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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Aug 17. 2020

'엄마'의 'Mom'이라는 것

01. 처음에 관하여




01. 처음에 관하여 (임신초기에 느낀 감정들)







3월 말 경, 생리를 안하길래 임신테스트기를 했는데 연하게 두 줄이 나왔다.

사실은 처음에는 두 줄이라 하기 애매했다. 연하다못해 희미해 나와 남편에게만 보이는 두 줄이었다.



조금은 예상했던 임신이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 오니 너무 신기하기도 했고, 점점 진해지는 임신테스트기에 집착(?)하는 나를 보며 내가 임신을 기다렸었나? 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결혼한 지 5개월 정도 되어서 찾아온 우리의 첫 아기, 그때는 감사하다 라는 마음보다는 신기하다 는 감정이 더 컸던 것 같다.



웃픈 얘기를 하자면 사실 계획한 임신이라고 하기에 애매한 게 우리는 1월생을 노렸는데 출산 예정일이 12월생이 되어버렸다. (조금 빗나간 계획이다.)

주변에서 12월이라는 얘기를 듣고 몇일만 더 품고 있어라, 라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하지만 그마저도 출산 예정일이 12월 말이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나는 12월 초다.



#



친정엄마는 귀신이라고 임신테스트기를 몇 번 해볼 때 쯤 엄마가 무슨 촉이 온 건지 전화가 왔다. 무슨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은데 약간 빙빙 돌리는 느낌이길래 .. 하고 싶은 말이 정확이 뭐냐고 물으니 혹시 좋은 소식 없냐고 했다. 조금 놀란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왜?'라고 되물었고 엄마는 사촌언니가 얼마 전 꿈을 꿨는데 큰 뱀이 엄마 옆에 앉아있었다고 했다.


사촌언니도, 그걸 들은 엄마도 이건 태몽이다 싶어 나에게 전화했다며 조심스럽게 묻는 엄마에게 나는 사실 임신테스트기를 했는데 두 줄이 나왔고 아직 병원은 안 갔다고 얘길 했다. 그러나 일단 '임신'이라니 그저 신이 난 엄마의 목소리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



이틀 뒤 임신 테스트기 선이 진해지고 나서 병원을 갔다. 사람들은 병원을 늦게 가는 게 좋다며, 오히려 일찍 가면 주수가 빨라 아기나 아기집이 안 보일 수 있으니 괜한 걱정과 실망만 한다고 말이다. 그래도 나는 남편을 데리고 산부인과를 찾았다. 근데 당연히 아기는 안 보였고, 아기집 조차도 안 보였다. 의사선생님은 자궁경부가 좀 두꺼워져있다고 임신이 맞긴 한 것 같은데 아직 정확하지 않다고만 말씀하셨다.


이 시기는 초음파로 보기엔 어려우니 피검사를 해보자고 하셔서 피검사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막상 병원에 다녀오고 나니 마음이라는 게 점차 불안해졌다. 맘카페를 뒤지면서 읽었던 글들 중 특히 안 좋은 예시들이 마구 떠올랐다.


다음 날 전화로 피검사 결과를 들었는데 의사선생님께서 내게 임신테스트기 두 줄이 맞았냐고 물었다. 나는 당황해서 '네네, 정말 두 줄이었어요.'라는 대답을 했고 마음 한 구석에서 억울함까지 올라왔다. 뭔가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았다.


내 대답에 의사선생님은 웃으 요즘 기술이 좋다 답했다. 뒤이어 피검사 수치가 좀 낮으니 엄청 초기로 보인다 말했다. 그 얘길 듣고 나서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고, 이후로 병원에 가기까지 기다리는 시간들이 고역이었다.


그 땐 마인드컨트롤이 힘들었다. 스스로 좋은 생각만 하고, 안 좋은 예시를 보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부정적인 생각들만 머릿속가득했다. 병원에서 아기를 만날 때 까지 혼자 두려움, 불안감, 걱정들이 엄습했다. 아기집만 있고 아기는 없는 '고사난자'는 아니겠지? 혹시나 혼자서 얼마나 걱정을 했던지. 그리고 이 때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혹시 정상임신이 아니라면 너무 빨리 소식을 알게 된 엄마가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고 임신소식을 듣고 엄청 좋아했던 엄마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맴돌며 마음을 어지럽혔다.


이 때 나에겐 남편이 가장 큰 지지체계였다. 남편의 다독거림과, '괜찮을거야, 우리 좋은 생각만 하자.' 그 말이 어찌나 나를 위로하던지.







그리고, 7주차 드디어 만난 아기의 형체. 쿵쾅거리며 힘차게 뛰던 아기의 심장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 한 켠이 이상했다. 뭔지 모르겠는데 뜨거운 것이 마음 한 켠에 올라왔다. 뭉클함인가? 감동인가? 아님 이 때까지 혼자 마음 고생했던 것들에 울컥한 걸까?


모든 복합적인 감정들이 뒤섞였겠지만, 아무래도 아기가 우리에게 무사히 찾아와줌에 '감사한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아기의 존재를 확인하고 엄마, 아빠가 되어가는 과정에 첫 발을 내디딘 우린, 각자의 부모님을 떠올리고 연락을 드렸다. 누구보다 좋아하고 기뻐하고 뭉클해하시는 부모님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또 한 번 마음이 묘한 감정으로 일렁거렸다. 부모님도 우리를 만남에 이렇게 기뻐하고 감사하셨을텐데 -. 라는 생각과 우리를 무사히 이렇게 키워주심에, 그래서 우리가 또 다른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줌에 '감사한 마음'이 또 한번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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