학교 1학년이 되었으니 봉사활동을 자유롭게 하고 싶었다. 수업이 끝나고 할일이 없을 때면 복지관 방과후 도우미를 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고 방학이 지나고 나니 내가 하던 봉사 자리가 없어졌다고 했다.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계속 하던 선교단체 동아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별 건 없었다. 그냥 일주일에 한번씩 모이는 채플에 가고 중간중간 선배들과 밥먹고 모임하는 게 다였다.
그러다 방학때면 단기선교로 선교병원이 있는 사역지를 간다고 해서 따라갔다.
발을 한 번 들이기 시작하니 방학마다 총 세번을 갔고 공부는 드럽게 못했지만 막연하게 취약한 국가의 보건활동이나 간호사를 해 보고 싶다는 새싹이 돋아났다.
바로 여기, 그 순간을 꼭 기억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고 마음속에 기억했다는 건 단순히 비싸고 재밌기 때문이 아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든, 칭찬을 해줘서든, 뭔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졌다는건 그 성질의 것을 나라는 사람이 좋아한다는 것이다.
물론, 호불호는 언제든 바뀔수 있지만 인간이란 크게 변화하기 힘든 동물이라 커다란 맥락 안에서의 호불호는 바로 바뀌지 않는다.
바로 그 지점을 기억하고 앞으로 바꾸게 될 직업, 직장에 대해 고민할 때 이상형 월드컵처럼 두 가지씩 카테고리로 묶어 선택하면 덜 후회할 결과가 기다릴 것이다.
+나랑 같이 선교단체 동아리 활동하던 선후배들은 다 장학금 받고 다녔다. 간호학과 공부가 그냥 하기 싫어서 효율이 떨어진 건 나만의 사례인 걸로ㅎㅎㅎ
공부 빼고 다 재밌는 간호학생은 끝내 아프리카를 갔다. 지지고 볶고 현지 사람들과 오지게도 싸우면서도 하고 싶은 활동을 다 해봤다. 그 경험이 바닥이 되어 하나씩 건실한 탑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겨우 그정도 스펙과 배경으로 뭘 할수 있겠어?
제가 이정도 했으니 당신은 훨씬 더 많은 걸 이룩하실 겁니다.
확실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