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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녀 Dec 29. 2020

최악을 생각해보는 일

최악을 상상해보는 사람은 어떤 유형의 인간일까.

근래에 나는 내 삶의 최악을 상상해 보곤 한다. 친정 엄마가 돌아가시고, 독립해 살 수 없는 아프고 나이 든 동생은 내 몫의 책임으로 돌아오고, 남편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갚지 못한 엄청난 대출만을 남기고 떠나고, 나의 공황장애는 다시 심해지고, 그러거나 말거나 당장 생계를 꾸려야 하는 처지가 된다면.... 나는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최근 한 달간 남편이 2주는 무척 바빴고, 2주는 무척 아팠다. 그 한 달 동안 코로나로 갇힌 세상 속에서 아이와 나 둘이서 답답한 생활을 이어갔다. 남편이 몸살이 나면서 아팠던 그 2주의 마지막은 악몽이었다. 남편은 열이 나기 시작했고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깨끗하게 떨어지지 않았다. 설마 설마, 코로나는 아니겠지, 하루만 자고 나면 나아지겠지, 했다. 그러나 이틀째가 되어도 열은 여전했다.

남편은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1339에도 전화를 해보고, 결과가 가장 빠르게 나올 것 같은 곳으로 찾아가 검사를 받았다. 결과가 나오는 늦은 오후까지 불안과 초조로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회사에서 만났을 사람들과, 식당에서 먹었을 점심들, 그 식당 어딘가에 떠돌아다녔을 바이러스들을 생각했다. 우리 아파트 단지 최초의 확진자가 되면 어쩌지? 우리는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겠지. 친한 이웃들은 걱정 섞인 카톡을 보내면서도 꽤 오랫동안 우리를 만나주지 않겠지. 지금도 미칠 것 같은데 자가 격리 2주를 어떻게 견디지? 음식물쓰레기는 또 어떻게 하지...

불안으로 떨리는 마음을 아이에게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천만 다행히도, 결과는 음성이었다.


그렇게 일상이 무너질 뻔한 위기가 가까이 스쳐 지나가자 삶이 무서워졌다. 별 것 아닌 내 일상이, 하루하루의 평화가 그다지 공고하지 않다는 실감이 들었다. 불현듯 예고 없이 삶이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

최악을 생각하는 것은 각오를 다지는 일이다. 나약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정신을 바짝 차리도록. 어떤 돌부리에 부딪혀도 쓰러지지 않도록, 내가 부딪힐 가능성이 있는 가장 커다란 돌부리를 상상하고 시뮬레이션해보는 것.


21세기의 인간은 어쩌면 이리 나약한 것일까.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전쟁을 겪고 부모 형제와 헤어져 피난을 내려와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그들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사람들인가. 내가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과연 제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지금 팬더믹 시대를 살면서 숨이 막힐 때마다 레퍼런스처럼 윗 세대의 삶을 떠올려본다.

호랑이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고 했다.


덧.........

최악에 대해 그만 생각하기로 한다. 자주, 구체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우울하고 예민해졌다. 이제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더니 이유는 모르지만 생각해보지 않았을 때보다는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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