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의 부모님이 자주하던 소리가 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일이란 먹고 살기 위해 어쩔수 없이 한다는 뜻이다.
그 모습이 퍽 안타까우면서도 인생의 허무를 빨리 느꼈다.
'방학도 없이 출퇴근하고 집에서까지 일을 하는데 이 정도 먹고 사는게 일의 전부라니..!'
눈 뜨면 짜증나게 오는 잠을 물리치며 일터로 학교로 갔다가 돌아오면 부모님이 오실때까지 학원을 가서 꾸역꾸역 시킨 공부를 하다 할머니집 가서 저녁먹고 엄마를 기다린다.
귀가하면 몇 시간 안 돼 잠 들고 다시 아침 시작.
특별히 불우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행복하다고 느낀적이 많진 않은 어린 시절이었다.
그런데 부모님도, 할머니도 행복해 보이지가 않았다. 태어나 시간이 주어졌으니 맡은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24시간 근무후 집으로 퇴근하는 아빠 (하루 근무-하루 휴일)
저녁 7시 퇴근해서 밥먹고 계산기 두드리며 집에서 추가근무하는 엄마
환갑 이후 집에만 계시며 손녀들의 방과후를 돌봐주는 할머니
나도 크면 일을 하고 살아야겠지.
나이들면 집에서 할머니처럼 지루한 시간을 보내겠지.
지금도 딱히 즐거운 삶은 아닌 것 같은데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다니 참 불쌍하다고 느꼈다.
방학도 없고, 해가 진 후 퇴근하는 어른의 삶은 퍽 고단하고 불쌍한 삶이라 생각했다.
그래선지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욕망(?)이 빨리 찾아왔다.
남들은 대학 졸업하고 질풍노도의 5춘기가 온다던데, 나는 사춘기를 맞이하며 그 고민에 강렬히 휩싸였다.
하교하고 집에 오면 워크넷에 들어가 직업에 대해 알아보고 조사하는 게 일이었다.
물론, 게임도 하고, 쓸데없는 커뮤니티 뻘글을 읽어보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말이다.
이런 걸 해서 미리 조사한들 지금은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하는데, 자조도 있었지만 내 미래가 너무 궁금했다. 방학없는 직장인의 삶, 퇴근후 2-3시간이 사생활의 전부인 삶, 그렇게 살게 될까?, 궁금하여 매일 직업을 탐구하며 책을 읽고 찾아보았던 기억이 난다.
많이 고민한다고 정답이 바로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 흔적이 삶에 남는다.
결론만 말하자면, 지금 평범한 중소기업 직장인으로 내 삶은 아주 만족스럽다.
돈을 영 못 벌면 불안할 것 같아 취업이 보장되는 계열을 선택했고, 고객의 니즈를 맞추는 업무보다 대상자를 도와주는 역할이 동기부여가 되어 '간호사'를 선택했다.
그 뒤에도 임상간호사로 일하며 어떤걸 더 하고 싶어했지, 내가 꿈꾸던 삶이 어떤거지, 고민하고 선택하고 여러번 직업과 직책을 바꾸다가 '메디컬라이터'이자 '작가'로 안착했다.
또한, 이후의 꿈을 위해 '대학원생'으로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치열하게 오늘 하루가 재미로 가득차고 내일 하루도 재미가 보장된 삶을 위해 타자를 치고 생각을 하고 고민을 나눈다.
어릴적 불쌍해 보이던 어른이 되지 않았다.
성공했냐고?
더 이룰게 없어서 행복하냐고?
그렇지 않다.
보름달이 되면 저물일만 남았다지.
절반만 차올라서, 아직 해야할 것, 이루고 싶은게 많아서 만족스럽다.
출근길이 피곤하고, 집에서 편한 복장으로 누워있으면 편안한 건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지만 출근 후 업무가 회사에 있을 생각이 괴롭지가 않다.
일이 올가미 같지 않아서 직장에 가는게 재미있고 보람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