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12. 생애 첫 대출
이번 계약을 통해 내가 구하고 싶은 집은 이런 집이었다.
이것 말고도 101가지 정도 조건을 더 말할 수 있지만, 추리고 추려서 다섯 가지만 남겨보았다.
- 회사에서 멀지않고(우리회사는 서울 중심=비쌈)
- 주변에 공원이 있고(숲세권=비쌈)
- 역에서 나와 으슥한 곳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며(역세권=비쌈)
- 주변과 건물이 깨끗한 곳(신축이거나 관리를 잘하는 집=비쌈)
- 빛이 잘 들어오는 집(남향=비쌈)
그렇다. 나는 비싼집을 원한다고 돌려말하고 있다.
사실 이런집은 돈이 아주 많거나(이러면 한방에 해결!) 발품을 아주 많이 팔아야(운이 좋으면 해결!) 구할 수 있다.
일단 첫 번째 조건은 해당되지 않으니 발품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문제는 자본이 바탕이 되지않으면 발품을 아무리 팔아도 안되는건 안되는거다.
5분마다 네이버 부동산에 들어가 회사 주변을 구 단위로 쪼개 한집한집 매물을 살펴봐도 내 맘에 드는 집은 없었다. 정확히는 내맘에 드는데 내 예산안에 있는 집이 없었다.
아무리 작고 허름해도 아파트면 일단 5억 이상, 방이 좀 나눠져있다 싶은 빌라면 3억, 깨끗하다 싶은 오피스텔이면 2억. 서울 집 값에 대한 이야기는 새삼 놀라울 것도 없지만 정말 내 돈을 주고 살 집을 구하려니 그 비쌈이 더욱 실감나게 느껴졌다.
그런데 참 신기한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집을 구하는 내내 서울 아파트 중위값이 9억이라는 둥, 다 쓰러져가는 저 집이 서울 중심부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20억을 돌파했다는 둥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2억 언저리의 오피스텔이 저렴하게 느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사실 더 저렴한 집도 있었다. 하지만 가로등도 몇 개 없는 골목을 지나 누구나 힐끔 내 방 안을 볼 수 있는 반지하에 들어가 곰팡이와 안부인사를 물으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집의 가치는 철저히 돈을 따라갔다. 다른 사람은 모르고 내 앞에 기적처럼 나타난 싸고 좋은 매물은 없었다.
서울에 좋은 매물은 많았지만 내 예산안에 들어오는 집은 한정적이었고, 회사 대출부터 전세자금대출까지 땅불바람물마음 다섯가지 힘을 하나로 모으면 어찌어찌해서 오피스텔 전세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계산을 마친 후 나는 오피스텔을 계약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마음을 정하기까지도 고민이 많았지만 실제로 계약을 하기까지 몇번이나 무를까? 생각했다.
생애 처음으로 대출을 받는 다는 것, 대출금에 대한 이자를 내면서 2년을 산다는 건 여러모로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나의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도 느껴졌다.
하지만 그 집은 여러모로 내가 원하는 조건과 맞았고 이 정도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일단 이자가 없는 회사 대출을 최대한 받기로 했다. 서울보증보험에 납부해야하는 보증금이 일부 있긴 했지만 은행권 대출이자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었고, 나는 중도상환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중도상환시에는 보증금을 돌려주기도 하니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다만 회사대출의 경우 월금에서 매달 원금의 일부를 차감하는 방식으로 상환해야했기 때문에 나의 월급이 더욱 작고 소중해 진다는 단점이 있긴했다.
나머지 돈은 카카오뱅크 전세자금대출을 받기로 했다. 이율이 조금 저렴한 청년 전월세자금 대출이 있길래 이용하려 했더니 생각보다 한도가 적어서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일반전세자금대출은 이율이 약간 비싼대신 대출 가능금액이 넉넉했고 무엇보다 중도상환수수료가 없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다른 은행에서 대출 경험이 없어 비교하긴 어렵지만 카카오뱅크 대출은 꽤나 편리했다. 소득이나 근로 증빙 관련된 서류를 따로 제출할 필요없이 기본정보 입력 후 대략적인 대출 가능 금액과 이율이 계산되고 내가 동의하면 카카오뱅크가 증빙서류를 알아서 확보한다.
가계약 후 확정일자를 받고 계약서를 업로드하면 대출이 승인되고 계약일에 전세자금 송금하기를 누르면 바로 집주인에게 대출금이 입금된다. 이렇게 큰 돈이 이렇게 편리하게 넘어가다니. 편하면서도 섬찟했다.
이제 정말 이사를 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