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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Dec 13. 2019

[출간전 연재] 보건학, 시작은 이러했다

보건학 그리고 보건연구

*본 글은 종이책 출간 전 발행 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향후 출판 서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 보건학, 나와의 연결고리

어부지리로 보건연구원으로 일하게 됐지만 '보건학' 일이 뭔지 몰랐다. 알고 보니 지나온 경험 속에 내가 한 활동들이 '보건 연구'의 일환이었음을 깨달았다.


한국에서 병원 간호사로 일할 때 병동 내부 신규 간호사 교육집을 만드는데 아주 기초 작업을 하다가 그만두고 해외 봉사를 갔다(병동 일만 해도 벅찬데 이런 것도 간호사의 업무 중 하나). 이런 부분을 어필해서 경력은 미천하나 봉사 가서 주로 하는 일이 교육이니 잘할 수 있을 거라 말도 안 되는 포부를 밝혔다.


에티오피아 보건소에 처음 가서 한 일은 눈으로 보고 배우는 일이었다. 문제는 학부 생활과 병원에서 당연히 하라고 지시받은 일과는 다른 방식의 치료와 간호가 행해졌고, 왜 그럴까, 의문을 가지면서 구글링을 시도했다. 논문 찾아보는 과제를 해 본 적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글로벌한 자료를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사이트에 가서 찾는 건 처음이었다.


국내 교육 때 받은 직무 교육은 국제 보건 전문가가 사실상 해외에 다 나와있는 국내 실정상, 개도국의 의료 실상을 알아볼 수 있는 교육이 아니라 우리가 배운 간호학 지식을 한 번 더 배운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해서, 막상 현장에 와서 모자라는 지식은 구글링으로 원서를 찾아야 한다. '보건위생 지침', 'WHO에서 발간한 2017년도 동아프리카 성 전파 감염병 실정' 등의 자료를 글로벌 사이트에 가서 찾고, 영어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


그때 당시, 제출한 토익점수가 400점대였다. 

되지도 않는 영어로 번역기를 돌려서 이리 찾고, 저리 찾아서 아하 이런 이유로 현지 보건의료 시스템이 되어있구나, 알았고, 왜 소독솜을 안 쓰는지, 피부소독을 할 때 왜 전통적인 방법(꿀로 상처 부위 바르고 개방)을 고수하는지 등을 조사한 경위가 있는 자료들을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는 하지만 실전에서 내가 쓸 수는 없어 부딪히는 괴리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활동 반경이 넓어짐에 따라 보건 교육으로 관점을 돌려서 찾아보게 되니 계속해서 자료를 찾고 원서를 읽을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으로 자료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영어로 만들고, 가까운 현지 직원 중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현지어로 번역한 보건 교육 자료를 만들었다.


내가 한 활동 내용들이 국제 보건 일이고, 자료에 나오는 나라들은 주로 영국과 인도, 아랍권 국가들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은 현재 진행형인 곳으로 위 국가에서 선례로 쓰인 보건학 모델을 실험 중인 상태인 셈이다.


간호학이 전부인 줄 알았고, 간호학과를 학사로 졸업한 사람은 대학원 공부도 간호학만 하는 줄 알았는데 보건학이라는 공부가 있고, 심지어 하고 있는 일이 보건학 일이었구나, 알게 되었다.


귀국하고 나서 보건학을 전공해서 일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있는 보건학 전공 대학원들은 다 이름 있는 대학들이니 지방 사립대 출신이고, 학점도 밑바닥인 나는 한국에 있는 학교는 안 뽑아줄 테니(그릇된 판단) 해외에 있는 대학으로 대학원 가고 싶다(학점 안 좋은데 해외는 어떻게 간다고 생각한 거니)는 막연한 동경을 가지게 했다.



2. 국제 보건

국제 개발이라는 분야는 최근 들어 각광받는 분야임에 틀림없다. 다만, 한국에선 사회복지 분야의 초기 수준처럼 국제 개발? 그게 뭔데? 굳이 원조하는 것까지 전공을 해서 나가야 해?, 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나처럼 뭣도 모르는 사람이 '오, 해외 자주 가고, 개도국 구경도 하고, 있어 보이고, 밖에서 일하니까 한국 내에서 받는 이상한 계급 스트레스도 없어 보이고, 이거 잘하면 내 직업으로 할 수 있겠다. 영어 공부나 해야지.'라고 오해하기 쉬운 분야이다.


실상은 에티오피아에 오고 석 달이 되어서 느꼈다. 국제 개발이라는 일이 실상은 우리 같은 단원들 휴가 써도 되는지, 현지 기관이 돈을 잘 쓰는지, 현지 직원 월급 줄 때 무슨 세금을 내야 하는지 등의 행정 처리가 주된 업무라는 사실을 보고야 말았다.


실제로 전에 있던 단원이 국제 개발 관련 대학원을 진학하기 위해 같은 나라에 있던 사무소 부소장을 찾아가 추천서를 부탁했는데 그 부소장이 하던 말이 이랬더랬다.

"공부하는 건 좋은데 기대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하는 일이 대단해 보이던가요? 겉으로 보기엔 좋죠. 아프리카 가서 좋은 일 하는데 쓰는 세금 집행하는 공무원 아닌 공무원들 같아 보이지만 봐서 아시잖아요. 맨날 하는 일이 단원들 잘 감시하는 거, 세금 가지고 놀러 오는 국회의원들 접대하는 거, 영수증 붙여서 행정 처리하는 거, 대학원 나와서 하는 일이 그런 거예요. 조금 회의감이 들 때도 있으니 잘 생각해 보세요."


단박에 간호사로 의료용품을 들고 지역마다 다니며 교육과 간호를 시행하고 보고서를 기깔나게 쓰고 현지 직원들과 친구 같이 지내면서 하하호호 일하는 상상 속 모습은 사라졌다. 


실제로 겪어보니 그랬다. 


시스템이 다른 곳에 들어가서 개인의 힘만으로 보건분야의 변혁을 꽤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으며 국제보건을 두고 숭고한 희생정신 깃든 의료선교의 일부로 치부한 것도 크나큰 오류였음을 알게 됐다.


이 길도 아닌가 보구나, 하고 포기하던 때에 영양교육을 통해 연구적 마인드를 갖게 됐다.

3분기 사단원의 삶

(당시는 몰랐지만 취업하고 나서 연구책임자 선생님이 그게 연구자의 마인드라고 알려주셨다)

**사람이 포기할 때가 되어야 얻게 되나 보다, 사람도, 일도.



3. 보건 연구, 누구냐, 너.

보건 : 보건은 건강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by wikipedia]

보건학 : “조직화된 지역사회의 노력을 통하여 질병을 예방, 수명연장 그리고,. 신체적 · 정신적 효율을 증진시키는 기술이며........"[by Winslow]

보건 연구 : 보건 증진을 위한 예방 및 조사 연구를 말함


운명인지, 우연인지 그렇게 일하게 된 보건 연구 일은 연구의 꽃이라는 '코호트 연구'였다.

'코호트'란 특정 기간에 특정한 경험을 함께 한 집단을 뜻하며 보건의료 영역에서의 '코호트 연구'란 이러한 경험을 한 집단과 하지 않은 집단을 추적해 경험과 질병의 발생 관계를 조사하는 연구 방법이다. [출처: 위키디피아]


보건학 중 역학;Epidemiology 분야가 있다. 질병에 대한 인과관계를 밝히는 일인데 보건연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선생님들은 예방의학 전공의로 역학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 그 외 보건 관련 전공자들은 대학원 과정 중 역학을 전공으로 선택해서 진학한다. 역학 내에서도 여러 분야로 나뉘는 데 그중 내가 연구하게 된 분야는 환경 역학이었다.


환경 역학 연구는 환경성 질환에 대한 예방 연구와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한 연구가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고혈압약의 발암성 성분과 같은 연구는 이미 발생한 사건을 조사하는 '후향적 연구'이다. 


반대로 이러한 일이 발생하기 전에 살균제 전 성분에 대한 유해성에 대한 연구는 '전향적 연구'이다.


내가 맡은 연구는 임신부를 대상으로 혈액과 소변을 채취하고 설문 조사를 통해 관련 있는 변수들을 조사하여 현재 문제가 될 것이라고 나온 물질에 대한 실험 연구들 중 인간 대상 연구, 특히, 의료 취약계층(=의학적으로 일반 성인 남녀에 비해 보건학적 위험이 높은 대상 군; 신생아, 유아, 노인, 임신부,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가 미비한 물질의 유해성을 밝히는 연구였다. 


쉽게 말하자면, 동물 실험으로 A라는 물질이 위험하다고 결과가 나왔다. 

EU에서는 문제라고 보고 A라는 물질이 들어간 화장품이나 음식물 반입을 금지했다. 

미 FDA는 인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도 없고, 동물실험 결과도 치명적이지 않았으니 가성비로 봤을 때 A는 공산품 생산에 꼭 필요하니 금지시키지 않았다.


이때, 연구진들은 인간을 대상으로 연구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연구비 신청을 한다. 연구비가 나오면 사람을 뽑고 연구를 진행한다.


연구 구축에 가장 필요한 일은 사소한 일들의 모임이다. 대상자를 모집할 때 드는 홍보 비용, 기념품 비용, 연구진들끼리 회의할 때 드는 간식비까지도 연구비로 결제되므로 이러한 집행까지 처리할 사람이 필요했고, 그 자리에 들어간 것이다.


보통 연구실엔 행정을 처리하는 선생님이 따로 있기도 하고, 연구 과제마다 조사, 분석부터 행정까지의 업무 총괄을 맡는 사람을 두기도 하는데 나는 후자였다. 정식 명칭은 Project Manager(과제 관리자)이다.


설문지를 만들고 검토하는 일부터 시작해, 대상자를 어디서 모집할지, 검체를 위탁하는 업체 선정 등을 연구책임자 선생님이 윤곽을 정해 주시면 이를 세부적으로 조정하는 업무였다.


또한 단순 행정 업무만 하는 게 아니라 궁극적 목표인 결과물(논문 발표)을 내야 했기에 관련 지식이 전무한 나는 연구비로 통계학 수업을 들으러 가기도 하고, 학회에서 관련 연구들을 조사하기도 했다. 나머지 모자란 부분들은 부서 내 선생님들과 일주일에 1-2회 자체 세미나를 열어서 역학 개론, 논문 작성법 등을 배웠다.

(특정 강사가 오는 게 아니라 돌아가며 분담한 부분을 공부하고 발표하는 식)


풀타임 대학원생의 일과와 동일한데 차이점이 있다면 직장인 보수를 받는 근로자 신분인 것과 졸업장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고로, 졸업장을 받기 위해선 대학원에 따로 진학을 해야 했다. 학위의 필요성은 뒤에 보건대학원 글에서 얘기하도록 한다.


그 외 : 일전에 연락 온 제약회사 헤드헌터가 문득 생각날 때가 있다. 그쪽으로 갔다면 아마 돈은 더 많이 벌었을 테지만 공중보건에서 일하고 배울 기회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해서, 보건 연구를 인연이라 느끼며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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