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간다, 에티오피아
*본 글은 종이책 출간 전 발행 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향후 출판 서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신변 정리의 시간이 흘러 어느덧 출국일이 됐다. 아랍에미레이트를 타고 두바이에서 경유하고 도착하는 일정으로 장장 20시간이 넘는 일정이었다. 지금은 직항 노선이 생겨 14시간 내외로 다녀올 수 있다.
50킬로 이민가방 두 개의 무게를 간신히 맞추어 (최대 32킬로), 수속을 마치면 바이 바이 인사 시간.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 학교 선배들도 마중을 와주셔서 감사했다.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에서 먹고 자기를 두어 번 하고 나면 두바이에 내려 바우처를 가지고 버거킹으로 향한다. (남편 또한 같은 경로로 두바이에서 경유했는데, 이때 해외 출국이 처음이라 한국에서 흔한 버거킹 '따위'를 먹지 않고 인도식당에서 귀한 한 끼를먹은 것이 일 년 내내 후회가 되었다 한다, (스포) 이때의 경험을 발판으로 처제가 출국할 때 꼭 버거킹을 들러야 한다며 달러를 쥐어준다)
<- 이유: 에티오피아에는 인도 식당이 많다 (수도에 한해서)
맛있는 마지막 대형 햄버거 체인점의 식사를 마치고 면세도 구경하고 나면 긴긴 웨이팅 시간이 끝나면 마지막 비행에 오른다.
그렇게 도착한 에티오피아. 도착하면 단복 입고 기념사진을 찍기 때문에 출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서 부랴부랴 단복으로 갈아입고 입국장으로 들어선다. 단복 기념사진은 동생이 출국할 즈음, 번거로워 없어졌다 한다.
현지 사무소 코디네이터들이 마중을 나와서 사진 찍고 사무소로 향한다. 도착하자마자 짐 풀기 전에 사무소에서 잠깐 인사를 하고 나서야 유숙소에 짐을 풀러 갔다.
1. 현지적응훈련 기간
현지적응훈련 기간과 커리큘럼은 해당 코디네이터 (구 관리요원)에 따라 달라진다. 주요한 일정은 현지어를 학습하는 일이다. 현지어 교육 방식은 각 기수마다 다른데, 바로 전 기수는 개인 과외를 받았다 하고, 어떤 기수는 다른 곳에 위치한 학원을 다니기도 한다. 내가 있을 땐 선교사들이 주로 가는 어학원에 등록하여 꽤 먼 거리를 차를 대절하여 다녔다.
우리가 다니던 학원의 학습 방식은 정말 옛날 선교사들이 매개 언어가 없이 현지어를 학습하던 방식이라 그 방법이 매우 특이했다. 물건과 행동을 보여주며 영어-매개 언어-를 쓰지 않고 현지어만으로 현지어를 학습하게 한다.
장점은 말이 굉장히 빨리 늘고 어휘 습득력이 높다는 점이지만 단점으론 글씨를 배우지 못하고 스피킹과 리스닝에 주안점을 둔 학습이라는 것이다.
이 단점이 꽤 컸던 이유는, 단원들의 활동이 주로 학교나 보건소 등의 글씨를 볼 줄 알아야 할 수 있는 업무들이었으며 에티오피아는 고유 문자인 '피델'을 가지고 있었기에 한국에서 '한글'을 모르면 불편함이 생기듯, 우리 또한 문자에 대한 갈망이 있었기에 이러한 단점들은 해당 어학원에서 배운 시간들에 조금은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2. 일과
주요 일과는 아침에 눈떠서 밥 먹고 싶은 사람은 챙겨 먹고 아닌 사람들은 본인 준비만 해서 1층 거실로 내려온다. 시간이 되면 봉고차량이 픽업을 오고 그걸 타고 어학원을 향하여 수업을 듣는다.
각국에서 선교사들이 찾는 어학원이라 각국의 선교사 가족들이 옆 반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오전 중간 티타임에는 이들과 짧은 대화도 나눠볼 수 있었는데 나는 파견될 지역이 궁금했기에 그곳을 여행하고 온 사람들의 경험담을 주로 물어봤다.
동네에 있는 호수에 하마가 있고, 원숭이가 호텔에서 보이고 영화에 나오는 쓰레기 새 (다리가 길고 부리가 홍학만 한)가 나온다며 상상과 미지의 나라 같은 느낌으로 들었는데 살다 보니 정말 하마와 원숭이가 있는 동네였으며 그 동네에서 원숭이는 사람(아무도 신경쓰지 않음)이고 진짜 동물원 원숭이는 나였음을 깨닫는 데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나면 점심시간이 되고 현지식으로 점심을 해결해야 하는 우리는, 근처 식당 (추천해준)에 가서 현지식으로 식사를 한다. 처음엔 도시락을 챙겨갈까 고민했었지만 일과가 끝나고 숙제를 하고 나면 녹초가 되어버려 입맛에 덜 맞더라도 사 먹는 게 편했다.
현지식은 인제라(원료:테프)라는 현지식 팬케이크 모양의 곡물로 만든 빵 위에 야채 볶은 걸 인도의 난처럼 싸서 먹는다. 인제라는 굉장히 시큼한 맛이 난다. 식초를 넣고 만든 난(인도식 빵)이라고 하면 조금 비슷하려나.
여하튼, 그런 정통 현지식이 있고 토마토를 으깨서 만든 토마토소스 스파게티와 스크램블 에그와 고추를 넣어 빵이랑 같이 먹는 메뉴도 있어 그들 중 하나로 돌려막기 하는 점심식사를 이어갔다.
한국식당이 몇 군데 있지만 너무 멀고 비싸서 특별한 날에만 가는 특별한 식당이라 한식은 무조건 집에서 해 먹는 게 다였다.
점심을 먹고 길가에 파는 현지식 커피(150원)를 한잔하고 오면 오후 수업이 시작된다. 오후 수업을 부지런히 마치면 3시에서 4시 정도 되고 일주일에 몇 번은 사무소에 들러서 특강을 듣거나 활동 내용 발표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별일이 없으면 유숙소에 들어가기 전 저녁 근처 마켓에서 저녁거리 장을 보고 귀가한다. 우리 기수는 각자 돌아가며 저녁 당번을 하였고, 이건 기수에 따라서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정한다. 맘 맞는 사람끼리 사 먹고 싶으면 사 먹기도 하고, 다양하다.
저녁 식사 메뉴는 카레, 닭볶음탕, 미역국 등 가져온 재료와 살 수 있는 재료를 혼합하여 최대한 적은 양으로 많은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요리를 궁리하여 만든다.
준비부터 마무리 설거지까지 다 하면 4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게다가 도중에 정전은 필연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건 느낌 탓이 아니다. 식사를 다 마치고 나면 다들 각자의 시간을 갖고 취침을 하면 하루 일과가 정리된다.
이렇게 한 달을 지내고 나면 OJT를 가게 되는데(On the Job Training의 약자로 내가 파견될 기관과 지역을 적응훈련 기간 동안 일주일 트레이닝 겸 해서 다녀오는 시간이다) 말이 트레이닝이지, 이 때는 현지 홈스테이를 하기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간이 되기도 한다.
3. OJT(On the Job Training)
OJT를 가게 될 곳의 대략적인 소개를 사무소에서 받고 이동경로에 따라 티켓팅한 표를 받거나 안내를 받는다.
나의 경우는, 국내선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 경우라 공항까지 사무소에서 데려다주셨다. 선배 단원이 있는 지역이었고 미리 홈스테이가 정해진 케이스라서 되도록 두고 올 짐을 이민가방 하나에 가득 챙겨서 떠났다. 선배 단원 집에 맡기고 올 생각으로 가기 전에 미리 연락하고 양해를 구했다.
내가 간 지역은 커다란 호수 (어지간한 지역 마을 하나 정도)를 끼고 있는 나름 큰 도시였고, 유럽 사람들이 종종 관광을 올 정도로 호텔과 리조트가 갖춰진 곳이었다.
파견될 기관은 지역 내 주요 시내 중심지에 위치한 보건소였다. 한국에서 보건소는 민간 의료기관들이 활성화되어있고, 의료보험이 잘 발달되었으므로 보통 사람들에게 큰 존재로 각인되어 있진 않지만 개도국으로 갈수록 의료보험이 모든 사 병원에서 지원되기 힘들기 때문에 국가에서 지어 놓고 의약품을 제공하는 보건소는 꽤 커다란 존재이다.
한국인이 보건소라는 어감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현지 사람들의 인식은 사뭇 달랐다.
비행기가 연착되어 밤늦게 도착하자마자 선배 단원들의 인솔에 따라 택시를 타고 향한 나의 홈스테이 집은 기관 행정직원의 남동생 집으로 기관장이 사무소의 요청을 받고 본인 생각에 외국인이 기거해도 될 정도의 집이라고 생각하여 가게 된 곳이다.
홈스테이 집에는 귀여운 4살짜리 쌍둥이 아가들이 폴짝폴짝 뛰면서 신기한 외국인을 반겨 주었다. 쌍둥이들은 의젓한 언니 오빠도 있었고, 다른 홈스테이 가정들에 비해 젊은 엄마, 아빠가 있는 집이었다.
홈스테이 가정이 위치한 집은 도심지에서 조금 외곽으로 떨어져 있는 시민들이 주로 모여 사는 주택촌이었다. 흙집이 아닌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각 가정마다 집안일을 맡아 해주는 십대 소녀들이 있었고, 이들은 시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온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홈스테이 가족들처럼 마음씨 좋은 사람들을 주인으로 만나게 되면 일과가 비어 있는 주중에는 학교를 다녀올 수 있게 지원해 준다고 한다.
도착하자마자 거실에 가서 전통 커피를 마시고(에스프레소 잔 같은 작은 찻잔에 세 잔씩 주시는데 이걸 다 마셔야 한다) 따로 마련해준 내 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 벌레 퇴치약을 침낭과 매트리스에 한 가득 뿌리고(에티오피아, 특히 수도에서 멀어질수록 벼룩과 빈대와의 전쟁을 치뤄야 한다-본인은 결국 알러지까지 올라와서 온몸이 빨갛게 부어오른 상태로 수도에 도착해 병원부터 갔다) 옷을 갈아입은 뒤, 또 거실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한창 하고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첫날은 홈스테이 아빠의 직장과 파견기관이 가까워서 손수 데려다주시고 출근해서는 기관장과 짧은 면담 후에 각 실마다 소개하며 오티를 진행했다.
파견 전 안내문에는 기관에서 나의 주요 업무는 산부인과 업무라고 적혀있었으나 막상 도착해서 보니 산부인과는 아예 호주 NGO에서 호주 의사, 조산사를 파견하여 전문 교육을 받은 현지인들로 채용하여 따로 관리 중이었다.
반전이라면 반전이었던 기관 소개 시간이 끝나고 OJT 기간 동안엔 하루마다 각 과에 들어가서 실습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때부터 단원의 역할과 목표가 무엇인지 흐릿해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동양인의 얼굴이 비교적 어려 보여 그런 것도 있지만 2년이 다 되어 가도록 직원들에게 나는 '어린 외국인 실습생' 정도로 인식됐다.
전문적으로 언어를 유창하게 해서 한 가지 업무를 맡는 것도 아니고 기자재를 고쳐주러 온 것도 아니고, 관광객도 아니고 쟨 뭐지 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옆에 있는 분만실에는 머리가 희끗하신 은퇴한 할머니/할아버지 의사, 조산사 선생님들이 초음파 기계를 가져와서 검사하고, 분만을 돕고 하는데 나는 어린 게 맨 몸으로 가서 할 수 있는 일이 예방접종이나 드레싱 처치실에서의 기술적인 업무 보조였으니 말이다.
시스템을 바꾸러 갔다기에는 제한이 많았고, 단순 보조 업무를 보기엔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고민을 안고 기관을 둘러보며 오전 일과를 보내고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엔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OJT의 궁극적인 목적은 집을 구하고, 기관 근처 지리를 익히는 것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주요 업무보다는 그 지역을 탐방한다는 목적이 있기에 홈스테이 가족들은 열심히 이곳저곳을 데려가고 보여주고 물심양면으로 나를 위해 함께 시간을 내주었다.
홈스테이 비용은 사무소에서 일비/식비를 책정하여 지급한다. 정해진 사항이기에 미리 사무소 직원들이 가서 이야기해 놓는다.
때로는 이 점을 악용하여 외국인이 거주하기에 어려운 상황임에도 돈만 받고 단원을 돌보지 않는 홈스테이 가정도 있는 반면에 운이 좋게도 나의 경우는 정반대로 돈을 받았기 때문에 좋은 식당을 데려가고, 더 많은 관광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가족들이었다.
덕분에 오히려 파견하고 나서는 못 가봤을 좋은 경치들을 많이 구경할 수 있었다.
외식은 현지식과 서양식을 섞은 식사로 나를 배려해 주었고, 현지 전통문화를 즐길 수 있는 결혼식이나 친척집 방문까지 경험할 수 있어 풍부한 OJT 기간이 되었다.
물론, 집은 한 번에 구하지 못했지만 선배 단원들과 식사도 하면서 얼굴 익히고 다시 수도로 돌아왔다.
그렇게 다시 어학원을 다녔고, 마지막 동기들과 여행으로 현지적응훈련을 남쪽으로 떨어진 분지 호수로 다녀온 뒤 각자의 파견지로 흩어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