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심기
영화 리틀포레스트에서 아주심기라는 단어가 나온다.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히 뿌리를 내리는.
대체 어디에 아주심기를 해야 할까. 그렇게 가속페달을 세게 밟을 것 같은 차처럼 드르렁대던 나는 한참 후에야 이곳이 내 출발선이구나를 인정했다.
사실 아직도 어디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조금 단호해진 것일까.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할 때라고.
지금의 나는 과거 무수한 선택의 산물이라.
어쩌면 꽤 괜찮은 선택들은 아니었나 생각이 들 때도 있는 걸 보면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질 법도 한데.
당최 이 책임이란 것은 보이지도 않고 가늠할 수도 없으니, 그 막연한 공포감을 지우려야 지울 수가 없다.
알고는 있다.
사실, 내 모든 고민들은 선택을 위해 따라왔다는 것을.
사실, 나는 선택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책임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다만, 선택이 신중하다고, 그만큼 중요한 선택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알량한 자존심을 유지하기에.
이제는 선택을 내렸으니 그 책임감을 직접 느낄 차례다.
선택을 앞에 두고 아웅 하던 시간이 끝나버렸다.
이사를 했다.
언제든 떠나려고 했던 것이 한해, 두해.
꽤 오랜 시간을 머물었던 집이다.
첫 독립의 낯섦에 청승맞은 눈물을 흘리던 곳이기도 했고,
혼자로부터의 고독과 행복을 함께 느끼던 곳이기도 했고,
주변의 좋은 사람들에게 작은 보답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느지막하게 처음으로 새로운 공간을 찾아본다.
여러 군데를 보면 이 집이다 싶은 게 나타난댔는데.
10군데 정도의 집을 보면서 한 개씩 걸리는 부분이 마치 여긴 아니야라고 하는 것 같았다.
너무 마음에 들었지만 알고 보니 난방비가 과하다던가,
눈앞에서 괜찮은 집을 계약하는 걸 바라만 봐야 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꽤 오래 걸리는 시간에 이러다 집도 못 구하는 것 아닌가, 집세를 생각하면 땅에다 아주 돈을 들이붓는구나.
수만 가지 생각이 나를 뒤덮으니 몸도 성치 않더라.
만기일을 한 달가량 두고서야 집을 구했다.
'이 집이다!' 싶지는 않았지만, 전 집에 비해서 주방이 넓은 집이었다.
건너편 건물이 훤히 보이는 집이었지만, 좋은 식탁을 사기엔 넉넉한 공간이었다.
창가에서 시간을 주로 보냈던 이전과 다르게, 이젠 식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이 정해지니 이사 업체를 정해야 했고, 일손을 도와줄 사람도 필요했다.
희망이었던 엄마아들이 번복함에 따라, 겨우 눌러놓고 있던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서운하고, 막막하고.
여린 감정들이 올라왔지만, 다시 한번 스스로의 멱살을 고쳐 잡았다.
하필 이런시기에, 괜한 오기가 생겨 나는 보란 듯이 혼자 해버리려고 한다.
어찌 보면 가학이라.
대중없는 막막함에 무기력함을 느끼면서도 애써 해내야지 읊조리며 스스로 멱살잡고 오던 길이 마침내 끝이 보인다.
고된 시간 동안, 마음속으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를 수시로 되뇌었다.
시간은 흐르며, 해결되지 않을 것 같던 문제도 어떻게든 끝이 난다.
막막함이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라고.
참을 수 없을 땐, 얼른 다음 주가 되어라. 얼른 다음 달이 되어라. 기도했다.
진작에 해내었을 이름모를 사람들을 찬양하기도, 언제고 다시 해야할 일들에 절망하기도.
이 한번의 시간이 나에겐 참 애석하기도, 애잔하기도,설레이기도 한 것이.
지금은 무사히 내 식탁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냉장고도 채우고, 사람 사는 냄새도 묻혀야겠다.
얼마나 머물지는 모르겠지만, 또 나의 눈물과 웃음이 잘 배이길.
오롯이 잘 쉼으로써 바깥의 나를 잘 다듬어주길.
아직 완전한 아주심기는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