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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숲 Dec 23. 2021

김장날 등장한 양고기와 립스틱 - 세대교체인가요

[팔순의 내엄마 18화] 우리집은 세대교체 중 


“이번 김치 싱겁지 않니?”

“싱거워요”

“저희 것도 그래요. 배추가 덜 저려진 것 같아요.”

“난 아직 열어보지 않았는데, 열어 봐야겠네.”

가족 단톡방이 오래간만에 호떡집 불이라도 난 것처럼 울려댔다. 나도 얼른 냉장고로 가서 김치 한 포기를 꺼내서 썰었다. 고갱이 쪽은 덜 절여져서 뻐정다리처럼 뻣뻣했고 빛깔은 고춧가루 푼 물에 담갔다 꺼낸 것처럼 허옇다. ‘지금까지 이런 김치는 없었다.’ 늘 ‘올 김치 너무 맛있어’, ‘김장이 너무 잘됐다.’ ‘우리 집 김치는 정말 끝내줘’하면서 먹었는데… 내년까지 이 맛없는 김치를 먹어야 하다니 이건 분명 ‘재앙’이었다. 


올 김장에는 예년에는 없던 크고 작은 얘깃거리가 넘쳤다. 제일 큰 사건은 큰 조카네 일이었다. 늦은 결혼으로 뒤늦게 얻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내미가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들이 코로나 확진이 된 것이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 전원이 PCR 검사를 받았단다. 이제 겨우 30개월 조금 넘은 아이들에게 PCR 검사라니. 어린이집은 당분간 폐쇄됐고 딸내미와 그 부모들까지 집에서 격리 중이라는 것이다. 


남의 얘긴 줄만 알았던 ‘코로나의 여파’가 바로 코 앞까지 밀려온 것이다 ‘설마 우리 집에? 나에게?’라는 안일함에 코로나가 제대로 펀치를 날린 셈이다. 다행히 조카네 식구들은 모두 음성으로 나왔지만 꼬맹이는 물론이고 부모들까지 한동안은 격리를 해야 해서 불가피하게 김장에 불참했다. 온 식구가 꼼짝없이 집 안에 갇히다니. 우리의 일상을 이렇게 쉽게 파괴할 수 있는 코로나의 위력에 전율과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김장날에 엄마는 늘 큰 들통에 선짓국을 끓였다. 된장 푼 고깃 국물에 배추를 넣고 끓인 얼큰한 선짓국 한 사발이면 꽁꽁 얼었던 손발과 몸이 저절로 녹았었다. 그런데 올해는 선지 해장국 대신 ‘백가네 곰탕’으로 바뀌었다.


“엄마 올해도 선짓국 끓일 거지?”하고 물었더니 “아니 힘들어서 안 해. 백가네 곰탕 사다 먹기로 했다.”하시는 거였다. 시골집에서 멀지 않은 가래비 장터에 있는 ‘백가네 곰탕’ 집 곰탕이 진즉에 까탈스러운 우리 집 식구들의 검증을 통과하긴 했지만 가족행사에 ‘공식 음식’이 될 줄이야. 이제 김장날 엄마가 끓여주는 선짓국은 다시는 먹을 수 없게 되는구나. 이렇게 낯익은 것들과 하나씩 이별을 하게 되는거구나. 쓸쓸함이 밀려온다.


그와 더불어 삼겹살 구이 대신 양고기 바비큐가 등장했다. 배추와 무를 뽑고 난 텃밭에 드럼통을 갖다 놓고 석쇠만 올려놓으면 근사한 바비큐 화덕이 된다. 고기를 굽는 것은 늘 남자 조카들 몫이었는데 신세대 조카가 이번에는 양고기를 먹어보자면 팩에 든 양고기를 사 온 것이다. 지금껏 남동생의 몫이었던 ‘삼겹살 바비큐’권이 자연스럽게 조카에게 넘어간 것이다. 남동생은 ‘조카들이 다 알아서 하니 편해졌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한 듯했다. 올 김장은 우리 가족이 ‘세대교체’의 한 복판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할머니 이거 발라보세요.”

큰 조카며느리가 작은 상자를 엄마에게 내밀었다. 예쁘고 고급스러운 포장지에 담긴 립스틱 세트였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선물을 받아 든 엄마의 표정에는 황송함과 기쁨이 뒤섞여 있었다. 


“아니 무슨 때도 아닌데 이걸 왜 사 왔어?”

“할머니 김장하시느라 힘드신데 제가 해 드릴 게 없어서 작은 선물 준비했어요.”


수 십 년을 김장을 담그는 동안 우리는 뻔한 ‘봉투’를 건네는 것으로 엄마의 노고에 감사함을 표해왔다. 냉정하게 말하면 봉투 속 액수는 겨우 재료값에 준하는 정도였으니 ‘감사 표시’라기보다는 ‘결산’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조카며느리의 작은 선물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당신의 노고에 감사해요'라는 표현은  이렇게 작은 '립스틱'이 두터운 돈봉투보다도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도 이번 김장에서 알게 되었다. 


올해도 여러 에피소드를 남기며 무사히 김장을 마쳤다. 작년 이맘때가 떠오른다. ‘힘들다고 더 이상 김장을 못하겠다고 했던 엄마’. 감사하게도 올해도 엄마와 함께 김장을 담갔다. 엄마는 대문턱에 앉아 김치통을 싣고 하나둘씩 떠나가는 자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의 웅크린 어깨가 말하고 있었다. ‘올 한 해도 내 할 일 잘했네.’ 엄마의 시선이 머문 곳이 어딘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산등성이로 넘어가는 해였는지, 그 너머 아득한 엄마 기억 속의 어디쯤인지. 


“이제 김장도 끝나고 한시름 놓았다.”라는 엄마 말을 떠올리면 가슴이 시리다. 엄마는 왜 지금까지도 ‘늙은 자식들 김장 걱정을 하는지. 왜 아직도 김장을 당신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평생 그런 걱정들이 엄마의 어깨를 짓눌렀구나…


며칠 전 엄마네 집에 다녀왔다. 


“엄마네 김치는 허옇지 않네? 간도 잘 맞고. 왜 우리 집 김치는 왜 이렇지가 않지?” 

“먹어봐. 시원하고 맛있다.” 

“시원하고 맛있네~. 간도 딱이고. 허옇지도 않고.” 

“맨 윗단에 있는 것 말고 아래쪽에 있는 것부터 먼저 먹어야지. 그래야 국물에 잠겨 있어 숨도 잘 죽고 간도 잘 배어 있지.”

“정말? 난 여태 그런 것도 몰랐네. 엄마가 그런 말 해 준 적 한 번도 없잖아?”

“여태 그것도 몰랐어?” 


엄마는 ‘지들이 잘못해놓고 내 탓만 하더니. 이제 알았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우리가 김치 맛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한 것을 두고 엄마는 내심 당신의 솜씨를 탓한다고 느꼈었나 보다. 


“역시 우린 엄마가 있어야 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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