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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버금 Mar 29. 2020

사랑을 사랑하는 방식 (1)

3월의 큐레이션 주제 '사랑'


사랑을

사랑하는 방식



  언젠가 커피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섬세하지 않은 입맛에 주는 건 아무거나 다 잘 먹는 편이라 커피의 깊은 맛에 대해서 논하는 내용은 아니었어요. 그때 저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보았던 커피를 잘 먹지 못하던 사람이 커피를 잘 먹게 되기까지의 순서를 떠올리며 썼었는데, 그 순서란 이러했습니다.


커피를 못 마시던 사람이 커피를 잘 마시게 되는 일련의 순서가 있다. 먼저 커피 아이스크림이나 커피 우유 같은 커피맛 음료를 먹는다. 그러다 차츰 커피스러운 커피들로 넘어간다. 믹스 커피, 프라푸치노, 모카, 마끼아또, 바닐라라떼, 그냥 라떼. 최종 목적지는 물론 아메리카노이다.


  순서를 보고 따라하기라도 한듯 저 또한 저 과정을 고대로 지나왔는데 그처럼  오랜 시간을 거치며, 그리고 돈을 부지런히 써가며, 실히 커피력을 쌓은 덕분인지 커알못이던 제가 지금은 커(조금)알로 오를 수 있었죠. 아직 최종 목적지인 아메리카노에까지는 이르지 못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긴 하지만요.


  그때 우연히 막 이별을 한 친구와 커피를 마셨던 기억 때문인지 저는 커피에 관한 글을 쓰며 커피와 사랑이 닮은꼴이란 생각을 했었는데요. 제 와 생각해보면 이 두 가지 모두 '커피'와 '사랑' 으로 뭉뚱그려 통칭되는 이름 아래 실로 다양한 맛을 가진 것들이라 그리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4월의 큐레이션 주제인 '사랑' 을 듣고 처음 했던 생각은 사랑은 으레 두 사람이 하는 것이니 연인에 관한 글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리고 브런치에는 그러한 제 생각을 깨 가족의 사랑, 연인의 사랑, 혼자하는 사랑, 다정한 사랑, 미워하는 사랑까지. 사랑을 사랑하는 다양한 모양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사랑의 달콤한 첫맛과 쌉싸래한 뒷맛.

  믹스 커피에서부터 아메리카노 이르는 그 다양한 맛의 층위들.


  사랑을 사랑하는 두 가지 방식에 대한 책을 골랐습니다.




<사랑을 사랑하는 방식: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


출처: 수오서재 인스타그램


여전히 쉽진 않지만
조금은 알 것 같다.
그저 불행하기만 한 삶은 없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는 제목의 이 책은 브런치 고수리 작가님의 책인데요. 고수리 작가님은 브런치북 1회 금상 수상자로, 브런치북 출간 혜택을 통해 첫 책인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두 책 제목에 모두 '우리' 라는 단어가 들어간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연필로 그린 듯 부드러운 흑백의 그림이 돋보이는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우리가 사랑하는 이야기들에 대해 작가의 여러 일화를 엮어 풀어낸 책이었어요. 그 중에서도 저는 다시 사랑하기 위해서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때도 있음을 말하는 한 에피소드가 특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상처들은 그냥 나와 같이 살고 있었다. 약간의 아픔을 감내하고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이름 부르면 부루퉁한 얼굴을 내미는 상처들을 껴안고 지금껏 살아왔던 거였다. 나는 상처투성이 존재였구나. 새삼 깨닫는다.

  나를 그냥 두기로 했다. 상처투성이인 채로, 상처들과 그냥 같이 살아갈 생각을 했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툭 놓아버리자 어쩐지 유쾌해졌다.


  하고야 만다, 는 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어쩔 수 없음을 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은 무력한 느낌도 들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결국 그렇게 된다는 것, 기어코 그렇게 하고 만다는 어떤 의지도 보이는 듯한 표현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사랑하는 일이 그저 주어지는 당연한 일만은 아님을. 어떤 상처들은 껴안고 어떤 아픔들은 감내하면서 기어코 다시 사랑하게 되는 사랑도 있음을. 사랑을 사랑하는 방식에 대하여, 단 한 줄의 제목만으로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던 책이었습니다.  




<사랑을 사랑하는 방식: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



가슴에 무늬를 새기기 위해 글을 쓴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무늬 하나를 새기고 싶다.

 
 세월이 흘러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글을 쓰는 동안은 다른 세상을 사는 듯 즐겁다. 또한 성장하는 기쁨도 느낀다. '글을 쓰는 것은 나무를 키우는 것과 같아. 물을 주고 가지를 다듬고 자꾸 들여다보고 말을 걸어야 해.' 스승님의 말씀에 과연 성찰하며 글을 쓰고 있는지 나에게 묻는다.
  
  작가를 '文人' 이라고 한다. 가슴에 먹으로 무늬를 새겨 넣은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가 '이다. 먹물이 채 마르지 않은 촉촉한 글을 안고 사는 사람. 나는 이 말이 참 아름답다. 가슴에 무늬를 새기기 위해 글을 쓴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무늬 하나를 새기고 싶다.

  행복한 사람은 과거가 없고, 불행한 사람은 과거만 있다고 한다. 내가 살아갈 날들은 알 수 없지만 그것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으련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고 싶다.


  정갈한 표지가 눈에 들어오는 이 책은 브런치 오설자 작가님의 책인데요. 저자 소개가 참 흥미로워요. ' 34년간 아이들을 가르친 초등학교 선생님이자 수필가이다. 아이들이 도전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고 믿고 있다. 1학년 아이들의 순수함과 호기심 어린 눈빛에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초등학교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으신 경력이 걸맞게, 책은 초등학생 아이들과 있었던 일화, 첫 근무지에서 떠오르는 추억, 작가님의 일상적인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글감을 아우르고 있는데요.


  제가 놀랐던 이유 중에 하나는 물론 한 가지의 직업을 무려 '34년'(!) 이나 이어오신 작가님의 이력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긴 시간 동안 응축되어 온 경험과 깊은 사유에 감탄한 것이었습니다. 글의 초반, 프롤로그에서 쓰신 것처럼 작가님은 그 동안 보낸 과거아 아니라 '오늘 하루', 그리고 또 '하루' 들을 모아 책 한 권을 쓰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님은 글을 쓰는 것이 가슴에 무늬를 새기기 위함이고, 그러기 위해 나 자신을 사랑하며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요. 그 메시지처럼 글 쓰기가, 그리고 글 읽기가 어떻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짐작해보게 하는 따뜻한 내용의 책이었습니다.




  사랑에는 단지 두 사람의 사랑만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과 내가 나를 사랑하는 사랑도 있다는 것. 사랑도 커피의 맛 만큼이나 여러 층위로 이루어진 감정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사랑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두 권의 책을 골랐습니다.






사진: onlyheya

말글: your_dictionary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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