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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Mar 16. 2024

살면서 가장 많이 소비한 게 뭐야

카테고리 결정

지독하게 차가운 바람과 유리창에 어리던 서리를 기억한다. 그해 겨울은 유독 추웠고, 그래서 다들 마스크를 썼고, 그렇게 한 3년은 코와 입을 가리고 살아야했다. 전쟁의 서막같은 전염병의 주 발발지 중 미술학원이 지목된 것은 2020년이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서였는데 - 덕분에 문 연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나의 작고 소중한 공방은 그대로 폐업 비슷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처음 몇 주는 막막한 마음으로 유령처럼 집과 공방을 오갔다.

번 것이 없는 채로 월세를 내고 나니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되겠다는 것만 알겠고 뭘 어째야하는 지는 모르겠다.

유튜브에서 부자되는 법, 을 시작으로 무수한 영상들을 보기 시작했는데 모두 유익하고 좋은 말이었지만 지금 내 상황에 딱 들어맞지는 않았다.

거실 책장에서 자기개발, 비슷한 책들을 게걸스럽게 꺼내 읽었다. 동시대, 먼나라, 다른 시대, 가까운 도시의 작가들이 속삭이는 말을 보약삼아 답을 찾고자 애썼다.

한 달여를 읽고, 쓰고, 보고, 걷고 하다보니 2가지는 확실했다.


하나. 지출을 줄여야 한다.

둘. 수입을 늘려야 한다.


내 주요 지출은 공방 월세 66만원이었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만큼을 벌고 있을 턱이 없다. 그러니까 이 돈을 제로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서 머리를 써야한다. 공방은 연남동 끝자락에 있었고 우한폐렴이 오기 전까지는 그래도 주말 평일 할 것없이 클래스를 예약하는 고객님들이 꾸준히 있었다. 그러니까 이 공간을 필요로 하는 선생님은 내가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터다. 그러면 이걸 팔아볼 수 있지 않을까?


햇살이 잘 드는 날을 골라 공방 구석구석을 쓸고 닦은 다음 사진을 찍었다. 공방 선생님들이 정보를 얻는 커뮤니티에 쉐어글을 올리는데 2-3일 정도 걸렸지 싶다.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는 창작열이 작가님들의 마음을 끌어당긴 것에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열심히 찍은 사진도 한 몫 했길 바라고. 며칠간 공방을 보러 오시는 분들을 맞이하고, 대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3분의 선생님과 토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6일을 나눠쓰게 되었다.

첫 번 째 퀘스트 완성. 지출이 제로가 된 것이다.


이제 조금 더 어려운 퀘스트가 남았다. 이건 훨씬 난이도가 높다. 수입을 늘리는 건 내가 이미 1년동안 별 짓 다 해봐도 안된 일 아닌가. 어느 날 아침 큰숨을 들이쉬고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일들을 적어봤다. 파티플래너. 축제기획. 풍선판매. 시장활성화. 여성의류판매. 에어비앤비. 글쓰기 모임. 그리고 지금, 망하기 일보 직전인 미술공방까지. 이 짓 저 짓 해봤는데 안됐다는 건 지금까지의 생각과 행동으로는 결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내가 모르는 방법, 내가 한 번도 시도한 적 없는 유형의 행동이 필요하다.

그게 대체 뭘까?


풍선을 팔았던 때를 떠올렸다. 나름 재밌게 판매를 했다, 꾸준히, 매일, 고객이 있었고 사진 찍고 상세페이지을 만드는 일도 재밌었다. 내가 그만뒀던 이유는 그 일을 계속할 자신이 없어서였고 자신이 없었던 이유는, 계속이라 해봤자 6개월도 안됐지만 그 시간동안 1페이지에 있었던 상품이 밀리고 밀려 3페이지인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그만둘 이유가 되긴 하는건지 1도 이해가 안간다.)

지금까지 X를 친 것들의 공통점은 하나. 계속할 자신이 없었다. 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쳐도 매달려서 떨어지지 않을만한 자신이, 없었다. 그럼 도대체 뭘 하면 자신이 있단말인가?


다시 큰 숨을 들이쉬고 거실을 빙빙 돌았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백수의 모습으로 어기적대는 것이 슬프기 짝이 없다. 그래도 나 대학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치열하게 연필 깎았는데. 붓칠 끝내주게 했었는데. (잘했다고는 안했다)


걸음을 멈춰서고 다시 생각을 해본다. 이제부터 살아갈 날은 한 치 앞도 모른다. 그러니까 자신도 없고 맹세도 못하겠다 - 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확실하다. 이 시간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겪어낸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부르면 부르는대로 소환된다. 그러니까 어쩌면, 내 문제의 해답은 지독하게 부러뜨린 색연필과 하루에도 열두번씩 닦아내린 팔레트에 있는지도 모른다.


팔레트. 그 위에 가지런히 누운 물감들. 수없이 헹궜던 붓, 몽당까지 쓰곤 했던 몇몇 브랜드의 색연필. 지금까지 열심히 구매해왔던 그 친구들을 파는 매장과 브랜드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시장은 얼마나 클까?

인터넷 창에 몇 가지를 검색해 본다.


호미화방 매출, 한가람문구 매출...

문교 매출, 프리즈마 매출, 톰보 매출...


여러 브랜드의 물품을 한 데 모아 판매하는 유통처, 제품을 만드는 제조사들매출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이렇게 많이 번다고!?

물론 화방용품 시장은 문구용품 보다 작고, 문구용품 시장은 패션이나 식음료와 같은 시장에 비해 이게 뭐야 싶을만큼 작지만, 나에게 시장의 크기에 따라 진입을 결정하고 말 여유같은 게 있을리 없다. 펫용품, 건강식품, 떠오르는 성장시장이 몇 번 깜빡이던 때도 이미 다 지났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 그것도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안착할 수 있는, 사라지지 않을 시장이었다.


그렇다면 이 시장은 얼마나 단단할까?

반짝 유행하다가 사라지는 상품, 시장들이 있다. 작아도 좋으니 내가 들어갈 곳은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 사라지지 않을 땅이어야 한다. 막연한 생각으로는, 대충 십여년 전 교복입고 다닐 때에도 SWC 많이들 썼고 무슨무슨 문구들은 그전에 더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 않았으니 전통적인 시장같긴 한데 좀 더 수치적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네이버에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화방용품을 하나 검색하고 나오는 판매처들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했다.
ㅇㅇㅇ 매출, ㅇㅇㅇ채용 이라고 검색하면 설립연도와 대략적인 매출, 고용 인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잡코리아 > 재무분석란을 활용하면 공개되어 있는 기업에 한해 매출, 영업이익, 당기순이익과 채용인원의 연도별 추이도 볼 수 있는데 시장을 이루고 있는 여러 회사들의 정보를 확인하면서 전체적으로 오래 된 회사들이 많은 지 새로 생긴 곳이 많은 지, 매출은 오름세인지 내림세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세상에는 내가 알고 있는 회사보다 모르는 회사가 훨씬 많았고 그 많은 회사들이 몇 십억, 몇 백억 단위 매출을 하며 십수년간 살아남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소비자로 근 십년을 살았던 시장이 이토록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수록 심장이 뛰었다.

이 곳은 단단하다. 줄어들지언정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 시장의 아주 작은 부분에라도 발을 디딜 수 있다면 -

지금의 고민들이 해결되는 건 물론, 더 크고 다양한 꿈을 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새로 공부하고 뭐 할 것도 없이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공방에서 쓰는 미술 용품들을 팔아보자. 화방,문구 이 언저리 시장에 깃발을 꽂아보자.


문제는 어떻게 뭐부터 팔 것이냐인데...


(다음 이 시간에!)





카테고리 결정 첫 단계.

스스로에게 물어 볼 질문 가지.


1. 살면서 천만원 이상 구매한 분야의 제품은 뭘까?


2. 무작위로 선별한 10명이 모였을 때 내가 가장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산업은 뭘까?


3. 그 분야의 브랜드를 상-중-하로 구분하고 각각의 장단점을 정의할 수 있나?


4. 그 시장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 온라인 쇼핑몰에 한해 카테고리별 매출순위를 확인하고 싶다면 통계청에서 심지어 매월(!) 온라인/모바일 나누어 공개하고 있다.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01&tblId=DT_1KE10071


5.  시장은 성장하고 있을까?

: 크고 대중적인 시장의 경우 기사를 통해서도 대략적인 추이를 볼 수 있다. 이렇게 파악이 어렵다면 업계의 선두주자 기업의 최근 매출 및 재무 현황을 확인해볼 수 있다.

업계의 선두를 달리는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최근 3-5년간 꾸준히 성장하는 중인 지 파악한다. (이때 대기업만 보기보다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로 성장세인지 확인하면 시장자체의 성장인지 양분화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상장 기업은 여기서

https://dart.fss.or.kr/


소기업은 여기서

https://sminfo.mss.go.kr


이 회사 하나만 봐도 시장의 흐름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겠다 싶은 곳이 있어서 자세히 살펴봐야겠다면 신용분석 보고서를 구매할 수도 있다.

https://www.kreport.co.kr








그 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한 가지.


만약 지금 다시 한 번 시작한다면 성장하는 시장,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큰 시장을 선택하겠다. 어차피 어디든 경쟁은 치열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차별화하는 매일의 노력은 모두 같다. 돌아보면 이따금씩 찾아오는 파도같은 주문들은 모두 대중적인 필요와 맞닿아 있었다. 연말연시의 달력, 가정의 달 용돈상품, 크리스마스와 가을 전통 상품처럼.

물론 내 취향, 전문성, 가치관이 시장의 규모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업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사람도 나 자신이기에 스스로가 오만가지 문제를 기꺼이 감내할만큼 좋아하거나, 자신이 있거나,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결코 즐겁지 않을테니까.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내가 선택한 시장 안에서 이따금씩은 대중의 필요에 부응하는 상품들을 개발하는 것은 반드시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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