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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셔니스타 Oct 10. 2024

반짝반짝 빛나는

너의 미래를 응원해

 고3인 딸은 요즘 신이 났다. 한 학기만 더 지나면 대학생이 된다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다. 퇴근하여 인사하면 딸은 하루라도 건너뛰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듯 매일의 레퍼토리를 지치지도 않고 떠들어댄다.

 “엄마, 졸업하고 아르바이트할 거예요. 내가 돈 벌어서 휴대폰도 바꾸고, 원피스도 사고, 화장품도 살 거예요. 다이어트해서 몸무게 10kg 뺄 거예요. 대학 가면 살 빠져요.”


 아이가 따발총처럼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열거할 때마다 나는 장단을 맞추지 못하고 말수가 없어진다. 세상 모든 일이 제 생각대로 착착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딸이 꿈꾸는 미래의 기점이 이제 몇 달 후면 현실로 다가온다. 내가 대학에 진학할 때 부모님도 이런 기분이셨을까? 제 몸 하나 건사 못하는 아이를 물가에 내놓은 기분 말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서영이가 계절학기 수업을 듣는 세명 학교에서 대구시 고등학교 특수학급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 입학 설명회를 개최했다. 출산율이 줄어들면서 대학 진학률도 떨어진다는데, 발달장애아를 위한 학과나 프로그램은 오히려 개설이 늘어나는 추세다. 대구 지역에서는 대구대, 대구가톨릭대, 호산대가 설명회에 참여했다. 특히 특수교육으로 역사가 깊은 대구대학교는 발달장애아를 위한 3년제 자립 교육기관인 K-pace와 졸업 후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창의 융합학과가 있다.


 하필 설명회 시간이 학원 수업과 맞물려 남편이 대신 참석했다. 그동안 딸아이 교육에 대해서라면 죽이 잘 맞았던 남편과 나는 올해 들어 아이 진로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다. 특수학교 전공과에서 취업 준비하기를 바랐던 나와 달리 남편은 K-pace에 진학해 자립하는 삶을 원했다. 설명회에 다녀온 후 남편의 마음은 K-pace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프로그램도 마음에 들었지만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며 자립을 연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장점으로 와닿은 모양이었다.


 설명회 직후 대구대에서 파견된 담당자에게 따로 면담을 요청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궁금증을 해소한 남편은 서영이의 대학 진학에 무게를 실었다.


 “서영이 앞으로 10년 더 지원하기로 했잖아. 우리 딸, 대학 보내자.”


 자립도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니 취업을 목표로 특수학교 전공과에서 취업 교육을 받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했던 나는 처음에는 이게 웬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었다. 애초에 대학이라는 선택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나와 달리 남편은 발달장애아들이 바리스타나 제과제빵, 제품 포장 등의 단순한 일을 하는 곳에 취업하는 데 부정적인 시선을 지니고 있었다.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발달 장애인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일터는 그리 많지 않다. 일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정부에서 지원금을 준다고 해도 낮은 작업 능률과 안전사고가 생길 가능성 때문에 고용주들은 차라리 벌금을 낼지언정 장애인 고용을 꺼린다는 기사도 읽었다. 그마저도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맞추려는 업주들에게 단순 업무를 하는 계약직으로 고용되었다 취업 기회가 고루 주어져야 한다는 취지로 몇 년 안에 해고되기 일쑤였다.


 평범한 사람에게도 실직은 큰 트라우마로 남는데 발달 장애인들은 오죽할까. 자립의 기쁨도 잠시일 뿐, 규칙적으로 갈 곳이 없어진 이들은 사회에서 버림받았다는 자괴감에 우울증이 생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니 남편의 걱정이 그저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학교 탐방

 갈피를 못 잡고 서로의 의견만 고집하다 여름을 보내고 9월 초가 되었다. 특수학교 전공과 전형은 대부분 10월부터 시작되는데 대학 입학전형은 그보다 이른 9월이었다. K-pace는 서류접수 기간이 넉넉했지만, 창의 융합학과는 9월 둘째 주 딱 일주일 뿐이었다.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둔다면 당연히 특수교육에 특화되어 인프라 구축이 잘 되어 있는 대구대가 1순위였다. 갑자기 대학이라는 선택지가 추가된 가운데 결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무조건 안 된다고 내 의견만 주장할 게 아니라 도대체 남편이 어느 부분에 그렇게 꽂혔는지 직접 대학을 탐방하고 결정해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요일 오전 우리 부부는 K-pace와 창의 융합학과에 한 시간 간격으로 상담 약속을 잡고 학교를 방문했다. 대학 졸업 후 학교 캠퍼스로 산책 온 적은 있었지만, 입학 상담을 하러 올 줄이야. 내게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특히 대구대는 풋풋했던 학창 시절 대학 축제에 와 본 이래 30년 만의 첫 방문이었다. 100만 평 규모를 자랑하는 캠퍼스가 눈앞에 펼쳐졌다. 내 기억 속 대구대는 광활한 벌판에 듬성듬성 지어진 몇 개의 건물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경관이 수려하고 조경이 잘 가꾸어진 멋진 학교로 성장해 있었다. 예전의 칙칙하고 낡은 건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발랄한 옷차림의 학생들이 자유롭게 캠퍼스를 오가며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을 발산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가 이런 환경에 동화될 수 있을까?’

 아무리 딸아이의 모습을 캠퍼스에 밀어 넣어보아도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약속 장소인 K-pace 센터에 도착하니 상담실장님과 교수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학생들이 바리스타 실습을 하고 음료도 판매하는 카페가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고, 맞은편에 빔프로젝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다과를 내어 오신 상담실장님이 PPT로 학교와 K-pace에 대해 전반적인 소개를 하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끔하게 생긴 청년 두 명이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 우리를 마주 보고 있었다. 재학생이라 소개한 그들은 우리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부끄러운 듯 싱긋 웃었다. 티끌 하나 없는 순수한 미소였다.


 실장님이 설명하는 동안 우리 부부는 각자 메모해 간 내용을 빠짐없이 질문했다. 전문 교사가 상주하며 생활지도를 하는 기숙사 생활도 살짝 엿보았다. 일주일 내내 빈틈없이 설계된 수업과 동아리 활동, 교사의 인솔로 안전하게 행해지는 외부 활동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딸아이는 혼자 있는 시간에 주로 유튜브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소극적인 여가 활동을 하는 편이어서 함께 있어 주지 못할 때면 아이 혼자 방치되거나 너무 무료한 생활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학교 차원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눈으로 확인하니 한결 안심되었다.


 지금껏 꾸준히 보내던 치료나 개인 수업도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면 전부 마무리해야 한다. 특수재활 특성 학교다 보니 일대일 언어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과 용돈 관리부터 자립을 위한 전반적인 생활지도까지 꼼꼼하게 밀착 지도가 가능하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졸업 후 진로에 대해 실장님이 말씀을 이어갈 때쯤, 아까부터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손을 들던 재학생에게 드디어 발언의 기회가 주어졌다. 학교에서 좋았던 경험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어 이제나저제나 말할 기회를 기다린 눈치였다.


 “처음에는 모든 게 힘들었어요. 엄마랑 떨어져 있는 것도 힘들었고 사감 선생님과도 충돌이 많았어요. 지금은 성장한 제가 자랑스럽고 내년이면 이곳을 떠나야 해서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모든 프로그램이 너무 좋아요. 후배들이 많이 들어온다면 좋겠어요. 빨리 만나고 싶어요.”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아서 늘 걱정이었는데 우리 딸도 저렇게 눈부시게 성장할 수 있을까? 학생이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마무리하자 나도 모르게 박수가 나왔다. 옆에 있던 학생은 올해 졸업 후 신용보증기금에 1년 계약직으로 취업했으며 혼자 원룸을 얻어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낯선 곳에서 적응하며 수많은 시간 힘들게 자신을 바로 세웠을 기특한 학생들을 보니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잘 컸구나. 너희들 진짜 멋지구나.’


  K-pace 센터에서 받은 좋은 인상을 간직한 채 우리는 다음 상담을 위해 창의 융합학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의 융합학과는 재활 과학대 소속 4년제 발달 장애인 특성화 학과이다. 산뜻하게 지은 새 건물 로비로 들어서자 건장한 체구의 조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책을 가슴에 안고 친구를 기다리는 학생, 한쪽에 놓인 벤치에 앉아 진지한 얼굴로 책에다 뭔가를 끄적이는 학생, 수업에 늦은 듯 후다닥 강의실로 뛰어 들어가는 학생. 1층 로비의 풍경은 내 학창 시절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2층 컴퓨터실로 들어서니 젊은 교수님이 빔프로젝터를 켜고 설명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배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수려한 용모를 지닌 교수님이 학과 소개를 시작하자마자 재학생 두 명이 노크도 없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컴퓨터실에 놓고 간 가방을 가지러 온 모양이었다. 타 학과였다면 눈치 없는 학생들에게 교수님의 불호령이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늘 있는 일인 듯 학생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며 아침밥은 먹었는지, 다음 수업은 언제인지, 수업 전까지 어디에 있을 건지 물어보는 자상한 교수님의 모습이 학부모에게 일부러 보이는 친절 같지는 않았다. 연구와 강의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발달장애아를 둔 부모의 고민까지 헤아리고 더 나은 선택을 위해 배려해 주는 모습은 학교에 대한 믿음으로 더해졌다.


 자립을 위한 경제 개념 키우기와 생활지도를 비롯하여 커리큘럼은 K-pace와 비슷했지만, 인공지능 활용법, 미래산업이나 영상 콘텐츠 관련 수업도 개설되어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를 접할 기회 또한 마련되어 있었다. 지정된 커리큘럼 외 타 학과 과목도 수강할 수 있었다. 수업과 수업 사이 공강을 채우는 것부터 수강 신청, 동아리 활동 및 기숙사 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편함까지 재학생과의 일대일 멘토링을 통해 도움받을 수 있다. 졸업하면 학사 학위가 수여되며 장학금 혜택이 많다는 것 또한 구미가 당겼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한 달 전 외부 설명회에서 유독 창의 융합학과에 학부모들의 질문 세례가 많았다는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학과가 개설된 지 이제 겨우 2년이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경쟁률이 꽤 높을 거라 예상되었다. 설명회를 마치고 다시 조교의 안내를 받아 건물 내 강의실과 학과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학생들이 한데 모여 있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학생들의 행동을 자세히 뜯어보면 조금 달라 보일까, 그들은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가능성을 현실로

 일정이 끝난 후 집으로 가기 위해 차에 오르니 자꾸 한숨부터 나왔다. 요즘 학점 좋은 평범한 대학생에게도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다.

 발달장애아들이 졸업 후 취업하고 사회에서 잘 적응하여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충분한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학교 측의 큰소리를 믿어도 좋을까?

 시계처럼 정확하게 흘러가는 일상에 익숙해진 딸에게 대학 생활의 자유가 과연 이로운 걸까?   아니, 자유가 주어진 들 잘 대처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마저도 원서 접수를 하고 합격한 후의 고민이다. 뿌연 안개 넘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지금은 모두 가능성일 뿐이었다.


 발달장애아 부모들은 자식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고 누구라도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가슴 사무친다 한들 자식보다 명줄 긴 부모는 없다. 내가 떠난 후 덩그러니 남게 될 딸아이가 부족함 없이 배우고 경험하여 당당하게 홀로 설 수 있다면 부모로서 나는 여한이 없다. 체계적인 교육과 배우려는 의지만 있다면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최종 목표인 홀로서기까지 꼭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아이가 행복하게 홀로서기할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여름 내내 흐트러졌던 마음을 다잡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학교 탐방에 대한 소감을 나누며 딸아이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 보았다. 여러 가능성 중 고심 끝에 하나를 선택하겠지만, 우리 기대처럼 되지 않아 실망할 수도 있다. 그래도 뭐 어떤가.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 준비하고 도전하면 되지 않은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오롯이 우리 부부만을 위해 입학 설명회를 열어준 학교 측의 배려가 감사하다는 말끝에 남편이 덧붙였다.


 “세상 참 많이 바뀌었지? 10년 전만 해도 우리 아이가 다닐 수 있는 대학, 꿈이나 꿔 봤어?”

 “그러게. 앞으로 세상은 더 좋아질 테니 서영이한테도 더 멋진 삶의 기회가 열리겠지? 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남편의 말에 끄덕거렸다.


 서영이는 자립의 욕구가 강하다. 엄마처럼 되고 싶다는 서영이는 직업을 가지고 경제활동을 하여 가족에게 기대지 않고 능동적으로 삶을 영위하고 싶어 한다. 대학 가면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서 예쁜 원피스와 화장품, 구두를 살 거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이야기하는 딸이 나는 자랑스럽다. 서영이가 엄마처럼 되고 싶은 또 다른 이유는 차를 몰아 어디든 갈 수 있는 기동력 때문이다. 딸아이를 태우고 운전할 때 아이는 내가 운전하는 모습을 자주 곁눈질한다. 운전 면허증을 따겠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세상도 변하지만, 과학기술도 이렇게 놀랍도록 발전하니 우리 서영이도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되면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혼자 갈 수 있는 날이 곧 오겠지?”


 서영이가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길게 뻗은 아우토반을 시원하게 달리는 그날을 상상해 보았다. 저 멀리 붉게 번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반짝반짝 빛나는 내일을 꿈꾸는 아이가 하얗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싱긋 웃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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