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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Apr 06. 2024

4. 고객님 마음에 쏙 들기 위한 상세페이지

몇 달간 바닥 청소만 하다가 할 일이 생기자 기분이 좋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인터넷 최저가로 구매한

72색 목상자를 열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가기 시작했다.

목상자의 두께감과 표면질감이 잘 보이는 클로즈업 사진,

파스텔 크기가 잘 느껴지도록 손가락으로 잡고 있는 사진,

파스텔을 두르고 있는 종이가 얼마나 얇고 세심한지 보여주는 사진,

찍을수록 끝이없다.


이 때를 위해 큰맘먹고 구입한 항공뷰 고정 삼각대에 핸드폰을 놓고

파스텔로 오리를 그리는 영상도 찍었다.

완성된 그림과 파스텔을 같이 찍고

종이와 찰필, 종이테이프를 세트로 묶은 구성품도 찍고

종이 10장으로는 아쉬운 분들을 위해 준비한 연습장도 찍고

찰필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 보여주기 위해 또 그림 하나를 그려야겠다 싶어 비오는 밤을 그리면서 영상도 찍고 어쩌다 보니 하루가 다 갔다!


얼마만에 바쁘게 보낸 하루인지, 보람찬 기분도 잠시.

사진과 영상이 갤러리에만 있으면 판매까지 갈 길은 아직 한참 멀다.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켜고 상세페이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정리한 문교 오일파스텔의 차별화 전략은 이랬다.


1. MOP랑 MOPV의 차이가 잘 드러나게 상세페이지를 매우 친절하게 작성하자.


2. 이 파스텔을 써서 그리면 유튜브에 나오는 그런 그림들처럼 된다는 걸 보고 안심할 수 있게 하자.


3. 오일파스텔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재료들을 최대한 다양하게 준비해서 한꺼번에 구매할 수 있게 하자.


이제 남은건 상세페이지에 이 차별화 요소를 잘 녹여 고객님들이 7만개의 상품 중 내 상품을 구매하시도록 설득하는 일이다. 내 상품이 최저가 상품에 비해 1만원이 더 비싸다고 해도!


가격을 최저가와 비슷하게 맞추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지금은 제품을 만들 때 내 상품이 가장 저렴하거나 최소 '어, 가격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 자신이 없다면 아예 판매를 안하지만, 그 때는 그만한 가격을 맞출 능력도 지식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가격 이외의 것들로 노력을 해야했다. 그리고 내가 오만 시도 끝에 배운 것은 가격이 구매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은 맞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내 제품은 최저가에 비해 1만원 이상 비쌌지만 판매 시작 2달도 안 되어 네이버 쇼핑 > 화방용품 > 주차별 판매 랭크 5위 안에 들었다.


2020년 9월 기준


쟁쟁한 선배님들이 즐비한 판에서 내가 파는 제품이 뭐가 달라서 - 심지어 다르지도 않다. 다 똑같은 문교 오일 파스텔 아닌가. - 조금 더 선택을 받았을까.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차별화 포인트를 상세 페이지에 잘 녹이기 위해 노력했다. 다시 위에 써둔 것을 가지고와서 뭘 어떻게 했나 하나씩 살펴보자.


1. MOP랑 MOPV의 차이가 잘 드러나게 상세페이지를 매우 친절하게 작성하자.


MOP는 MOPV에 비해 오일 함량이 낮아 부드럽기가 덜하다. 가루 파스텔을 굳혀놓은 느낌이랄까.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고객이 부드러운 오일 파스텔을 원한다면 MOPV를 선택해야 한다. 제품 소개에 적는 것은 물론 옵션명에도 한 번 더 기재했다. (소프트 아님!!)



MOPV와 MOP의 차이가 중요했던 점 또 하나는 바로 목함의 모양이었다. 나무 상자는 인스타그래머블한 파스텔의 엄청난 셀링 포인트였는데 MOP는 길쭉한 직사각형 형태로 고객이 원하는 정사각 목함과 생김새가 달랐다. 이 당연한 것도 꼭 집어 보여주지 않으면 절대 알 수가 없으니 한 번 더 사진으로 정리해서 넣었다.




2. 이 파스텔을 써서 그리면 유튜브에 나오는 그런 그림들처럼 된다는 걸 보고 안심할 수 있게 하자.


뭘 사는 지 알고 구매하게 된다면 그 다음 중요한 건 이걸로 내가 뭘 할 수 있는 지 이해하는 일이다.

미술은 무한한 표현양식의 장인 만큼 재료도 다양하고 활용법도 무궁무진하다. ABC를 알아야 거기서 창조도 하고 변형도 할 수 있는데 "여기 오일파스텔이 있으니 알아서 잘 그려보시죠!" 하는 것은 조금 매정하다. 나는 나에게서 제품을 사는 고객이 내 상세페이지를 보기 전과 후에 오일파스텔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기를 바랬다.

미술은 무한한 표현양식의 장인 만큼 재료도 다양하고 활용법도 무궁무진하다. ABC를 알아야 거기서 창조도 하고 변형도 할 수 있는데 "여기 오일파스텔이 있으니 알아서 잘 그려보시죠!" 하는 것은 조금 매정하다. 나는 나에게서 제품을 사는 고객이 내 상세페이지를 보기 전과 후에 오일파스텔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기를 바랬다.

그래서 그림을 진짜 많이 그려 넣었다!!

내 그림이 유튜브에 나오는 금손 작가님들처럼 멋있지는 않지만 퀄리티가 딸리면 양으로 승부하자는 마음으로!! 정말 다양하게 그려서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습니다,를 보여드리려고 공을 들였다.


 어떻게 그리는 지 1도 모르는데..? 하시는 분들을 위해 그리는 과정 동영상을 상세 페이지 중간 중간 넣는 것은 물론이고 특정 시즌에는 색칠 도안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했다. 추석에는 한복 소녀 크리스마스에는 트리!







그림은 나 홀로 취미로 그리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에 주는 카드가 될 수도 있고 특별한 선물이 될 수도 있다.

방에서 혼자 그리는 것도 좋지만 야외에서 그리면 그 자체로 멋진 여행이(!) 될 수도 있다. 이 것 역시 그냥 말로 하는 것과 상세페이지에서 이미지로 직접 보는 것이 천지차이기 때문에 오일파스텔을 구매하고 그림을 그려가면서 경험하시 게 될 것들을 담아내고자 애썼다.




3. 오일파스텔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재료들을 최대한 다양하게 준비해서 한꺼번에 구매할 수 있게 하자.


마지막은 좀 더 실제적인 이유를 주어야 했다.

지금 나에게서 오일파스텔을 사면 가장 좋은 점은

제품이 다른 곳보다 조금 비싸더라도 어차피 구매해야 할 준비물들을 한 번에 살 수 있어서 배송비를 아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컬러차트도 무료로 드린다!

이 점을 적극적으로 어필해야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이런 걸 드립니다~ 가 먼저가 아니었다.

왜 오일파스텔을 사는데 컬러차트가 필요한 지, 이게 왜 좋은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그 좋은 걸 같이 받을 수 있다는 게 메리트로 다가오니까!


컬러차트가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같이 구매할 수 있는 세트 상품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이게 왜 좋은지 모르면 이걸 얼마에 팔아도 사야할 이유가 안생기지 않나.







물론 이 모든 작업이 나와 같은 고객을 대상으로 했다면 말짱 도루묵이었으리라. 아마 선배 판매자들의 상세페이지에 다양한 그림과 자세한 사진이 필요하지 않았던 이유는 대부분의 고객이 이미 제품명 만으로 구매 결정이 끝나는 전공자였기 때문이다. 상세페이지가 필요없는 고객님들도 있다. 미술 학원 원장님들이 '프리즈마 72색' 이라면 가격에 따라 구매를 결정할 수 있는 이유는  제품에 대한 모든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고객이 그런 건 아니다. 내가 바라본 고객은 그들과 달랐고 그래서 나는 이 모든 일이 꼭 필요했다.


물건을 구매하는 과정은 작게는 물건 하나, 크게는 제품을 사용하는 모든 환경에 대한 학습이다. 캠핑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판매자에게 물어가며 적합한 상품을 찾고 초보 엄마들은 육아템 상세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화방용품도 누군가에겐 그런 영역일 수 있지 않을까?


하나의 제품도 필요로 하는 사람에 따라 설명의 방식이 달라진다. 평생 구매한 상품 중에 화방 용품이 제일 많은 나부터도 기존의 상세페이지를 보면서 '그래서 내가 이걸 구매하면 도대체 뭐가 온다는 건지' 모르겠다면, 컴퓨터공학과를 다니는 대학생 친구가 취미로 오일파스텔을 사려고 할 때 더더욱 큰 고민이 생기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브랜드명만 보고 척척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전공자가 아닌, 유성색연필과 수성 색연필의 차이가 낯설고, 아크릴 물감과 수채화 물감이 어떻게 다른지 가물가물한, 청소년 이후 미술이 먼나라 이웃나라인 분들을 타겟으로 정했다.


파스텔의 단면을 자세히 보여드리고 컬러차트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그리는 과정을 영상으로 첨부하는 모든 과정은 화방용품은 낯설지만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은 분들에 초점을 맞췄다. 전공자가 보면 구구절절한 설명에 질려 5초만에 닫기 버튼을 눌렀겠지만, 다행히 내가 생각한 고객님들은 평균 1분 23초, 최장 기록은 3분까지 오일파스텔 상세페이지에 머물렀다.

(지금은 서비스가 종료된 네이버 애널리틱스를 통해 체류시간을 체크했다. 현재는 스마트스토어 통계 쇼핑행동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상품 및 페이지별 평균 체류시간을 일 주 월별로 제공한다.)


자, 이렇게 일단 들어오기만 하면 설득할 자신이 있는 상세페이지를 영혼을 탈탈 갈아 넣어 만들었다.

(물론 하루 아침에 만든 건 아니고 수십번 갈아엎었다만)

그런데 여기에 도대체 어떻게 고객님을 모시고 온담?








상세페이지에 지금도 꼭 포함시키는 몇 가지


1. 타겟 고객 : 이런 분들을 위해 준비했어요!

 "이런 분들을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이런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와 같은 문구로 운을 떼고, 타겟 고객의 특성을 소개한다.

예) 너튜브 금손들이 쓰는 오일파스텔 이게 그게 맞는지 헷갈리시는 분


2. 물건의 용도: 이 제품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내가 좋아하는 대표님이 '고객은 콩나물을 사는게 아니라 시원한 콩나물국을 산다'다.

구매후기와 SNS 후기를 통해 파악한 구매 동기를 충족하는 제품의 요소들을 소개한다.

예) 입문자 맞춤, 가이드와 영상이 제공되는 오일파스텔


3. 차별화 요소 : 다른 제품 or 타 판매처가 아닌 나에게 물건을 사야하는 이유는?

같은 제품이라도 판매자에 따라 서비스가 다르다. 우리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 함께 구매할 수 있는 구성에 대해 소개한다. 제품이 다르다면 훨씬 좋은데 비슷한 상품군 중에 우리가 특화된 부분을 소개한다.

예) 빠른배송, 배송비를 아껴주는 구성, 무료로 제공하는 +@


4. 판매자 소개 : 물건 쓰다가 궁금한게 생기면 어쩌지?

가끔 물건을 사다보면 연락이 잘 안되거나 문의에 대한 답변으로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일상용품일 경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특화된 분야라면 보다 전문적인 응대가 가능한 곳에서 사고 싶다. 최소한 구매한 물건에 하자가 있다면 제대로 된 AS를 받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이 부분에 대한 자부심과 친절한 안내를 덧붙인다.

예) 미술공방 선생님이 만든 오일파스텔 세트, 사용법이 궁금하다면 언제든지 문의하세요!


5. 프로모션 : 이걸 왜 지금 사야하냐면요...

맛보기를 한 음식을 사게 되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혜택이 있다면 더 손이 간다. 우리만 제공하는 작은 프로모션을 제공한다. 그냥 제공하기가 조금 부담스럽다면 '리뷰약속하고 @@받기' 같은 방법도 좋다.

예) 주말 반짝 이벤트 : 구매고객 전원 컬러링 도안 3종 제공, 리뷰 약속하고 찰필 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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