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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후감

다자이 오사무, 『사양』

by 김감감무

오 년 전 이맘때 이 책을 처음 읽었다. 『인간실격』을 감명 깊게 읽었고 이어서 『만년』도 읽었다. 언젠가 『쓰가루』도 읽어봐야지,라고 생각은 했지만 계속 미룬 채 이 책을 마지막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책은 의도적으로 멀리 해왔다. 그의 작품에 깊게 깔린 우울이 전염되는 것만 같아서였다. 제대로 읽지 못한 탓이다.

그때 쓴 독후감을 다시 봤는데 역시나 엉망이었다.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어 비공개 처리했다. 당시의 나는 가즈코의 사랑과 혁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불륜이니 뭐니 함부로 지껄였다. 그녀의 혁명이 뭔지 몰랐고 그녀의 생명력을 읽지 못했다. 나오지와 우에하라의 불량함을 연기하고 있는 친절을 읽지 못했다.


“잘 안 돼. 무얼 써 봐도 시시하고, 그냥 괜히 슬퍼 죽겠어. 목숨의 황혼. 예술의 황혼. 인류의 황혼. 이거 거슬리는데.”


패전 후의 세상은 “온 세계에 때아닌 서리가 내린 것 같”다. 개인의 기쁨이 세상에 죄를 짓는 것만 같은 자책을 느끼는 이들은 불량함을 연기하고 현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술과 마약에 의존한다. 귀족의 고귀함이니 정신은 먹고사는 문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와중에도 가즈코는 생명력을, 강인함을 잃지 않는다. 낡은 도덕을 부수고 사랑의 결실을 얻는다. 가즈코가 이뤄낸 사랑과 혁명은 작가 본인의 현실에서는 이뤄내지 못했던 이상적인 삶이자 사랑이 아니었을까.

아름다워서 더 쓸쓸하게 읽히는 책이다. 각 인물들이 작가의 어떤 면을 대표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읽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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