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D-7 다큐멘터리에서 소개된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 일레븐 메디슨 파크(Eleven Madison Park)는 레스토랑 Top 50 1위, 미슐랭 가이드 3 Star, 와인 스펙테이터 어워드 대상 등 그 이력이 화려하다. 2011년 파인 다이닝의 대부와 같은 '대니 마이어' 회장은 건실한 레스토랑 사업가 윌 귀다라(Will Guidara)와 유명 셰프인 대니얼 흄(Daniel Humm) 셰프를 믿고 이 레스토랑을 넘겼다. 대대적인 인테리어 보수를 거쳐 재 오픈을 앞두고 미디어와 사람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오픈 전 마지막 뜨거웠던 7일간의 기록이 D-7에서 소개되었다. 보는 내내 함께 긴장될 정도로 촉박한 시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산더미였다. 주방팀은 밤을 새 가며 오픈을 준비했고 인테리어 공사로 발 디딜 틈 없는 곳에서 홀 담당 직원들은 빈 접시에 메뉴를 써 붙여 두고 메뉴 서빙 시뮬레이션을 했다. 멘트 하나하나 고객의 완벽한 식사 경험을 위해 신경 썼다. 직접 앉아 보고, 가상의 주문을 받는 동안 테이블 아래 발도 올려 보고, 간접 조명의 조도와 각도도 체크했다. 예술적인 식사 경험과 최상의 서비스를 섬세하게 제공하는 파인 다이닝의 세계에서 그 한 번의 경험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군분투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빈티지 블루톤의 모헤어(앙고라 산양의 모 섬유-angora goat hair-약간 까칠까칠하고 꼬불한 러그카펫 느낌) 의자가 약간 거슬린다고 했다. 윌 대표도 역시 등이 약간 따끔하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다고 하는데 둘은 역시나 왠지 불편하다고 했다. 얇은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던 둘은 모헤어 털이 거칠게 피부에 언뜻언뜻 닿아서 불편했고, 긴 팔 두꺼운 소재 셔츠를 입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당장 교체할 패브릭을 알아보기도 했고, 패브릭에 쓰는 컨디셔너 제품도 수소문했다. 그러다가 스팀기를 이용해서 모헤어의 결의 방향성을 눕히고 부드럽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모든 의자 패브릭을 스팀기로 숨을 죽였다. 어떤 얇은 옷을 입거나 짧은 옷을 입고 앉아도 의자에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오직 대니얼 흄(Daniel Humm)셰프의 작품 같은 음식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다.
간결함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을 생각하고 고려했을 때 나온다. 섬세하게 고객의 입장에서 모든 순간과 경우의 수를 고려하고, 모든 경험의 순간을 계산한 뒤에 불필요한 것을 가지 쳐낸다. 모든 것을 나열한 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그 경험을 온전하게 최대 효과로 끌어들일 수 있도록 집중한다. 그리고 그 경험에 방해되는 요인이 있다면 불편 요소를 제거하거나 감소하는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많은 것이 좋아도 단 하나의 불편 경험이 쌓인다면 고객의 첫 번째 경험은 마지막 경험과 기억이 될 수밖에 없다.
Eleven Madison Park
(좌) 윌 귀다라 공동대표 (우)일레븐 메디슨 파크 임직원
(좌) 대니얼 흄 셰프
누구나 바다 쪽을 바라보고 앉고 싶게 마련.
강원도 고성 아야진 해변 근처 '인스타그래머블'한 카페가 있다. '스위밍 터틀'이라는 예쁜 카페인데 초등학교 1학년 작가가 엄마와 함께 수영하는 거북이를 상상하며 직접 그린 그림과 이름을 카페 로고로 썼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자갈밭을 지나야 하는데 신발에 묻은 모래가 자연스럽게 털어지는 효과가 있다. 입구부터 계단 없이 갤러리 회랑을 지그재그 올라가듯 하얀 회랑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탁 트인 바다가 나온다. 모든 좌석은 고성의 바다가 어떤 각도에서도 잘 보이도록 바다를 향해 놓여 있다. 그리고 바다와 각도를 잘 틀어서 햇빛이 잘 들어오되 너무 많이 들어오지 않고, 바다가 잘 보이되 너무 바다만 보이지 않고 해변가 모래와 바위도 함께 잘 보이도록 건물이 지어져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감안하여 중간중간 큰 곰들도 바다를 바라보며 놓여있다. 3~4명도 함께 앉을 수 있도록 긴 소파 테이블도 바다를 마주 보며 있다. 탁 트인 바다 풍경과 그 위로 하얀 구름이 떠다니는 것을 바라보면 불멍처럼 구름 멍을 하게 된다. 북한과 가까운 곳이라 아직 채 철거되지 않는 철조망도 해변 따라 보이고, 민간인 출입은 가능하기에 해변에 거니는 사람들도 카페에서 바라보는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바닷가에 놓인 카페 공간을 기획할 때 일반적인 마주 보는 좌석 배치를 한다면 반대쪽 사람은 바다 뷰를 포기하거나 양보하는 셈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래도 상대의 얼굴보다는 풍경에 시선을 뺏길 수 있다. 혹은 대 놓고 양껏 바다만 바라볼 수 도 없다. 마주한 사람들 봐야하기 때문이다. 멀리 여행을 가서 바닷가 카페에 들렀다면 대개 바다를 커피나 차와 함께 즐기러 간 사람들일 것이다. 풍경이 가장 중요한 장소이고 풍경을 가장 우선순위로 둔다면 풍경을 중심으로 나머지를 재배치해야 한다. 건물의 모양, 창문의 크기, 낮 동안 해의 움직임, 바람이 지나는 길, 습도, 사진을 찍을 때 각도와 화면에 담기는 풍경 등 모두 섬세하게 챙겨야 한다. 그래야 가장 중요한 모먼트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