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JANG Oct 17. 2018

My bed : 나의 침대

얼마 전 나는 이사를 하는 바람에, 새로운 침대를 구입해야만 했다. 침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을 자는 시간 이외에도 많은 시간을 위에서 보내는 공간이다. 더군다나 나 같은 1인 가구의 젊은 사람들에게는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는 일이 많다.

<My bed>(1998)


사실상 침대는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침대에서 잠을 자며 꿈을 꾸기도 하고 노트북을 배에 얹은 채로 슬픈 영화를 보기도 하며, 연인과 함께 은밀하게 사랑을 속삭이기도 한다. 이처럼 침대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며 비밀스러운 공간이기도 하다. YBA로 불리는 영국 출신의 미술 작가들 중 한 명인 트레이시 에민은 여성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런 은밀한 사정들을 <My bed>(1998)라는 제목의 작품으로써 만인의 앞에서 공개를 했다. 트레이시 에민은 어린 시절부터 불온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왔는데, 13세 때 엄마의 애인에게 성폭행을 당한 이후 가출을 해서 낙태와 유산을 겪고, 우울증과 트라우마 등으로 극단적인 시도 또한 서슴지 않았다. 이후에 그녀는 예술로써 자신의 고통을 승화시키기를 택했고, ‘나의 삶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나의 삶이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이 작품에서 자신이 평소 잠을 자고 생활을 하는 침대의 모습을 사실적이고 노골적인 연출을 통해 설치작품으로 재현해냈다.

이 침대 위에는 어지럽혀진 이불과 담배, 술병, 여성의 속옷, 스타킹, 콘돔 등이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는 모습이었고, 그 모습은 사실 너무나 불온하고 보는 사람의 낯을 부끄럽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은밀한 개인사를 만천하에 작품으로 낱낱이 드러낸 것이다. 처음 작품이 발표된 1998년도에는 이런 작가의 의도에 코웃음을 치며 조롱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이내 1999년도에 영국 최고의 미술 시상식 터너 프라이즈(Turner prize)에서 최종 우승후보 4인에 이름을 올리며 미술작품으로써의 가치와 그 시도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이 트레이시 에민의 대표격인 작품이 될 정도로 유명해진 큰 이유가 또 한가지 있는데, 99년도 터너 프라이즈의 후보 전시회 기간 중, 중국인 청년 2명이 난입해 에민의 작품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뛰어놀아 작품을 모두 헤집어놓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후에 알고 보니 이 둘은 ‘Mad for real’이라는 퍼포먼스 예술가라며 자신들을 소개했고, 그날의 사건도 자신들의 퍼포먼스 아트임을 밝히며 그해의 우승작보다도 언론의 주목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던 작품이 되었다.

<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

(1995)

이외에도 에민의 작품은 자신의 개인사를 주로 많이 다루는데, 자신과 함께 잠을 잤던 102명의 사람들, 할머니, 낙태로 잃어버린 아이의 이름 등을 텐트 속에 새겨 <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1995)라는 설치작품으로 전시를 하기도 하였고,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자신에게 마지막 이별을 고했던 어느 해변의 오두막을 그대로 가져와 <The last thing I said to you is don’t leave me here the hut>(1999)라는 이름의 작품으로 전시를 하기도 했다. 이런 에민의 행보를 두고 혹자들은 고백의 미술, 고백의 여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

고백에는 커다란 용기가 동반된다. 트레이시 에민의 미술작품들은 모두 에민의 용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녀의 용기로 태어난 미술작품들은 보이기 위한 예술이 아니고 오롯이 자신의 치유를 위한 미술이다. 그녀의 몇몇 작품들은 동시대의 미술작가들이 으레 가져야 하는 스타성과 비즈니스쉽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에민의 용기와 자유로움이 그녀의 작품을 더욱 가치 있고 빛나게 만드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전시다그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