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대학원에 대한 Q&A
*본 글은 종이책 출간 전 발행 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향후 출판 서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물론 두 사람 다 옳다. 그가 생각하는 대로 되기 때문이다.
해 본 적 없으니 안 하는 사람과 그냥 하고 보자, 해서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즐겨보는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나온 사람들을 봤을 때 느낀 게 있다. 출연자가 다가가면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라고 했을 때, 아저씨, 아줌마 등 연령대가 비교적 높은 분들이 "아유, 난 그런 거 못 해." 하면서 손사래를 치셨다. 아마 사람들은 저걸 해서 맞추면 백만 원을 탈 수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보건학에 입문했을 때, 대학원에 간다 했을 때, 같은 전공을 졸업한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난 그런 거 어려워서 못 해, 였다.
어려운 건 사실이나 본인들은 더 어려운 직장생활, 병원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가.
에티오피아에 살고 온 사실을 들은 사람들도 이렇게 얘기한다.
”어유, 그런 데서 어떻게 살다 오셨어요. 전 못 갈 거예요.”
그 사람의 경험을 높게 세워주는 부분은 감사드리지만 보잘것없는 내 실력보다 본인들의 역량이 더 크면서 본인은 못한다는 말에 TV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그냥 하면 하는 건데, 왜 안된다고 생각하지.’
1. 보건대학원 지원
안될 것 같은 후보자 중 가장 안될 것 같은 사람은 나였다. 지방 사립대 졸업, 학점 2점대, 대학병원 근무경력 없음, 1년짜리 병동 경력, 1년 몇 개월짜리 해외봉사, 6개월 된 계약직 보건연구원.
하는 일의 적합성 빼곤 들이댈게 아무것도 없었다.
일을 하면서 역량이 모자란 건 시간으로 해결했다. 컴퓨터를 잘 다루고 이해력이 빠르면 퇴근 시간 전에 금방 해결할 일을 밤늦도록 붙들고 있었다.
그러나 노력만으로 안 되는 건 스펙이었다. 영어 점수가 그나마 해외봉사 전보다 조금 오른 토익 600점대를 보유했지만 비슷한 분야에 계신 선생님들은 800은 기본으로 찍고, 900점 대도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스펙이 모자란 건 둘째치고(사실 공부는 학회 가서 배우고, 실전에서 습득하는 걸로 채웠다), 석사 학위가 없으면 연구를 본업으로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계약직으로 이뤄지고, 정교수/정규직 연구원으로 임용되기 전까지 벌이를 생각하려면 무조건 학위가 있어야 경력직으로 이직이 가능했다. 단순히 연구 경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입사하자마자 선생님은 학교에 가길 권유하셨고, 하던 일이 재미있어지는 찰나였다. 돈을 안 벌면서 학생을 하려면 등골 브레이커가 되어야 했으니 학업과 병행하는 특수대학원을 고려했다.
특수대학원은 직장인이 업무와 병행할 수 있게 평일 근무 시간 후에 수업이 개설된 대학원이라서 야간대학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사이버 대학교(성균관 사이버 대학교와 성균관 대학교는 다른 기관임)와 달리 학교 법인 안에서 운영되는 학제라서 서울대 안에 있는 특수대학원이라면 일반대학원 학생과 동일한 졸업장이 수여된다. 다만, 소속이 특수대학원 이름으로 찍히고, 대학원장이 다르지만 졸업한 학교 이름은 동일하다.
서울에 있는 보건대학원 리스트를 찾아봤고, 직장이 경기 북부라서 강남권부터 경기 남부는 제외하기로 했다. 서울대는 내가 지원할 당시, 파트타임 학생을 적게 뽑았고, 기준 자격도 5급 공무원 혹은 그에 준하는 공공기관 근로자였기에 해당사항이 없어 지원하지 못했다.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이렇게 세 곳을 지원했다.
(처음 지원할 때 거리를 고려해서 연세대만 지원했으나 탈락의 고배를 마신 후 동쪽 끝이라도 다닐 수 있다 생각해 지원 학교가 늘었다)
보건대학원의 서류전형 탈락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력서와 학업계획서가 동봉된 지원서를 제출하면 자동으로 면접일에 참석해야 한다. 따라서 일반대학원에서 면접 전 하는 컨택(contact-지도교수님이 되는 분을 미리 메일로 연락드려 저 좀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학생으로 뽑아주실 수 있을까요, 하는 사전 면담을 일컬음)은 굳이 필요 없다.
상황에 따라서 본인이 어필할 만한 스펙이 부족하고, 파트타임이지만 교수님의 연구 프로젝트에 들어가고 싶다면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풀타임 학생으로 컨택을 하는 게 낫지, 보건대학원으로 갈 필요가 없다.
2. 학업계획서 작성
학업계획서는 철저히 내 위주로 작성한다. 그 말인즉슨, 장황한 대학원의 연혁과 교수님의 업적, 대학원의 발자취 등을 나열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구태연한 정보들은 이미 교수님들 머릿속에 가득하다. 그들이 궁금한 건 '나'라는 사람의 공부 이유와 우리 전공에 대한 관심도이다.
얘가 무슨 생각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졌는지
이 분야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를 작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간호사가 되고 싶은 학생이 간호학과를 지원한다고 말하면서 의사의 업무들을 쭉 나열했다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환자를 성심껏 진료하고 어려운 수술도 척척 해내는 간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라는 글을 본다면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얘는 간호사도 의사도 구분 못하는 애가 간호사를 하겠다고?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전공자도 아닌데 모르는 게 당연하지, 라는 생각은 디테일한 지식이 부족할 때 상관있는 말이다. 적어도 지원하는 전공과 공부에 대해서 비슷해 보이는 다른 것과 구분할 정도의 관심도를 표명할 줄은 알아야 한다.
기초 지식을 알았다면 뼈대를 정하고 내 경험들로 살을 붙여 나가는 작업을 한다. 시간 순서여도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다. 앞뒤가 다른 말만 아니면 된다.
이때 당면한 과제는 지원 속내를 그럴듯한 내용으로 잘 포장하느냐,였다. '학위 따야 해서'를 심오하게 포장할 포장지를 찾아야 했다.
<지원동기의 추론 방법>
석사 학위가 필요함 ->why?->보건 연구 계속하고 싶으니까->why?->보건 연구가 흥미도 있고, 해 보니 적성도 조금 있는 것 같아서->How?->일하면서 관련 지식을 공부해보니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음->So,-> 정식으로 공부해 보고 싶음
포장지를 찾았다. 정규 과정 공부를 해서 부족한 지식 기반을 만들고 싶다. 이거면 됐다. 이걸 뼈대로 간호학을 전공으로 입학한 순간부터 해외봉사 다녀온 일과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시간 순서상으로 배치하여 '결국은 보건학, 보건연구, 내 길'이라는 기승전결을 작성했다. 분량은 A4용지 2장이 안 됐다.
학업계획서 양식이 다 똑같으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그러지 않아서 양식에 따라 같은 내용을 퍼즐 조각 맞추듯 끼워 맞췄다. 그래도 골격은 변하지 않으니 크게 무리될 건 없었다.
3. 면접
면접은 지원자가 대부분 직장인인 걸 감안해서 주말 오후나 평일 늦은 오후 시간에 진행한다. 나는 이미 연구 관련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면접 장소인 학교들에 한 번씩 다녀간 적도 있고, 이미 해당 학교들의 석박사 선생님들이 동료이자 사수로 계셨기 때문에 보고 들은 걸로 대답하자, 생각하고 별다른 면접 준비는 하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한 취약점을 방어할 대답만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왜 경력이 조각인지, 해외봉사 다녀와서 국제개발 일을 안 하고 역학 연구를 하게 됐는지, 통계를 잘 아는지 등 내가 생각하는 나의 약점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지 시뮬레이션하고 면접관인 교수님들 앞에 앉았다. 다 대 다 면접도 있고, 1 대 1 면접, 다 대 1 면접 등 세 학교 모두 다른 형태로 면접을 봤고 질문도 각기 달랐다.
자기소개 1분가량 하고 각자 질문을 받았는데 자기소개는 현재 자신의 직무를 중점에 두고 지원동기를 한 문장 정도로 설명하면 된다. 나는 간호사 하다 봉사활동 갔는데 보건학에 눈을 떠서 한국에 와서 우연한 기회로 환경 역학 연구 일을 하게 되어 공부를 더 하고 싶어 지원했다, 고 소개했다.
질문들은 교수님마다 한 분씩 돌아가며 받았고, 본인의 주요 관심도에 따라 달라졌다. 내가 받은 질문들은 지금 하는 일 PI(연구책임자)가 누군지, 표본대상 수, 연구 진행 정도, 국제 개발 활동에서 배운 점, 한국이 개발도상국에서 보건학으로 해야 할 일, 학교랑 거리가 먼데 수업을 따라갈 체력이 되는지, 현재 연구에서 논문을 쓰는지, 앞으로 박사과정 진학 계획이 있는지 등 교수님 개개인마다 학교 분위기마다 '나'라는 사람을 두고 질문들이 각양각색이었다.
4. All 합격
면접이 모두 끝난 후 한 달이 되었을 무렵, 결과 발표 예정일로 설정한 알람이 울려서 홈페이지에 게시된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다. 가장 가고 싶었던 학교를 필두로 다른 학교들도 모두 합격 통지서를 보내왔다. 선생님들은 축하하면서도 예비 노예 1이 되는 것에 애석한 마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