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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별 Aug 23. 2019

수영장에서 삶을 배우다

자꾸 가라앉던 수(水)태기 극복기

사실 수영 초초보반 멤버 중에서는 꽤나 빠르게 킥판과 헬퍼를 뗀 후 약간의 우쭐함이 있었다. 한 이틀?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는데 저절로 되던 자유형이 숨쉬기가 갑자기 안됐다. 숨을 쉬려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왼팔이 가라앉았고, 몸통도 같이 가라앉으면서 아무리 고개를 돌려도 내 입과 코는 물 속이었다.

그러니 숨을 못 쉬고, 숨이 모자란 나는 더 이상 수영을 할 수 없어서 헐떡헐떡하다 멈추기 일쑤.

한 시간 동안 강습을 들었는데 앞으로 나가지 않고 자꾸 가라앉기만해 몸은 지치지 않고 배만 부른(수영장 물은 의외로 소독약 맛이 나지 않았다) 날들이 시작되었다. 배를 답답하게 조이던 헬퍼와 킥판을 두고 자유롭게 수영할 수 있다는 부푼 꿈에 가득 찼는데, 선생님은 나에게 안 되겠다며 다시 킥판을 잡으라고 하셨다.(흡사 유급을 당하는 듯한 묘한 굴욕감) 그렇게 수영을 시작한 지 한 달 반 만에 나는 수(水) 럼프에 빠졌다.


선생님께 '선생님 팔이 자꾸 떨어져요'라고 말씀드리니, 몸에 힘을 줘서 그렇다는 답변을 주셨다. 물속에서는 우리가 땅 위에 있는 것만큼의 힘이 필요 없다며 힘을 빼라고 하셨다. 그리고 물은 자연이요. 자연은 우리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므로 버티지 말고 몸을 맡기라는 신선 같은 말씀도 해주셨다.

근데 힘을 뺄 수가 없었다. 숨을 쉬기 위해 머리와 허리를 돌리려면 힘이 들어가야 하고, 수영을 해서 앞으로 가려해도 힘이 필요한데 어떻게 힘을 빼라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튜브로 '수영할 때 힘 빼는 법', '자유형 왼팔 떨어짐', '수영할 때 몸통 가라앉는 이유' 등을 검색해보고, 수영장에 다닌 지 20년째 되셨다는 직장 상사 아내분께 이유를 여쭤보기도 했다.

수영 방법을 이렇게도 바꿔보고 저렇게도 바꿔보았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가라앉았고, 계속 물을 먹었고, 계속 배가 불렀다. 그러는 새 어느덧 7월은 8월이 되었고 난 여전히 가라앉았다.


내 몸이 내 말을 듣지 않자 수영에 가기가 싫었다. 금요일 밤이면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자유수영 가야지! 하면서 벌렁이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들던 게 고작 몇 주 전인데, 몇 주만에 짜게 식어버렸다.

답답한 마음과 함께 금사빠+지구력 부족의 나의 성향이 벌써 고개를 든 건가 하는 마음에 나 자신이 밉기도 했다.


그래서 수영 강습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수업을 빠졌다.

아침 출근길에 수영복, 수모, 수경, 수건, 속옷, 세면도구까지 바리바리 챙겨 왔지만 어차피 오늘도 가라앉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수영을 가기 싫어서 모든 짐들을 책상 속에 고이 넣고는 광진구로 신토불이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지난 4월 처음 먹어본 곳이었는데, 당시에 시작은 좋았지만 먹다 보니 너무 매웠다. 떡볶이보다 쿨피스를 더 많이 마셨고, 난 그날도 물배가 차서 배가 빵빵해졌었다.

먹으면서 끙끙 앓았었는데, 자꾸 생각이 나는 맛이었다. 

그래. 내가 비록 맵찔이지만 오늘은 아주 속상한 날이니까 이 정도는 먹어줘야지! 하는 생각에 신토불이 떡볶이로 가서 떡볶이+어묵 2개+만두 2개+계란 2개+핫도그 1개+사이다를 주문했다.

첫 입은 여전히 꿀맛, 쫀득한 밀떡은 당연하고 달콤한 핫도그에 은근하게 스며든 매콤한 떡볶이 양념은 정말 환상이었다. 야끼만두야 말할 필요 있나 당연히 맛있고, 포슬포슬 잘 삶긴 계란도 고소했다.

그런데 먹고 먹고 또 먹어도 괜찮았다. 계속 맛있고 떡볶이가 술술 넘어갔다. 이럴 리가 없지만 일단 맛있으니 한입 더 한입 더 하다 보니, 정말 맛있게 한 접시를 다 먹었다.


그때 우습게도 수영 생각이 났다. 어쩌면 나 다시 숨 쉴 수 있지 않을까? 직전에 그렇게 매웠던 떡볶이가 두 번째 먹으니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다시 수영장에 가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뜰 수 있지 않을까?

오랜만에 수영장에 가고 싶어 졌다. 


이틀 뒤 수업시간 직전 선생님께 지금 내 상황을 조금 더 상세하게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내 자세를 한번 보자고 하셨고 숨을 쉬기 위해 고개를 돌릴 때 허리와 어깨가 같이 돌아가야 하며, 그때는 상체의 힘도 있지만 킥을 사이드킥으로 전환해서 그 힘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킥판을 잡고 수영을 하다 조심스레 킥판을 옆에 내려놓고 물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라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그냥 숨이 차서였나?)

머리를 물에 담그고, 킥을 하다, 오른팔을 돌리며 사이드킥으로 전환, 그리고 허리, 어깨, 고개 순으로 돌려 숨쉬기. 성공!

숨을 쉬었다. 레일을 완주하지는 못했지만 꽤 긴 거리를 킥판 없이 갔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숨을 쉬면서 갔다.


몇 주간의 숨 쉴 수 없던 시간(사실이긴 한데, 글로 쓰니 뭔가 거창하다)을 겪으면서 그 시간은 나에게 쓸모없게 느껴졌었다. 그저 힘들고, 답답하기만 한 시간들.

그런데 그 시간을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자유형을 할 때 '어떻게' 숨을 쉬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방법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든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런 일이 많았다. 지날 때는 너무 고통스럽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버티다 보면 어느샌가 지나고, 그 시간들은 나에게 각양각색의 의미로 남겨져 나를 성장시켰다.

여기서 중요한 건 '버티는 것'이다.

잠깐 쉴 수도 있고 약간 딴 길로 셀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일을 계속하며 버텨내는 것. 그 시간 동안 나는 제자리를 걷고 있는 것 같아도 사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결국은 원하는 바를 이뤄내 왔다.

물론 버티고 버텼는데 안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적어도 난 끝내 원하는 바를 이뤄낸 적이 더 많았다.

어쨌든 알 수 없는 인생이라면, 나의 생의 시간 동안 쌓인 데이터에서 과반의 비율을 믿어보는 게 맞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버티고 또 버텨보기로 마음먹었다.

힘든 일은 지나가겠지. 나는 오늘보다 내일 더 멋진 사람이 되겠지 :)


떡볶이를 먹다 깨달은 삶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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