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노니 Dec 11. 2019

[출간전 연재] 취준생 연애 시작

인생 첫 연애, 너와 함께, 취업 준비도 함께

*본 글은 종이책 출간 전 발행 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향후 출판 서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귀국하고 열심히 친구들 만나고 놀러 다니고 있었다. 갑자기 귀국해서 황망한 기분은 고국에 방문한 즐거움으로 금방 채워졌다. 그가 아프리카 귀로 여행이 끝나고 홍콩에 경유하면서 빨리 만날 구실을 만들기 위해 기념품을 뭐로 사갈지 물었다. 우리가 그런 것까지 챙기는 사이가 되었네, 싶었다.


한국에 귀국하고 집이 지방이라 귀국 후 건강검진 때 서울에 가니 보자고 했다. 귀국 단원 건강검진은 지정된 의료기관에서만 했기 때문에 빨리 서울로 올 구실이 생겼다. 내시경 검사까지 다 끝내자마자 아침 시간이 조금 지난 11시부터 만나서 점심 먹고 헤어지기 싫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간식 먹고, 그러다 저녁까지 먹고 귀가했다.


언제 다시 만날 지 기약은 없었으나 언제 한 번 미술관 가요, 겨울 전에 내 패딩 돌려줘요(트레킹 간 휴가에서 내가 입을 두꺼운 옷을 안 챙겨 와서 입으라며 패딩을 주고는-아프리카 오면서 패딩 챙기는 사람=준비성 철저한 사람-돌려주지 말고 우기에 추우면 입고 한국에서 돌려주세요, 한 패딩이었다), 하면서 곧 또 보자는 신호를 보냈다.


그도 돌아와서 친구들 만나고 못 먹던 한국음식 먹는다고 바빴고, 나도 신나게 놀던 때라 바로 다시 만나자고는 못했지만 통신이 막혀 우회경로 앱으로도 데이터가 안 터지던 아프리카를 떠나 한국에 오니 우리의 연락은 당장 사귀기 직전의 연인 전 단계로 접어들었다. 밥 수저 들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항상 연락을 했고 영양가 없는 얘기들도 달고 맛있게 나눴다.


그렇게 또 일주일이 지난 5월 첫 주, 황금연휴가 다가오던 날에 연휴인데 어디 안 가냐는 말을 하다가 그럼 같이 여행 가자는 제안을 서로 하게 된다. 처음엔 무박 당일치기 여행이었다가 스케일이 커져 5박 6일의 전라남도 투어가 되어버렸다.


내가 먼저 미끼를 던졌다. 당일로 전라도를 갈 바에야 날 잡아서 놀러 갔다 오는 게 낫다, 이러면서 병원에서 일할 적에 가고 싶었는데 오프가 맨날 잘려서 못 갔다는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늘어놨다.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처음부터 지역이 먼 관계로 한 번 만나기 시작하면 기본 일주일, 열흘은 숙식을 같이 해결하며 붙어있었다. 물론, 둘만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둘만 그의 집에서 잘 때도 편했다(집이 크고 방이 여럿이어서 다른 여자단원들도 그 지역에 올 땐 그 집에서 게스트 하우스처럼 자고 갔다). 그의 심성은 조심성이 극에 달하는 남자였고, 오히려 나의 들이댐에 달아날까 무서울 지경이었다.


고민을 좀 하는가 싶더니 어찌어찌 날짜를 잡고 렌터카를 예약하고 있었다.

문득, 부모님과 같이 사는 내가 걱정되어 물었다.

"00 씨는 일주일(?!) 동안 놀러 가는 거 괜찮아요?"

지금은 다 알지만 그때는 지극히 평범한(?) 부모님이라 생각했는지 걱정을 하더라.

나는, "괜찮아요. 여태 나가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오는 거 신경 안 써요."


신경을 안 쓰는 건 거짓말이었지만 다른 쪽으로 신경을 안 쓰긴 했다.

썸남이랑 5박 6일로 전라남도 찍고 올 거라고 엄마에게 말하고 다녀왔다.

듣자마자 고백했냐고 물었다.

아직 전 단계라고 했다.

어머머, 하더니 괜찮으면 잡으라는 조언과 함께 잘 다녀오라고 하셨다.

개방적인 풍토의 가족이다.

낙안읍성 마을 전경

호기롭게 출발했으나 중간 기차에서 만난 지 12시간이 지났는데도 우리는 아무 일이 없었고, 친구랑 소풍 온 건가, 하고 내려놓은 상태였다.


첫날 저녁은 낙안읍성 안 전통 민박에서 잤기에 마치 엠티 같은 분위기로 부산행을 보고 나란히 깔아놓은 양 옆의 이불에서 '따로' 잤다.


둘째 날 점심이 지나고 나서야 슬며시 타이밍을 노리더니 손 언저리를 잡으려는 노력이 보여서 내가 꼭 쥐고 놓아주지 않았더랬다.

보성 녹차밭에서 처음 손 잡았다.

고백의 용기는 쉽사리 오지 않았고 저녁이 됐다. 본인이 숙소를 예약하면 노골적으로 보일까 봐 숙소는 내가 예약하는 걸로 분담했다. 눈치 빠른 나는 '당연히' 한 방으로 잡았고 (각 방 잡아봤자 결국은 한방 쓸 거 같으니까 애당초 돈을 낭비하지 말자는 지혜로운 선택), 같은 침대에서 잤다.


정말 잠만 잤다.

Literally, 쿨쿨 잤다.


단전에서부터 이건 아니다 싶어 이불을 빼앗고, 침대 구석으로 몰았다. 독 안에 든 쥐가 된 그는 어쩔 수 없이(?) 나를 꼭 끌어안고 잤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계속 만나보고 싶다고 얘기를 꺼내서 "이미 만나고 있잖아요."라고 답변해줬다.

(지금도 이불을 빼앗고, knee-kick을 날리면서 잠꼬대를 하는 통에 사지를 묶어두기 위해 꽉 끌어안고 잔다. 그때 내가 수작 거는 줄 알고 기분 좋게 안았는데 현실은 맨날 이불 뺏기고 발로 차이니까 그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라고 구시렁댄다)


연애의 시작이 늘 그렇듯 (처음 해봤지만) 알콩달콩 시시콜콜한 맛에 즐거워하는 게 아닌가. 멀리 있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오고 가면서 만났다. 성미가 급한 나는 이미 썸의 시절을 지나면서 극히 원했던 결말이라 우린 사귄 지 일주일 만에 각자의 마마님들과 대면하고 미래를 얘기하면서 연애를 그려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