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재 작가님의 에세이 스탠드, 망원 6기의 시작과 끝
5월 10일, 태재 작가님의 에세이 스탠드 첫날. 내비게이션에 망원 2-1 공용주차장을 찍었다. 도착하니 사전등록 차량만 들어갈 수 있었다. 차를 돌려 망원시장 공영주차장으로 향했다. 입구 들어가기 전 골목부터 차가 줄지어 서 있었다. 주차공간 끌어당김의 법칙을 떠올렸다. ‘어디를 가든지 내 주차공간은 꼭 생긴다.’
이후북스 건물로 갔다. 1층 나들가게 창문 옆에 도로가 있었고 차를 세울 만한 공간이 있었다. 주차하려고 하는데 나들가게 사장님으로 추정되는 한 여자가 가게 입구를 청소하고 있었다. 왠지 사장님이 싫어할 듯해서, 가게를 오른쪽에 끼고 우회전했다. 건물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고, 그 옆에 바로 주차공간이 있었다. 야호! 역시나! 그 뒤에 마티즈 차량이 있었지만, 내 차에는 연락처가 놓여 있으니 주차를 했다.
시계를 보니 4시 22분. 5시부터 시작이니 여유가 있었다. 올해 처음 온 망원동, 오감으로 이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그렇다면 커피가 필요했다. 하늘에는 망글망글한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고, 셔츠에 카디건이면 충분한 날씨였다. 걷다가 맘에 드는 카페로 들어가기로 했다.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다가 하얀색 간판의 카페를 발견했다. 테라스에는 6명이 앉아 있었다.
계산대 앞에 섰다. 무슨 커피를 마실까 고민했다. 열 번 중 여덟 번은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그러나 망글망글 망원동에 온 날이니까 몽글몽글 크림을 올린 커피가 당겼다. ‘아인슈페너 6,000원’과 ‘흑임자 아인슈페너 6,500원’ 사이에서 고민했다. “흑임자 아인슈페너 맛있어요?”라는 내 질문에 직원은 맛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냥 아인슈페너를 주문했다. 흑임자 아인슈페너는 강릉에서 마셔야 할 것 같은, 일상을 완전히 탈출해버린 맛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질문은 왜 했을까.)
“아인슈페너 나왔습니다.” 점원이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눈을 의심했다. 내가 주문한 아인슈페너가 저 아인슈페어인가. 3,000원짜리 사이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스크 안에서 저절로 벌려진 입으로 “감사합니다.”를 말하고 커피를 받았다. 카페 밖에 앉아서 마시려고 했는데, 테라스에는 남녀 남녀 남녀가 앉아 있었다. 왜 들어가지 전엔 몰랐지? 그 조화로움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가 이후북스로 향했다.
차에 잠깐 들려 조수석 쪽에서 가방을 꺼내고 있는데, “저기요~” 가 들렸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 목소리를 바라봤다. 오른손에 빗자루를 들고 있는 나들가게 사장님이었다. 아. 주차공간 끌어당김의 법칙이여. 주차하지 말아야 할 구역에 내가 주차한 것인가. 그런데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다.
“그게 뭐예요? 어디서 샀어요?”
“아. 이거 아인슈페너라는 커피인데. 돌아다니다가 그냥 보이는 카페에서 샀어요. 카페 이름은 모르겠어요.”
“비엔나커피 그런 건가? 저 작은 게 특이해 보여서. 맛있어요?”
“아직 안 마셨는데, 한번 마셔 볼게요.”
사장님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손을 흔들었지만, 커피는 이미 입안에 들어와 있었다. 사장님은 내 바뀐 표정을 읽고 가격을 물었다. 가격을 듣자 흠칫 놀라며 그 정도의 맛인지 궁금해했다.
“음… 아니요. 저도 이렇게 작은 줄 몰랐어요. 한 번 맛보실래요?”
“괜찮아요. 요즘 신기한 것들이 많이 나와서.”
호기심 많은 사장님 덕분에 차 보닛이 커피 테이블이 되었다. 나는 수업 시간에 빨대를 요리조리 돌리면서, 크림 한 점 남기지 않고 다 마셨다.
5월 17일, 두 번째 수업 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었다. 만보정도 걷고 싶은 날씨여서 지하철을 탔다. 편의점에서 탄산수 하나 사서 망원동에 왔다. 수업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한 병 깔끔하게 비웠다. 쉬는 시간에 나들가게로 물을 사러 갔다. 계산대에 서 있는 사장님을 향해 인사를 하고 냉장고로 향했다. 커피를 마실 생각은 없었다. 망원동에 오기 전에 이미 엄마랑 커피 한잔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손이 잡은 것은 커피였다.
“사장님. 저 기억하세요? 지난주에 그 ‘비엔나커피’ 예요.”
“아~ 어쩐지 낯이 익더라. 커피가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 사람들이 방탄소년단 커피라고 많이 사가더라고.”
“아 그래요? 저도 그래서 샀어요. 헤헤. 전에 마셔봤는데 깔끔하니 괜찮더라고요.”
사장님은 나에게 왜 이렇게 예쁘냐고 하셨다. 나는 헤헤 웃으며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사장님은 밝고 아름다우시다고, 다음 주에 또 오겠다고 했다. 사장님은 호호 웃으면서 “예쁜 언니 또 봐요.”라고 했다. 나는 2,000원짜리 커피를 샀다. 그런데 사장님이 직접 내린 커피를 받은 기분이었다. 사장님의 추억과 배려의 향이 퍼지고 있었다. 커피 사길 잘했다. 한 병 말끔하게 다 마셨다.
수업 끝나고 1층으로 내려왔는데, 청소하는 사장님을 또 만났다. 인사를 하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려는데, 태재님도 마침 밖으로 나왔다. 태재님이 내게 “아시는 분이에요?”라고 물었다. 네. 태재님, 사장님이랑 이렇게 알게 되었어요.
내 손에 들려 있던 커피 덕분에 이런 이야기가 펼쳐졌다. 커피를 손에 들고 있었을 뿐인데, 같이 마시기까지 했다면 얼마나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을까. 그래서 나는 ‘커피 한잔해요’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나는 당신과 대화하고 싶어요.’ ‘당신을 알고 싶어요.’
마지막 에세이 글감이 ‘커피’다. 망원동에 온 날 커피로 시작했는데, 커피로 정리하게 되었다. 종이에 커피를 적셔보라는 태재님도 우리에 대해 더 알고 싶었나 보다. 나도 망원 6기가 궁금하다.
다능한 정님은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셨다는데, 운동 쪽 말고 다른 분야에서는 어떤 것을 해봤는지. 단단한 루님이 찾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지. 칼을 찬 지님이 남자 친구를 위해 포근하게 덮어준 솜이불 같은 말은 무엇인지. 따듯한 여님에게는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세계 책의 날에 태어난 다정한 진님에게는 책 추천을 받고 싶고. 저랑 비슷한 활동적이고 외향적이면서도 집을 사랑하는 원님에게는 집에서 어떻게 시간 보내시지. 재밌는 태재님, 개그감은 어떻게 기른 건지. 스무스한 수영장 에세이를 써보셨으니, 요가를 배우면서 유연한 에세이를 써보는 게 어떠신지. 정이 많은 영님, 커피 한잔하면서 인간관계의 적정 온도 유지에 관한 조언 부탁드린다고 하셨죠? 조언이라기보다는 저는 98도의 커피뿐만 아니라 아이스커피도 맛있고, 뜨거웠다가 식은 커피도 맛있고, 얼음이 녹아서 물맛에 가까운 커피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건 어려운 거 같아요. 물을 데우려면 전기나 불이 필요한 것처럼.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문단은 동기들의 첫 번째 에세이와 태재님의 '스무스'라는 책을 읽고 썼습니다)
당신들과 커피 한잔하고 싶다. 망원동에서의 24일을 커피로 목을 적시며 마무리하고 싶다.
요즘 혼자서 글을 쓸 동력이 좀 부족했고 저를 다시 정비하고 싶었어요. 주변에 분들의 열렬한 추천을 받고, 태재 작가님의 에세이 스탠드를 수강했답니다. 망원, 해방촌 등에서 수업하시는데, 저는 집과 가까운 망원동에서 들었어요. 3주 과정으로 에세이에 필요한 환경, 에세이를 다듬는 기술, 앞으로 계속 써나갈 수 있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총 2편의 에세이를 수업을 통해서 완성하실 수 있어요. 태재님께서 글감을 주시고, 그 재료를 바탕으로 내 글을 지어나가시면 돼요. 그리고 수업 때 태재님과 동기들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손을 볼 수 있습니다. 태재님은 정말 아낌없이 글쓰기 비법을 다 공개해주세요. '당신을 타투할게요' 도 이 수업 덕분에 쓸 수 있었어요.
https://brunch.co.kr/@choiyun/85
아! 마지막 수업 때 이 글을 읽고, 망원 6기 동기들과 태재님과 저녁을 먹었답니다. 수업이 저녁 7시쯤에 끝내서 커피보다는 밥을 먹어야 했거든요. 호호. 즐겁고 활기찬 에세이 수업 듣고 싶은 분들~아래 링크! 인스타그램 teje.offical을 방문해보세요!
https://instagram.com/teje.official?igshid=4ug2gtyst1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