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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Dec 12. 2023

사랑은 훌륭한 작문 선생님

동거 커플의 일상적인 나날

그녀(H)와 만난 뒤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 브런치 계정의 시작도 그녀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평소 영화와 책을 겉핥기식으로 소화하고 지식을 뽐내길 좋아하던 나는 그녀 앞에서도 떠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그녀는 그런 나를 보고 넌지시 브런치를 해보는 것 어떠냐며 힌트를 줬다.


가벼운 마음에 글을 종종 쓰던 나는 어찌어찌 첫 도전으로 브런치 작가가 됐다. 여전히 선정 기준과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어찌 됐든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브런치 작가라는 게 대단한 타이틀이 아니지만, 내 글이 모종의 이유로 선택받았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뒀다. 


지금도 종종 그녀는 자신의 권유가 '신의 한 수'였다며 거들먹 거린다. 그럴 때면 나는 그 말에 응당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실제로 그녀의 말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이야기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는 사랑에 관한 많은 노래와 이야기가 있다. 그렇게 세련된 전달 방식이 아니더라도 사랑에 빠진 많은 이가 글을 써서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다. 자신의 마음속 어딘가에서 종종 대는 사랑을 거침없이 글로 표현하고 당신을 이만큼이나 애정한다고 말하고 싶은 욕망을 감추지 못한다.


일반인 출연자들이 모여 짝을 찾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편지는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애정 표현의 정점으로 다뤄진다. 약속이나 한 듯 편지지를 준비해 와서 마지막 차례에 담백한 글로 마음을 표현한다. 이처럼 사랑은 지위 고하와 성별을 막론하고 글을 쓰게 만든다. 사랑은 훌륭한 작문 선생님인 것이다.


사랑은 글쓰기 외에도 많은 곳에서 훌륭한 선생님 역할을 한다. 노래는 물론이거니와 그림과 사진, 영화, 개그까지. 사랑 때문에 시작했다가 업으로 삼게 됐다는 이야기가 종종 소개되며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사랑에 빠진 이들은 모두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바꾼다. 사랑이 사람을 능동적인 행위자로 변모하게 만든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일지도 모르겠다.


덧붙임: 사랑이 모든 행위의 당위가 돼버린 어리석은 자가 되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에 눈먼 자들의 말로를 또 많은 이야기를 통해 들었지 않는가. 사랑이 훌륭한 촉매의 역할을 하고 나면 이후의 것들은 모두 온전히 행위자의 몫이 된다. 바통을 이어받고 책임을 져야만 한다. 사랑의 관성에만 기대어서는 쉽게 궤도에서 탈락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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