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씨 Apr 20. 2024

6. 지금도 내 통화기록에는 고객님이 제일 많아

맨 처음 2점 리뷰가 남았을 때, 그야말로 멘탈이 쿠크.. 다스 바사삭 부서졌다. 4년 전 리뷰지만 아직도 그 리뷰 사진이 선명하다. 포장이 엉망이라 불만족스럽다는 내용이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5만원에 가까운 나름 중저가(?)의 화방용품을 팔고 있는데 포장이 엉성한 건 사실이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고백하자면 빨리 출고해야한다는 생각에 급급해 집에 남은 라면 박스에 담아 보낸 적도 있다. (엉엉 죄송합니다ㅠㅠ)


그 리뷰를 읽고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제품 크기와 딱 맞는 택배 박스를 주문했다. 가로,세로,높이 제품 크기를 재고 같이 주문하시는 스케치북이나 찰필 등 부자재를 넣을 여유공간이 약간 있는 규격의 택배 박스를 70개 들어있는 박스 단위로 구매해 놓고 나니 진작 이랬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점 리뷰 고객님에게는 정성어린 답글을 남겨 백배 사죄했다. 바뀐 택배 상황에 대해서도 상세페이지를 통해 안내했다. 박스를 열면 에어캡으로 포장된 오일파스텔이 보이는 모습을 GIF로!


택배 박스를 변경한 후, 같은 내용의 클레임은 없었다. 얼마 후 달린 문의들은 내가 생각지 못한 내용이었다.


' 오일파스텔 색깔 하나가 잘못 들어있어요.'

' 오일파스텔 검은 스폰지에 파스텔이 묻어있어요.'

' 안쪽 걸쇠가 부러져있어요. '


이런 문의들은 출고할 때 확인할 수 없는 제품 내부의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문교 오일파스텔은 공장에서 나올때 나무상자 겉면에 비닐 진공포장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상자를 열어 내부를 확인할 수 없다. 때문에 고객이 불량품을 받게 될 경우 그에 대한 반품 및 교환 처리(!)라는 새로운 레벨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불만을 토로하는 고객님과 연락을 주고 받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침부터 꿀꺽 삼키기 일쑤였달까. 고객님에게 혼이 날 때면 살면서 들었던 어떤 꾸중보다 더 엄중한 기분이 들었다. 어려운 통화가 끝나고 나면 온 몸에 힘이 쭉 빠지고 침울해졌지만, 사실 그 모든 꾸지람들이 가장 정확한 길잡이였다. 오일파스텔을 팔면서 자주 들은 야단의 대부분이 내가 어쩔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이 '우리만의 제품'을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니까. 이후 다른 상품들을 팔기 시작했을 때도 제품을 더 개발하고 새 상품을 준비하고 모자란 점을 보완하는 데에 고객님의 질책만큼 유용한 피드백은 없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지금은 효자상품 중 하나가 된 박스 자동차는 고객이 혼내는대로 고쳐서 만든 제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 얇다고 하셔서 두껍게 만들고, 포장이 헷갈린다고 하셔서 한 판에서 뜯어낼 수 있게 만들고, 만들기가 어렵다고 하셔서 조립식으로 만들고, 꾸미는데 오래걸린다고 하셔서 꾸미기 세트를 만들고, 완성했을 때 어떤 모습인 지 감이 안온다고 하셔서 12가지 조합 사진을 상세페이지에 보충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지금도 고쳐나간다.


애정하는 제품들은 모두 그렇게, 내 머리보다 고객님 머리에서 나온 생각에 맞춰, 내가 아닌 그들에게 알맞는 제품이 되어가는 것 같다. 또 하나의 스테디 셀러인 무지달력 같은 경우에도 매년 고객님들이 주시는 피드백을 바탕으로 디벨롭 시키는데, 내가 너무 좋아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제품이기 때문에 이 제품은 시즌 전 후로 5점이 아닌 후기를 달아주신 분들께는 모두 전화를 건다. 제품을 잘 받으셨는지, 배송상태나 제품에 문제는 없으신지를 여쭙고 혹시 내년에는 어떤 식으로 만들면 좋을 지 의견을 구하기도 한다. 내가 가끔 사석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런 전화를 누가 받냐고 웃기도 하는데 의견이 없다는 말을 들은적은 있어도 이상한 사람이라며 전화를 끊으신 분은 한 분도 없다. 오히려 제품 개발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객과 연락이 교환, 반품, 배송 문제 해결 정도의 범주이던 것이 조금씩 확장된다. 고객님이 어떻게 우리 제품을 찾게 되셨는 지,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서 구매하게 되셨는 지, 언제 사용하기 위해 구매하셨는 지를, 구매 내역만 보고서는 죽을 때 까지 알 수 없다. 흐릿하던 고객이 한 명의 사람이 되어서 내 제품이 어떤 현장에 쓰이는 지를 생생히 들려주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내가 어떤 고객과 어떤 상황에 쓸모 있는 사람인지를 알아간다. 처음 스토어를 열고 느낀 막막함의 팔 할은 세상 누구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무력감인데,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 뭐라도 반응해주는 분이 있다는 감사한 일이지 않나.


누가 뭐래도 고객님이 나와, 회사를 만들어주는 1등 공신이다. 구매하는 사람이 없다면 나도, 회사도 필요없다. 그래서 사랑하는 고객님은 무조건 많을수록 좋다.

그런데 그 많은 고객님들은 어디서 만날 수 있는걸까?







5년간 직접 CS하며 알게 된 몇 가지

1. 고객이 우선 원하는 건 공감과 소통이다.

불만에 대한 해결책을 먼저 제시하다가 '왜 이렇게 불친절 하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 T맞다.) 그 날 완벽 이해한 것이 일단은 어려움과 불편함에 공감해주고 그 다음에야 환불이든, 교환이든, 해결책을 제시해야한다는 점이다. 어쨌든 우리는 로보트가 아닌 사람이니까.


2. 두 사람 이상이 말하는 건 의견이 아니라 사실이다.

공급자 입장에서 내 제품은 완벽해보인다. 이 가격에 이 정도면 흠 잡을 데가 없다. 그런데 2명 이상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포인트가 있다면 그건 제품의 문제가 맞다. 한 명까지는 특이 케이스가 있을 수 있지만 2명, 혹시나 3명까지 된다면 그건 무조건 바꿔야한다. 그리고 그 부분을 바꾸면 매출도 고객 수도 후기도, 거의 대부분이 변한다. 물론 좋은 쪽으로.


3. 고객도 문의하는 게 귀찮다.

그 귀찮음을 무릅쓰고 우리에게 문의글을 남기거나 전화를 해 준 것은 엄청나게 고마운 일이다.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물어봐야했던 이유가 무엇인 지 파악하고 되도록 같은 문의가 다시 발생되지 않도록 해결해드리는 편이 좋다. 상품 구성에 대한 문의가 많다면 한 눈에 들어오도록 상품 구성을 다시 찍어 잘 보이는 상단에 게시한다. 옵션 선택에 대한 문의가 많다면 옵션명과 배치를 문의가 줄어들 때까지 바꾼다. 이미 적어둔 내용이지만 CS가 줄지 않는다면 내 눈에만 보이게 적어두었을 수 있다. 미리캔버스를 활용해 가독성 높게 해당 내용을 정리해서 게시하자. 고객은 전화하지 않고 궁금증을 해결해서 좋고 우리는 시간을 절약해서 좋고 그냥 다 좋다.


4. 문제가 될 수 있는 내용은 자진납세.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의견인데, 나는 제품의 아쉬운 점을 가감없이 공개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용하면서 불편함을 발견해서 반품,환불 접수를 해본 사람이라면 그 번거로움을 알 것이다. 판매자 입장에서도 주문은 기쁘고 반품은 슬프다. 서로에게 좋을 게 하나 없는 일을 줄이기 위해 제품의 정확한 스펙을 공개하는 것이, 나는 좋다. 보통 크기에 대한 오해가 많은데 사람이 들고 있거나 A4용지, 핸드폰처럼 사이즈를 가늠하기 쉬운 제품과 비교하는 형태로 상세페이지에 게시하면 사이즈미스로 인한 교환 반품을 줄일 수 있다.


5. 고객도 중요한데 우리가 더 중요하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도 있다. 처음에는 묵묵히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괴롭히기 위해 전화를 걸고, 억지를 부려 이득을 취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됐다. 나 혼자 상담을 하면 모르겠다. 그런데 상담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내가 들었던 비인격적 이야기를 누군가 또 듣게 되는 것이 끔찍하게 싫어졌다. 고객응대근로자 보호법이 명시하는대로 모욕적인 말을 반복하는 사람에게는 통화가 종료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종료한다. 상담용 전화기는 자동 녹음 되는 것이 좋다. 어떤 고객보다는 우리가 더 중요하다. 당신같은 거 필요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물건을 만들어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남아야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도 만들 수 있다.


이전 06화 5. 고객님 나를 봐주세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