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예민이와 우울이와 함께 살아가는 삶
06. 예민이와 우울이와 함께 살아가는 삶
나의 삶엔 예민이와 우울이가 공존한다. 감정적으로 예민하다 못해 피부 또한 예민하다. 어딘가에 스치기만 해도 모기 물린 것 처럼 빨갛게 부풀어오르고 만성 두드러기가 있어서 한 번 가려움이 시작되면 끝날 줄을 모른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빨개질 정도로 긁고 나야 간지러움이 멈춘다.
긁느라 손톱자국이 선명한 몸을 보곤 처음에 남편은 깜짝 놀랬다. 같이 지내면서 내 간지러움이 시작될 때 마다 남편은 내가 긁지 못하도록 두 손을 부여잡았다. 그 때 부터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는 나와 그런 날 보며 더 괴로워하는 남편과의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남들이 보면 흰 피부에 피부가 좋은 편이라고 하지만 두드러기를 어쩌면 평생 달고 살아야 될 지 모르는 내게는 큰 시련이다. 이 두드러기는 시작점을 떠올려보면 초등학교 때였다. 새벽에 한창 고열이 나더니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부랴부랴 부모님과 응급실을 가서 수액을 맞고 처치한 후로 나아지는가 싶더니 열은 떨어졌지만 두드러기는 지속되었다.
그 당시 한창 육류, 튀김류, 떡볶이, 햄버거 위주로 먹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병원에 가니 두드러기는 원인이 다양한데 음식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앞으로 병원에서 내가 제한할 음식을 적어주는데 돼지고기, 닭고기, 계란, 복숭아 등. 내가 다 좋아하는 음식만 먹지 말란다. 그것도 평생 조심해야 한다며.
왠만해서 제한하라는 음식은 거의 안 먹고 지내니 사그라들었던 두드러기는 20살 쯤 다시 시작되었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더 심해졌고, 환경, 날씨가 변화할 때 마다 나를 더 심하게 괴롭혔다.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는 두드러기는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아. 그리고 어렸을 때 시장에서 팔던 떡볶이를 많이 먹었는데 그러다 보니 손톱이 다 빠진 일도 있었다. 그때 당시 내 손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엄마는 내가 정말 예민하구나. 라고 느꼈다 한다. 특히 똑같이 먹고 자란 언니에겐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 걸 보고서 더 크게 느꼈다 한다.
이 병이 발병한 이유가 성격적인 영향이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있다. 나는 어렸을 때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향의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미리 걱정하는 습관이 있었고 타인의 시선이 신경쓰였고 고민이 생기면 밤잠을 설치기 일수였다. 어떻게 보면 스트레스를 받으면 남들보다 더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그런데 최악인 건 내게 예민이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웃음도 많고 재밌는 것도 좋아하지만 우울한 감정을 자주 느낀다. 특히나 여자에게 한달에 한번씩 찾아오는 그 날을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선 더 심해진다. 마치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것 마냥 우울하고 예민해진다. 특히나 우울해지면 슬픈 노래를 틀고 방 안에 가만히 혼자 있고 싶어진다.
근데 나의 웃는 모습을 좋아하던 남편은 내가 우울해질 때 마다 덩달아 우울해졌다. 우울이가 찾아올 때면
“날 차라리 혼자 내버려둬.”
라고 남편에게 말했지만 남편은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
“혼자 있는다고 우울한 게 사라져?”
혼자 있으면 더 안 좋은 생각이 들고 우울해지지 않냐며 계속 내 옆에 서성거리던 남편. 처음엔 그가 내 감정을 존중해주지 않고 장난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하지만 막상 내 맘대로 혼자 있다보니 더 우울해지고 깊은 땅 속으로 꺼지는 것만 같았다. 남편의 말처럼 '혼자'보단 '함께'가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아직까지 예민이와 우울이는 내 삶에 살아있다. 뿌리깊게 내린 터라 얘네들이 내 인생에서 완전히 지워지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첫 째로 예민이가 찾아오는 시기가 점점 길어졌다. 물론 시작하면 끝을 보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매일 매일 가려워 하루에 3번 약을 꼬박 챙겨먹어야 됐다면 지금은 간지러움이 너무 심할 때만 복용하고 있다. 예민이가 매일 찾아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성격적인 예민함도 나이가 들어감과 동시에 둥글어지고 있다. 날이 설 정도로 뾰족한 면들이 여러 환경의 변화를 겪으며 점차 다듬어지고 있다. 더욱이 남편의 말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기도 한다.
자세히 말하자면 남편이 동료 선생님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늘 하는 말을 들려준 적이 있다.
“단단해져라.”
남의 말에 쉽게 상처를 받았던 아이에게 했던 말이라던데, 남편은 엄청난 공감을 했다고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나 그 말을 듣고서 어릴 적 남들보다 쉽게 스트레스를 받던 나 스스로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스트레스는 오롯이 내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나쁜 말을 한 상대가 큰 잘못이 있지만, 나의 내면이 단단하다면 외부의 말에 대해서도 덜 신경쓰고 덜 상처받지 않을까. 한마디로 나의 주체를 잃지 않게 된다.
우울이 역시 남편을 만난 후로 나의 곁에서 빨리 사라지고 있다. 아직까지 자주 나타나지만 갑자기 이유도 없이 뾰루퉁해지고 우울해지는 나를 가만히 안아주는 남편의 온기에 우울이는 날아가버린다. 우울이는 남편의 말 처럼 '혼자'있을 때 나를 찾아오는 것 같다. 그래서 '함께'일 때면 어느 새 우울이는 자취를 감춰버린다.
작가가 꿈일 때 예술가는 우울함과 예민함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말을 듣고서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우울한 사람이다. 라는 말을 듣는 게 좋았다. (비록 작가가 되지 못했지만.) 하지만 모든 적당한 게 좋은 것 같다. 적당한 '우울함'과 적당한 '예민함'은 나 스스로의 감성을 자극하고 그에 반동하여 좋은 감정도 불러일으키는데 우울하고 예민한 감정이 도를 지나치면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게 된다. 머물러 있다보면 벗어나기가 힘들어진다.
앞으로도 나와 공생하기 위해선 이들과 적절한 균형을 이뤄야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