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길도 쇼핑부터
수영을 하기로 마음먹은 후 가장 먼저 한 것은 수영 강습 신청하기였다.
빅스타 콘서트 예매와 맞먹는 난이도를 가진 수강 신청이 끝난 후, 지친 몸과 마음의 힐링을 위해 수영복을 쇼핑을 시작했다.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실내 수영 강습 시 절대 바닷가에서 입을 법한 섹시한 비키니나 화려한 색상의 수영복을 입어서는 안 되며, 그 규칙을 무시할 시 기존 수강자 전원의 따가운 눈총과 은근한 따돌림을 받게 된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초록창에 '실내 수영장 수영복'을 검색해보니 일단 수영복 면적의 90% 이상은 검은색이며 일부 남색 또는 은색으로 포인트가 된 수영복 이미지들이 주르륵 나왔다.
수영복 쇼핑에 대한 흥미가 급격히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이 세상에 이토록 많은 예쁜 수영복들을 모두 뒤로하고 회+검, 남+검의 어두컴컴한 수영복을 사야 한다니 -
그래도 베이비스위머로서 무리와 어울리기 위해 무난한 스타일의 수영복을 고르기로 일단은 결정!
그런데 뭔가 옵션이 많았다. 수영복만 사면 될 줄 알았는데, 따라붙는 수많은 선택지들.
선택 1 수모 선택 2 수경 선택 3 브라캡 선택 4 방수 귀마개 선택 5 매쉬 가방 등등.
뭐지?
그랬다. 수영 강습을 듣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일단, 수모가 있어야 했다. 수모는 소독약 성분이 있는 물에 직접적으로 머리카락이 닿는 것을 방지해 줄 뿐 아니라 머리카락이 빠져 수영장이 오염되는 것도 막아준다.
크게 천으로 된 타입과 실리콘으로 된 타입이 있는데 천은 일단 가격이 저렴하며, 쓰고 벗기는 쉬우나 수영장 물이 직접적으로 머리카락에 닿기 때문에 소독약으로 인한 손상에 손쉽게 노출된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실리콘 수모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고 탄성이 좋아 쓰고 벗기가 힘든 편이지만 수영장 물과 머리의 접촉을 최소한으로 만들어 준다는 장점이 있다.
나는 일단 기본형으로 포함되어있는 천수모로 결정!
다음으로는 수경이 필요했다. 초보자의 경우 수경은 크게 고민할 것 없이 기본적으로 제공해주는 제품을 구입하면 될 것 같고, 다만 수영을 하다 보면 습기가 찰 수 있기 때문에 안티 포그를 구입하면 편리하다.
집에서 식초와 세제를 이용해 만드는 법도 있다고 하니 참고!
다음은 브라캡을 고를 시간!
수영복에 별도의 브라가 부착되어 있지 않은 경우, 바스트 포인트를 가려주기 위해 브라캡을 사용한다. 보통 수영복을 구입할 때 기본형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은 고리형으로 나도 처음에는 이것을 구입했었다.
그런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일단 수영복을 입는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몸에 챡 붙어서 늘어나려고 하지 않는 수영복에 삐걱이며 두 다리를 넣고, 엉덩이와 허리 그리고 가슴을 걸쳐 힘겹게 어깨까지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쏙 빠진다.
여기서 첫 번째 고리형 브라캡의 문제가 발생한다. 고리를 미리 끼우고 수영복을 입는 경우, 십중팔구는 수영복을 입는 와중에 고리가 빠진다.
그렇다고 수영복을 입은 후 고리를 끼우려고 하면 천 형태의 고리형 브라캡이 내 몸에 착 붙으려 하지 않고 자기주장을 펼치며 모양을 잡아버린다. 덩달아 내 가슴의 모양도 자유분방하게 이상해진다.
실리콘형 브라캡은 고리형보다 가격은 아주 약간 비싸지만, 값을 톡톡히 한다. 수영복을 입기 전 혹은 후 편하게 가슴에 붙여주면 끝! 수영복이 탄력 있게 잡아주기 때문에 수영하다가 떨어질 염려도 거의 없다.
여기까지 구입했다면 이후의 것들은 부수적인 것에 가깝다.
나처럼 귀가 약한 사람의 경우 방수 귀마개를 구입하면 수영할 때 두려움도 줄어드는 효과도 조금 있고, 실질적으로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으니 귀가 가렵거나 아픈 일이 많이 줄어든다.
또한, 수영이 끝나고 나면 가볍게 세탁한 후 탈수기를 돌려서 가방에 넣기 때문에 물기가 많이 떨어지지는 않지만 종종 탈수기에 사람이 많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몸은 닦고 난 수건도 젖어있으니 통풍이 잘되는 매쉬 소재의 가방도 있으면 좋은 듯싶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하나.
생각보다 사람들이 수영 강습 시 다양한 수영복을 입는다. 비키니를 입은 사람은 못 봤지만 다채로운 색상을 가진 화려한 원피스 수영복을 입는 사람도 많고 등이나 골반쪽이 훅훅 파인 수영복을 입는 사람도 많으며, 무엇보다 그런 수영복을 입었다고 해도 아무도 째려보지 않는다.
더군다나 내가 속한 초보반은 물에 뜬다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대견해서 어쩔 줄 모르는 동지들이기 때문에 더욱이 수영복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수영복이 손바닥만큼 작아서 수영 동작을 하기 힘든 정도만 아니라면, 뭐든 괜찮을 듯!
그러므로 비뚤어진 집단주의 전설에 넘어가 나처럼 입고 싶은 수영복을 못 입고 수영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