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에 나가 벽선반을 위에서 아래로 쭈르르 훑어보았다. 붓, 종이, 캔버스, 파스텔, 물감, 팔레트, 마카, 연필, 지우개, 스티커, 풀, 가위. 동네 친구 이름처럼 익숙한 도구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다. 다른 건 몰라도 여기 있는 이 것들은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사본 것들이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사오라고 해서였고 마지막은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서 였으니 그 오랜 세월 쓴 돈을 다 합치면 대충 천만원은 되지 않을까?
한 가지 카테고리에서 천 만원 어치 물건을 사봤다는 건 아주 고가의 제품이 아니고서야 여러가지 유형을, 자주구매했다는 뜻이다. 종이부터 물감, 마카펜, 파스텔과 색연필. 어떤 브랜드가 좀 더 묽고 어떤 브랜드가 좀 더 걸쭉한 지, 어떤 제품은 비싼 걸 사서 오래 쓰는게 좋고 어떤 건 가성비 있는 새 것을 자주 바꾸는 게 좋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구매가 필요하다. 그렇게 사고, 실패하고, 만족하고, 찾아내면서 '잘 아는 분야'가 되는 것 아니겠나.
내 삶에 그런 영역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가까이 있어서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이 익숙한 제품들. 지금은 또 얼마일까?
노트북을 펴고 공방에 있는 물품들을 녹색창에 검색해보았다. 가격이 많이 내렸다. 나 어릴 때 프리즈마는 무조건 10만원부터였는데. 파버카스텔 비싸서 엄지손가락만해질때까지 깍지껴서 썼는데. 특히 하얀색. 이제는 5만원 대도 있으니 이건 도매상이 모두 온라인에 나왔다는 소리다. 물감은 또 왜 이렇게 싼 것인지, 쉴드에서 바로 사와도 이 가격에서 300원 쌀 것 같은데. 도대체 얼마나 대량으로 사야 단가를 맞추는거지.
시작하기도 전에 힘 빠지는 소리만 나왔다.
그래도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제품들은 아직 많다.
좀 더 찾아보도록 하자.
머릿 속에 떠오르는대로 검색하는데 뾰족한 수가 나지 않는다. 지금 이 바닥에서 제일 잘 팔리는 제품은 뭐지?
네이버 > 쇼핑BEST > 카테고리 > 내가 속한 카테고리로 들어가면 일간, 주간 순으로 많이 본 상품, 많이 구매한 상품, 인기 브랜드, 베스트 키워드를 볼 수 있다.
여기서 베스트 키워드를 하나씩 검색했다. 뭐가 얼만큼 인기가 좋은(고객들이 많이,자주 검색하는) 상품인지 알 길이 없으므로 네이버 검색광고에서 월간 키워드 수를 함께 찾아보았다. 네이버 검색광고사이트(https://searchad.naver.com/) 에로그인 후 키워드 도구에서 원하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월간 검색량을 확인할 수 있다.
검색량을 보는 건 대학교때부터 블로그를 하면서 인기 있는 키워드를 찾기 위해 숨쉬듯 해왔던 일이라 이 행동 자체는 익숙했다.
중요한 건 여기서 그나마 경쟁이 낮은 제품을 찾는 일!
그러니까 고객이 찾는 검색량에 비해 공급자가 적은 제품.
그걸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요즘엔 키워드만 적으면 자동으로 찾아주는 사이트들이 많아졌다. 판다랭크, 아이템스카우트 등. 노가다로 했던 먼 옛날 나는 엑셀 시트를 하나 만들고 맨 왼쪽에는 키워드 - 그 다음 칸에는 월간 검색량 - 그 다음칸에는 네이버 쇼핑에 등록된 상품수를 적었다. 그리고 가장 경쟁이 '덜' 치열한 상품을 찾는 것이다.
경쟁 강도가 높을수록 선배님들이 많은 시장이니 머리를 더 쓰거나, 몸이 좀 더 고생하거나, 마진을 많이 포기해야한다. 모든 상품들이 경쟁강도가 높아 이건 도무지 싸울 엄두가 안났다. 그나마 낮은 것이.. 오일파스텔, 300%.
하지만 300%도 엄청 높은데!
그래도 가장 낮은 경쟁률이니 이번엔 오일파스텔 키워드로 다시 한 번 연관 검색어를 찾아봤다. 검색량 내림차순으로 보다보니 조금 경쟁강도가 낮은 키워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일파스텔]은 넘사벽이지만 [문교오일파스텔]은 그보다 조금 낫고 [문교소프트오일파스텔]은 그보다 또 조금 나은 식. 사실은 모두 같은 제품인데 이 중 경쟁이 낮은 키워드부터 상위노출해서 조금씩 판매가 되다보면 나중에는 더 큰 키워드에서도 상위에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서야 이런 친구들을 세부 키워드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부 키워드부터 잡아서 빅 키워드로 나가는 방향성이 꽤 쓸모있다는 것도.
어쨌든, 다시 첫 제품을 선택하는 그 날로 돌아가보면 - 다른 모든 화방용품 중에 오일파스텔, 중에서도 [문교 오일 파스텔 72색]에 대한 키워드 경쟁률이 300%로 비교적 낮았다. 물론 낮은 경쟁률은 아니지만 3,000%에 비하면 훨씬 낫다. 게다가 이 낮은 경쟁률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코로나가 덮친 미술 공방에서 바닥을 긁던 2020년의 봄, 이 때가 바야흐로 오일파스텔의 전성기였기 때문이다.
네이버 데이터랩 > 검색어 트렌드 > 키워드를 입력하면 이 제품이 어느 시기에 검색량이 높아지는 지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검색 광고 사이트에서는 최대 1년까지밖에 볼 수 없어서 내가 판매하려는 제품이 지금 반짝 유행하는 제품인 지, 이 시장에서 꾸준히판매되어 온 상품인 지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럴 때 데이터랩 자료를 함께 보면 첫 상품을 고르는 데 도움이 된다. 열심히 상품 골라서 사진 찍고 광고 하고 후기 모았는데 유행이 끝나서 몇 달 후부터 안팔리면 그것만큼 힘빠지는 일이 또 없다.
다행히 오일파스텔은 데이터랩 수치에서 보이는 것처럼 고공상승중이었고 인스타 피드에도, 유튜브 그림 크리에이터들의 새로운 컨텐츠도 온통 오일파스텔로 그린 벚꽃과 유채꽃이 만발했다.
제품의 시장 규모와 경쟁도를 파악하고 시장 진입을 결정했다면 어떤 키워드를 선점할 것인 지 생각하게 된다. 빅 키워드 (오일파스텔 같은!)를 바로 노리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세부 키워드부터 조금씩 상위로 올려 빅 키워드에서도 노출되게 하는 편이 좋다. 제품을 부르는 다른 말은 무엇이 있는지 유사어, 제품 앞 뒤에 붙는 브랜드명이나 옵션명 등을 파악하여 키워드를 결정한다. 이 키워드는 이후 제품명을 결정하거나 광고 키워드로 유용하게 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