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Wien-München 10일, 1일차
매년 두 번의 차례와 두 번의 제사를 지내는 우리 집,
차례도 안 지내고 먼 길 떠나면 부모님이 서운할 테니 추석날 오후에 떠나는 스케줄로 정했다.
마침 그 편이 공항도 한가했고 티켓도 조금 더 저렴했다.
회사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중국 사람이다. (AKA 중국부자)
유럽 갈 때 에어차이나를 타고 북경에서 6시간 경유한다고 했더니, 다음날 집에서 자기가 갖고 있는 중국 돈 전재산을 가져왔다며 용돈으로 쓰란다.
가족과 유사 가족 덕에 배도 마음도 제대로 채우고 출발!
전날 사방팔방으로 떠난 지인들이 공항 터질 거 같다고 해서 3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추석 당일엔 여유로웠다. 게다가 스마트 패스로 게이트를 통과했더니 3시간이 통으로 남아버렸다.
이때부터 고난의 시작이었구나.
공항 이동 1시간 + 인천공항 대기 3시간 + 비행 2시간 + 베이징 공항 대기 7시간 + 비행 10시간 + 뮌헨 시내 이동 1시간 + 뮌헨 중앙역 기차 대기 1시간 + 기차 5시간
총 30시간의 경로였다니. 덜덜.
출국장을 둘러보는데 면세점 기념품 과자 패키지에 약간 놀랐다. 우리 더 예쁘게 할 수 있잖아,,
지금 다시 보니 한글 텍스트만 있어도 일단 기념품의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는 듯도 하고.
그래도 출국장 로비에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이벤트 참여도 하고 게이트 왕복 산책을 하며 지루하지만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여행은 좋지만 비행은 부담스럽다. 답답함도 그렇고 N 인간의 무서운 상상까지.
비행 중에 움직임이 제한되는 것도 싫은데 와중에 밀가루까지 먹으면 몸이 퉁퉁 부어서 매번 글루텐 프리 특별식을 주문한다.
일반 기내식은 때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글루텐프리식은 싫었던 적이 없다. 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
잠 안 자고 버티는 항로에서는 복도 쪽에 앉아서 화장실도 편히 가고 중간중간 몸을 풀러 다닌다.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바로 와이파이 기계를 찾아 키를 발급받아 가족들에게 잘 도착했다고 연락하고 공항을 둘러보기 시작..!
공항 출국장이 이렇게나 큰데 식음료 매장은 카페 2개와 KFC, 피자헛 정도만 있었다.
조금 더 중국 특색이 드러나는 점포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울 언니가 공항에서 스벅 사 먹으라고 준 용돈 첫 개시. 바닐라 크림 프라푸치노
다행히 중국 관광 상품 점포가 있어서 구경했는데, 이런 걸 보다 보니 중국 여행 욕구가 스멀스멀 일었다.
중국 땅에 있으면서 공항 안에서만 7시간이나 대기해야 한다니 안타까웠다.
긴 비행에서는 버려도 되는, 읽고 싶던 책을 챙겨 와서 읽고 (책이 있어도 될 만한)어딘가에 두고 여행을 시작하곤 한다. 이번엔 읽다 보니 책 선정에 실패했음을 깨닫고 베이징 공항에서 꾸역꾸역 다 읽고 자리에 두고 왔다.
몇 년 전 프랑스 여행을 떠나며 읽었던 모파상 소설 <여자의 일생>은 정말 좋았다. 그 문체에 매료되어 몇 날 며칠 머릿속에 드는 생각조차도 그의 어투로 떠올랐던 기억...
빨간 담요는 집에서 안 쓰는 것을 공항 노숙 때만 쓰고 버릴 작정으로 가져왔는데, 따뜻하게 해 준 것이 고마워서 버릴 수가 없었다. 애착담요 등극;; 여행 내내 갖고 다니다 다시 잘 가져왔다.
탑승 30분 전이 되니 출국장 여기저기서 알람 사운드가 들리고 사람들이 마치 비디오 1.5배속 한 듯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 장거리 비행 시작..!
탑승 후 2시간쯤 되자 새벽 첫 기내식이 나왔는데, 자몽, 글루텐프리 빵, 마가린, 물로 단출했다.
뭐가 덜 나온 건가 싶어서 옆 사람 일반식을 보니 줘도 안 먹을 거 같이 생긴 샌드위치와 요거트뿐이었다.
하긴 새벽에 뭘 얼마나 먹으려고... 자몽 줘서 고마워 에어차이나... 승리의 글루텐프리식...
거의 도착 즈음 기내식이 한 번 더 나왔고 감사히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4년 만에 도착한 6시 20분 이른 아침의 뮌헨!
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루프트한자 기사님들은 참 스위트하다. 짐 번쩍번쩍 들어주고 손에 초콜릿을 쥐여 주시는가 하면 윙크 날리기는 예사... 내가 작으니 동양에서 온 방랑자 꼬마쯤으로 여기는가. 아무튼 덩달아 스위트해져서는 즐거울 따름...
좋은 자리에 앉아 코로나 이후 처음 보는 유럽의 바깥 풍경을 구경했다. 이윽고 중앙역 앞에 도착..!
루프트한자 직통버스 정류장은 뮌헨 중앙역 북쪽 출구 건너편에 있고 시내로 들어올 때, 공항으로 나갈 때 승하차 위치는 같다.
기차 시간까지 꽤 시간이 남아 천천히 역 쪽으로 이동했다.
나중에 누군가와 따뜻한 계절에 뮌헨에 온다면 세트로 입고 기분 내려고 아껴둔 뮌헨 전통 의상 Dirndl 디른들
데엠이 있어서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갔고 현지에서 보니 더 반가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탕 엠오이칼 오니히
모어겐! 뮌헨 하우프트반호프
아직 옥토버 페스트의 열기가 가시지 않았던 풍경과
4년 전 어느 날 Eine Kleine Pommes, Ohne Salz, Bitte (작은 감자튀김 하나 소금 없이 주세요)라는 말을 처음으로 스스로 해 보고 감격스러웠던 기억의 Pommes Freunde 폼메스 프로인데. (Potato Friends :))
비둘기와 함께 걸어 다니는 중앙역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간식들. 모든 게 4년 전 아침 그대로였다.
유럽에서는 손질된 과일을 여기저기서 아무 때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너무너무 좋은 과일 귀신
(한국에서는 생과일주스 파는 카페 가서 갈지 말고 과일째로 달라고 해서 먹곤 한다.)
중앙역사 임비스마다 쇼케이스를 꽉꽉 채운 신선한 빵과 샌드위치를 보니 독일에 왔구나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독일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따스운 사람들과의 기억 때문인데,
이날 기차에서도 눈인사만 했을 뿐인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짐 올려줄까? 묻고 20kg짜리를 번쩍 들어 올려주던 분이 있었다.
근처 가족석에 앉았었는데 그 자리를 예약한 한국인 가족들이 오는 바람에 다른 자리로 옮겼다.
여기서 팁.
DB 2등석은 티켓 예약 시 좌석 예약이 동시에 되지 않아 추가 절차가 필요하고 비용이 들기 때문에 별도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만(특히 현지인들은 예약을 잘 안 하는 듯) 가족석의 경우에는 가족이 함께 앉기 위해 예약하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에 자리를 보전하고 싶다면... 2인석 역방향에 앉는 것이 좋다.
나는 원래 기차의 역방향 좌석을 좋아해서 처음 앉았던 자리에 그대로 앉아 갈 수 있었다.
이틀 머문 적이 있는 모차르트의 도시, 사랑스러운 잘츠부르크도 지나고...
30시간쯤 되어 가니 이제 여행 뽕이라곤 다 소진하고 지쳐부러서 와 다시는 이 경로로 안 온다 다짐할 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