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제조업계에서 일합니다.
내가 제조업계에서 일하면서, 오며 가며 만난 거래처 사장님들이 나를 위해서 하는 말씀들이 있었다. 아. 다 남자들이다.
현 사장님은 나를 볼 때마다 "결혼해야지."를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여서 말씀하셨다. "에구. 아들도 아니고 딸이 여기서 일해서 어째. 여자 손이 이렇게 상해서 어째. 남자 친구 있어? 빨리 시집가서 남편보고 대신 일하라고 해." 내가 할 남자가 없다고 말하면, "빨리 만나서 결혼해야지."라는 대답을 듣곤 했다.
나는 그저 헤헤거리고 웃고 넘기기 위해 애썼다. 속으로는 저 원래 손이 예쁘지 않아요. 진짜로 남자 친구 없을 때는 내 님은 어디 있을까요. 남자 친구가 있을 때는 이 남자가 내 미래의 남편이 된다고 해도 못 할 거 같은데. 혹은 내 미래의 남편이 이 일을 하기 싫어할지도 모르는데 어쩌죠. 내 미래의 남편이 이 업계에 발을 담그기만 하면 만사 오케인가요.라고 생각했다.
나도 안다. 사장님이 몇십 년간 제조업계에 몸담아 오면서 이 일이 얼마나 고된지 알기에 하시는 말씀이다. '딸' 같은 거래처 사장 딸내미가 안타까워서 하시는 말씀이다. 결혼을 안 하면 무엇인가 하자가 있다고 여기는 시대에서부터 살아오셨기 때문이다. 내가 사회에서 말하는 결혼 적령기에 서있기도 하다.
그런데 사장님 말을 들을 때면 사장님 혼자서 일하는 그 작은 공장만큼 답답했다. 그 안에 갇히기 싫어서 "사장님 저 이제 가봐야 해요. 차를 이상한데 주차해 둬서. 안녕히 계세요."라고 크게 인사하고 후다닥 나왔다.
그런데 대부분 사장님들은 나를 보면 저런 식으로 말씀하셨다. "얼른 결혼해야지."
안 사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최 대리님이 직접 더 배우셔야죠. 설계만 하시면 안 돼요. 손이 이쪽 일 잘할 손이에요. 저희 거래처 대표님이 여성분이신데,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에요. 지금 MCT 10대 가지고 있고, 직원들을 다 휘어잡아요. 저번에 중고기계 매입하는 사람이 거기 갔다가 당신이 뭔데 우리 기계를 팔라 말아라 하냐고 엄청 혼나고 왔데요. 최 대리님도 그럴 싹이 보여."
나는 기분이 좋았다. '여자'라는 이유로 못할 거라고 지레짐작하지 않고, 마음대로 한계를 긋지 않았다.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든 할 수 있다고 응원을 해주는 것 같았다. 남편에게 내 삶을 넘겨주고, 그에게 기대라는 말이 아니어서 좋았다. 고마웠다. 이 업계에서 살아남도록 격려해주시는 분은 안 사장님이 유일했다.
김상철 한컴 그룹 회장은 스스로 '컴맹'이라고 부르지만, IT기업 회장이다. 그러나 제조업계서는 스스로 '기계치'라고 부르면서, 사장의 자리에 오르기엔 무리가 있다. 일단 회사 규모부터가 다르긴 하지만.
내가 회사에서 현장을 제대로 이끌려면 나 정도만 일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자'가 되어야만 했다. 내가 했던 일을 주저리주저리 써 놓은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은 오! 이 여자 보소!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아주 아주 일부분만 했을 뿐이다. 시작과 끝만 손댈 뿐, 가장 중요한 중간 과정은 하지 못했다. 나는 금속을 엔드밀로 깎아서 형상을 만들거나, 연마로 살짝살짝 밀어서 0.01, 훨씬 섬세하게 0.002 공차로 평탄도를 맞추는 기술, 어느 정도냐면 표면을 거울처럼 빤들빤들 매끈매끈하게 만드는 기술은 없다. 나는 방전을 내려 전극의 형상을 금속에 그대로 담을 줄도 모른다.
사장님이 되기 위해서는 쇳가루가 풀풀 날리는 공간 속에서 하루 종일 숨을 쉬어보고, 엔드밀에 깎여 퉁겨져 나온 뜨거운 쇳조각에 맞아서 옷에 구멍도 나보고, 살도 데어 보고, 얼굴에 기름이 수백 번 튀어보고 그래야 한다. 우리 아빠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에게 질문했다. 1년 뒤에 죽게 된다면, 이 공장에서 일하다가 죽어도 괜찮겠냐고. 나는 안 괜찮았다. 아빠처럼 30년 넘는 세월을 공장 기름에 푹 찌들어서 살 자신이 있냐고. 나는 없었다. 나의 앞날을 위해서 오늘 단 5분이라도 기계 앞에 서서 버튼을 누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5분을 다른 곳에 쓰고 싶었다.
이런 나의 투정도 회사를 매각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아빠와 10년 넘게 함께 거래해온 나 사장님에게 말이다. 나 사장님은 결정이 되자마자, 그의 아들 나정을 우리 회사에 넣었다. 나 사장님 쪽으로 사업자를 넘기기 전에 나정 씨는 1년 동안 우리 회사에서 일을 배웠다. 규모는 작지만 대표가 해야 할 일이 많은 회사였기에, 아빠의 30년 노하우를 온전히 전달해줘야만 했기에.
아빠는 정말 안심했다. 우리 회사의 상황을 잘 알고, 신뢰가 두둑이 쌓인 나 사장님과 그런 그의 '아들'이 온다니! 아빠의 업을 후대에 이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남자가! 이 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남자'가 온다는 말인가!
아빠는 약간 기대했다. 아빠, 나 사장님 그리고 내가 같이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때였다. "둘이 나이도 같고, 뭐 계속 같이 일하다 보면. 허허." 아빠가 말했다. "허허. 자기들이 알아서 하는 거죠 뭐." 나 사장님이 말했다. 허허. 제발 좀.
우리 아빠만큼 일할 거라는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그는 나만큼도 일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정 씨도 온전히 그의 선택으로 이곳에 들어온 게 아니었다. 나 사장님은 우리 회사를 갖고 싶었고, 마침 나정 씨는 취업준비생이었다. 나 사장님은 본인 회사를 관리해야 했으니, 나정 씨를 우리 회사를 운영토록 한 것이다.
아빠는 소위 그의 인턴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전수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누가 봐도 마지못해 공장에 나오고 있었다. 아빠는 왜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하지 않냐며, 이 좋은 기회를 잘 누리지 못하냐며 갑갑해했다. 사업자를 넘겨받은 후에도, 나정 씨는 종종 아프고, 거의 매일 30분씩 늦게 오고, MCT 세팅 방법을 조금 배우다가 멈추고, 앞에 툭 떨어진 업무만 처리했다. 회사에서 있는 나정 씨의 모습은 나른해 보였다. 다른 직원들은 '남자'가 저래서 어디에 써먹냐고 웅성거렸다.
며칠 전, 나정 씨가 말했다. "저도 뭐 딱히 어디 들어가서 일하고 싶은 곳은 없지만, 여기서 일하고 싶진 않았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저희 아빠가 하도 이 회사 사고 싶다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도와주려고 온 거예요. 그냥 억지로 하고 있어요." 그는 나와 나이도 같았고, 이 업계에 대한 마음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남자'만이 제조업과 잘 맞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도 처음에 이런 일을 여자인 내가 어떻게 하냐고 그랬다. 남자가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런 일'을 멋지게 해내는 여자들을 보면서 나도 사회적 고정관념이 단단하게 박혀 있었고, 오히려 그런 관념이 여성들의 가능성과 성장을 막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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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제조업계에 진입하려면 발만 앞으로 슉 내밀면 되는데, 여자는 '구조적 성차별'이라는 큰 벽을 타고 올라가는 게 먼저이다. 남자는 어려워 보이고 중요한 기계 조작이나 영업과 관리를 맡고, 여자는 단순한 조립이나 포장 업무에 투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에 따라 임금을 다르게 주는 것도 자연스럽다. 남성은 생계부양자, 여성은 생계 보조자라는 성별 고정관념이 단단하기 때문이다. 나만 보면 결혼하라는 남자 사장님들처럼, 아들이 아니어서 아쉽다고 하는 아빠처럼 말이다.
나는 이 업계를 떠난다. 그냥 '나'라서 떠난다. 내가 다른 곳에서 머물고 싶어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