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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Aug 04. 2019

[출간전 연재] 해외봉사, 이름은 거창한.

1년의 간호사 생활 끝에 맞이한 선택

*본 글은 종이책 출간 전 발행 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향후 출판 서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지원

대학생 때 활동했던 선교동아리에서 간 단기선교 때문에 만들었던 페이스북을 통해 마침 그 타이밍에 해외봉사 모집 광고를 보게 된다. 


건너건너 알게 된 분이 올린 공고문의 주소를 따라 지원자격에 눈에 띈 '경력 1년'. 

아, 지원은 할 수 있겠다. 바로 선발 과정과 활동 내용, 귀국 후 지원에 대해 알아봤다. 


생활비와 주거비 지원, 지원 후 나오는 보조금, 국제개발 쪽으로의 경력 인정, 언어 습득 등의 이점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이번에도 나는 거창한 '인류애 실현' 등의 이유보다 현실적인 면을 제일 먼저 본 셈이다.


그 외 단점으로는 개발도상국에서의 여자 혼자 생활한다는 점과 언어, 문화, 치안 등의 차이와 문제점이 있었다. 나름 개발도상국을 다녀본 경험과 타지에서의 자취 경력이 있었기에 할 수 있을거야, 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위의 단점들을 다 상쇄시켜버렸다.


그래도 경력 1년은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어 가족들과 의논했더니 엄마가 그냥 해 보라고, 어차피 떨어질 지도 모르는 건데, 하고 팍팍 밀어주어 지원서를 작성하게 되는데 그 날이 마감 1일전이었다. 지원은 매우 간단했다. 


질문에 따라 타이핑만 글자수에 맞춰 하면 되는 건데 질문들은 "당신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그 이유는?" 같은 대기업 자소서에 나올 법한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건 대기업도 아니고 취업을 목적으로 간절하게 작성했던 게 아니라서 생각나는 대로 흘려 적었다. 


단답형으로 간결하게 딱 글자수에 맞춰 몇 개의 칸을 작성하니 지원서 작성이 완료되었다. 지원하기 버튼을 누르면 되는데 조금 떨리면서도 '설마, 되겠어? 되더라도 내가 근무표가 맞아서 면접이나 보겠어?' 하는 마음으로 클릭!, 그리고 완료.




지원자 발표일까지 2주간의 시간이 있었고 만약 되면, 면접에 가면, 사직한다고 얘기해야 하나 등 김칫국을 사발로 마시면서 은근히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고 2주 후, 근무시간과 겹치지 않는 시간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합격 통보를 받았다. 


'오, 뭐지. 그냥 물 흐르듯 지나가는 것 같네?' 


그렇게 일주일 뒤 면접을 보러가게 된다. 면접장소인 양재교육원에 도착하면 본인확인과 범죄사실 확인 조회 및 개인 신용 같은 범법유무를 확인하고, 강당에 다 같이 앉아서 이름을 호명할 때까지 기다린다. 면접 대기 시간엔, 성격장애 테스트 (여러개의 질문지가 있고, 내 성격이 이상한지 아닌지 보는 것 같은데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시험은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내가 정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를 치다가 면접 순서가 되면 면접장으로 간다.


면접장에는 같은 직군끼리 3명 혹은 2명씩 들어간다 (인원수가 안 맞을 경우, 혼자 보는 분도 계신다). 직무 관련 질문도 하는데 운이 좋게도 나는 중간에 앉아서 잘 모르는 것도 옆에서 대답하시는 걸 듣고 잘 주워서 살을 보태며 모면했던 시간이 되었다 (대답을 잘 못해도 붙으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나중에 우리끼리는 면접에서 본인의 지식이 많아도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어버버 했어도 붙는 경우가 많은데 그 사람의 성격이 정말 가서 잘 버티느냐 하는 걸 보는 것 같다고 결론내렸다).


그렇게 면접도 보고 일주일을 더 기다려 신체검사가 나왔고, 그 날 또한 근무시간과 겹치지 않아 지정한 병원에서 검사를 받게 되었다. 


문제는 재검이었는데 다른 기업의 신체검사와 다르게 조금의 이상수치라도 있으면 재검사를 받게 했는데 나의 경우는 간호사들의 흔한 직업병인 "방광염"이었다. 재검사를 하는 날까지도 듀티가 겹치지 않아 이 때 예감했다.


'아, 가겠구나.'


어느나라를 썼는지도 가물가물한데 진짜 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재검도 마치고 3주간의 시간동안 병원에 얘기를 했다. 


수선생님은 확실해지면 사직서를 받겠다 하셨고 그 때 당시에는 한 달의 여유시간이 아니고도 사직이 가능했던 시절이라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직을 했다. 굉장히 상도덕 없는 사직이었으나 정말 될 줄 몰랐기에 저질러버린 일이었다


결과 발표하는 날 다들 합격한 것에 기뻐해주면서 아쉽지만 힘내어 잘 하다 오라고 토닥토닥 해주시며 보내주셨다. 다시 생각해도 감사한 일이다.


5일 후, 1년 1개월이 되는 마지막 날,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병원생활을 끝내고 국내교육원으로 입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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