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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Aug 02. 2019

[출간전 연재] 간호학과 왜 갔어요?

처음의 선택, 그 시작에 대하여

*본 글은 종이책 출간 전 발행 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향후 출판 서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간호학과 왜 갔어요?"

전공에 대한 질문은 학생 때도 많이 받았지만 졸업하고 나선 더 많이 받게 된다. 특히, 처음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는 자리에선 더더욱 그러하다. 첫 병원, 첫 해외봉사, 업종 전환, 남편과의 만남 등 많은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해 왔다. 때때마다 답변이 달라졌지만 한 가지 변함없이 대답한 이유는,

"어딜 가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어 보여서요."이다.


고만고만한 등수의 학생이 먹고살려면 '보장'이라는 단어만큼 매력적인 건 없는 것 같다. 취업 보장, 전문직 기술,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나무, 이 세 가지 조건이 나에게 부합하면서 자연스레 선택하며 들어간 전공이었다. 대다수의 친구들이 그러했고 나 또한 그랬으므로 이 전공을 선택하게 된 다른 이유인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현실적이지 못한 답변은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한 말이었다.


그렇게 들어간 학교, 학과. 예상대로 험난했고 성적은 바닥을 쳤다. 공부를 안 하고 출석을 안 하는 것이 아님에도 꾸준히 밑바닥을 보인 학점은 오를 생각을 안 하며 마지막에서 10번째로 겨우 학점만 채우며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다행히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무사히 졸업 전 취업된 병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첫 직장


많은 간호사들이 첫 직장의 기억이 매우 강렬하나 짧은 경우가 있을 것이다. 졸업하자마자 간 대학병원, 종합병원 등의 2,3차 의료기관에 취업하여 한두 달 활활 타다가(장작더미처럼 불에 타는 것을 의미) 사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갓 졸업한 햇병아리들은 보통 상급 의료기관에서 경력을 쌓고 이후 작은 곳으로 가기 때문이다. 모든 기관과 사람이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


성적이 좋지 않았기에 메이저급 대학병원은 가지 못했으나 종합병원에 취직하여 2월 국가고시가 붙기도 전에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발령을 받아 입사했다. 태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의료계의 신입 생활은 호되기로 유명하다. 게다가 아는 것도 많지 않고, 순발력도 없고, 눈치도 기괴하게 떨어지는 편이라 누가 봐도 고문관 같았으리라 생각한다. 있는 폐, 없는 폐 끼치며 심리적으로도 크게 위축되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며 두 달 만에 첫 직장을 나오고 집 근처에 있는 병상수가 더 적은(첫 직장은 환자 베드수가 600 이상, 두 번째는 250 이하) 시골 공공병원에서 한 달이 지나고 일을 시작했다. 이 곳이 나의 공식적 첫 직장이 된다.


첫 병원에서의 트라우마가 강렬했기에 힘든 삼 교대 생활도 2달 동안 즐겁게 해 나갔었다. 이유 있는 지적, 합당한 질책, 뒤에서의 칭찬들이 있었고, 보람을 느끼며 일을 할 수 있었다.

첫 직장


하지만 힘든 일은 힘든 일인지라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움이 쌓였고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고민만 깊어갔다. 6개월이 지나면서 과연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나는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결국 공무원 준비를 하다 실패해서 작은 병/의원을 전전하다 (정착하신 선생님들도 많고 만족스러운 곳도 있지만 그런 곳을 찾기 힘들어서 여기저기 이직하는 경우를 말함) 끝나는 건가, 그것대로 나쁘지 않지만 나쁘지 않은 삶을 살고 싶은 건 아닌데, 하는 생각들이 이어졌다. 


미래를 좀 더 일찍 준비하는 경향이 있어 (나쁘게 말하면 설레발) 앞으로의 계획을 그려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내가 하고 싶은 건 어떤 종류의 일인가 하고 묻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뭘 하고 싶은가.' 중2병 같은 질문 앞에 내가 하는 일을 돌아보게 됐다.

 

먹고살려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것치곤 간호사 일은 이타적인 성격이 강했다. 나는 못 먹고, 못 싸고, 아프더라도 제쳐두고 내 앞에 못 먹고, 못 싸고,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게 먼저여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엄청난 인류애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내 일이 아닌 아픔에 내 일처럼 동동거리며 뛰어다니고 있다 보면 누군가를 위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곤 했다.


특히, 공공병원의 특성상 여러 수혜를 받으시는 분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부담스러운 병원비를 다소 경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보호자도 없고, 보호자가 있어도 소외받고 있는) 환자에게 지금 이 순간 가장 큰 정성을 쏟는 의료진들을 보면 돈만 받고 하는 직업치곤 참으로 이타적인 성격이 크다,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일을 마치고 나면 뭔가 뭉근해지는 기분이 가끔씩 밀려올 때가 있었다.

'고작 1년 차 신규가 뭘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안의 뭔가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도움을 주는 삶, 의미 있는 일.


나는 계속해서 그런 느낌을 받으며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됐고 입사 일 년을 2달 앞둔 시점,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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