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 Goldberg variations BWV.988, Aria
비 오는 날에는 바닥을 보며 걷는다. 숨을 쉬러 나왔다가 너무 멀리 와버린 위태로운 지렁이가 많아서다.
원랜 그냥 손으로 집어서 주변 화단에 옮겨 줬었는데 사람의 체온이 지렁이에게 무척 뜨거울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주변의 나뭇가지나 잎을 이용하여 옮겨 준다.
도구를 지렁이 밑에 깔려고 하다 보면 지렁이가 놀랐는지 꿈틀거린다.
“괜찮아” 타이르며 듣지 못하는 지렁이가 나뭇잎 위에 올라가도록 하고 나뭇잎 양끝을 잡아 올려 주변 화단 흙을 살짝 파고 그 가운데 지렁이를 놓아주는 것으로 작업을 마친다.
하루는 개미 한 마리가 인도 한가운데서 자기 몸보다 훨씬 커다란 죽은 곤충을 옮기고 있었다.
열심히 사는 중에 인간에게 밟혀 죽으면 그 개미를 앞서가던 개미도, 기다리던 개미도 영문 모르고 동료와 먹이를 잃을 것이었다.
행인을 등지고 앉아 개미를 지켜봤다. 다행히 길가로 이동했다.
2차 고비, 큰 장애물. 턱을 못 넘어가고 있어서 언제 어떻게 도와줄까 생각하는 중에 열 번 시도해서 성공하는 걸 보고 환호했다.
2차원을 사는 지렁이와 개미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
인도에서 밟히거나 끝없이 집을 찾아가다 아스팔트 위에서 말라버렸을지 모를 지렁이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 의해 흙으로 돌아갔고
개미가 턱을 넘기를 시도하다 열한 번째 실패를 했다면 결국 알 수 없는 도움을 받았을 거다.
지렁이를 돌려놓고 개미의 이동을 돕는 것이 그들에게 이로울 거란 생각이 인간 중심적이긴 하지만, 다른 차원을 살아가는 생명체가 나를 구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다른 차원에서도 누군가들이 우리를 어여삐 가엾게 여기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운 좋게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도 그들이 몇 번인가 도와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든 종교든 예술이든 이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었겠지.
나를 인지할 수 없는 존재 그리고 내가 인지할 수 없는 존재에 느끼는 막연한 경외는 바흐 골트베르크 변주곡 아리아와 닮았다.
두려운 지렁이에게 쓸데없이 진동만 더할 “괜찮아” 대신 들려주고 싶은 노래.
P.S. 여름에는 길에 누워있는 매미들도 뒤집어주거나 다시 나무에 붙여줘야 한다. 뒤집자마자 날아갈 수 있으니 놀람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