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궁댕이를 때렸나?

이혼한 가정에서 자란 내가 이혼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법.

by 꽃구름

열시도 안되어 잠든 아이 둘. 11시가 좀 지나지 않아 큰 아이가 뒤척이며 오징어처럼 몸을 베베 꼬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잠들지 못하고 노트북 앞에서 글을 끄적이고 있던 나는 당장 짜증 내는 큰 아이 곁으로 다가갔다. 쿠션으로 칸막이를 만들어 놓았지만 크게 휘적거리다 쳐서 작은 아이까지 깨우면 이 밤이 까마득했기에 더 득달같이 달려갔다.


큰 아이는 말도 안 하고 눈도 덜 뜬 채로 짜증을 내고 있다. 모기 물린 지 꽤 되어 다 나아가는 자리를 다시 벅벅 긁으며 상처를 내기에 나는 그때부터 다시 짜증이 몰려왔다.


"긁지 마."


잠결에 긁으면 그 파워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내일 아침에 두 눈으로 확인 가능하기에 아이를 말렸다. 저를 말리니 애는 더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왜? 뭐 때문에?"


아이는 말도 안 하고, 이번엔 바지 허리춤을 막 두 손으로 당기기 시작한다. 작아진 내복 바지를 그냥 입혔더니 놀 땐 정신없어 몰라도 아무래도 자면서는 불편해서 깼나 보다 싶었다. 원인을 알아 바로 바지를 벗겨내려는데 아이는 마구 발버둥을 친다. 그녀의 발끝이 쿠션을 넘어 타고 둘째 아이 엉덩이를 덮치기 일보직전에 나는 그녀의 발을 확 잡았다.


[팍팍!]


이제 9개월밖에 안된 동생이 그 발길질에 차였다면 바로 날아가고 앙 울음을 터트리며 깼을걸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고, 화가 났다. 그래서 엎드린 아이 엉덩이를 두방 팍팍 치고 말았다.


큰 아이는 잠결에도 잠시 울먹하더니 바지를 벗겨주니 벗은 그대로 잔다. 밤엔 서늘한 가을바람 때문에 다른 바지로 입혀주려니 또 발길질 시동을 걸어 그냥 이불 덮어 내버려두어버렸다.


잠시 뒤척이다 새근새근 잠든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침대에 올라와 가만 누워있는데, 엉덩이를 팍팍 때릴 때 확 끓어오른 양은냄비처럼 순간적으로 화가 화르륵 타올랐단 게 생각났다.


난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오늘 하루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그래. 발단은 그것이었다. 추석 연휴가 긴 데다 코로나 때문에 멀리 사는 시댁 식구들이나 친정언니가 오지 않아 시간이 꽤 남았다. 그래서 추석이라 시간이 맞는 친구들과 맞춰 보기로 했다. 내가 젖먹이 둘째가 있어 멀리 가는데 부담되니까 친구들이 친히 우리 동네로 와주기로 했다. 젖먹이 아이는 어쩔 수 없이 데려가고 남편에게도 동의를 구하니 그러라 한다. 그래서 약속은 내일이었고, 오늘 큰 딸에게 양해를 구했다. 근데 큰딸이 따라가고 싶단다. 오 마이 갓.

거기 놀 것도 없고 밥만 먹고 올 거야. 하나도 재미없다고 말해도( 그건 사실이다. 수다하는 나는 너무 재밌지만 애는 놀게 없다.) 무조건 가겠단다. 맨날 이름만 듣고 얼굴은 못 본 이모가 있는데 그 이모가 보고 싶어 서란다. 휴. 나는 엄마지만 아이가 그렇게 나오니 표정관리가 안 되었다.


"너 가도 엄만 못 놀아줘. 이모들이랑 이야기해야 돼. 이모들도 못 놀아줘. 그러니 가지 말고 아빠랑 놀이터 가서 신나게 놀고 와."


아이에게 하루 종일 이런 비슷한 내용의 으름장을 몇 번이나 놓았는지 모른다. 그래도 의지의 큰딸은 꼭 가겠단다. 못 놀아주겠다니 가서 동생이랑 놀겠단다. 아이고 머리야.


내 친구 한 명이 오후 기차로 가기에 오전 일찍부터 봐도 얼마 못 보는 시간인데 하나라도 떼고 가려고 했는데 자꾸 간다니 솔직히 짜증이 났다.


짜증이 나니 말도 곱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오늘 하루 별것 아닌 일에 떼를 좀 썼다. 최근에는 그러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더 기를 쓰고 이모들과의 약속에 가려고 했다. 은근히 엄마가 자기를 귀찮아하고, 동생만 데려가겠다니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꼭 가야만 한다고 확신했나 보다.


아이는 참 신기하게도 엄마의 감정을 잘 읽어낸다. 특히 화가 나고, 짜증 나는 부정적 감정들을 가장 예민하게 알아차린다. 그러면 아이는 본능적으로 더 짜증을 내고 화를 내며 엄마가 자신을 받아주길 바란다. 어릴수록 더 그렇다. 엄마가 보기에 이건 아주 최악의 악순환이다. 하지만 아이는 어떨까? 아이는 그게 본능이다. 자기에게 먹을 것을 주고, 무섭고 아프면 안아주고, 울면 보듬어주는 엄마라는 존재가 자신을 밀어낼 때의 불안감이란 얼마나 절망적일까?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 같은 불안감일 테지. 나는 그걸 다 알면서도 내 감정에 갇혀 아이를 배려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지만!


"하루 온전히도 아니고 단 네 시간인데.. 엄마도 친구랑 좀 재미나게 놀자! 넌 매일 어린이집, 놀이터 가서 재미나게 놀도록 엄마가 기다려주잖아. 단 네 시간도 못 기다려주니? 너무한다."


이게 그때의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엄마도 좀 놀자. 일 년에 몇 번이나 된다고.


첫 단추부터 잘못 꾀어버린, 내 속을 뒤집는 이 데려가겠다는 약속은 그날 오전까지 수차례 확인을 받아야만 맘이 편했다. 가서 아이가 떼라도 써서 분위기를 망치면 정말 화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번 더 아빠랑 놀길 권유하며 잘 기다리고 있으면 장난감을 사서 오겠다는 내 회유책에도 가고 싶다는 뜻을 관철시킨 그녀였다. 물론 한번 흔들려서 장난감 사준다니 바로 안 가겠다고 하긴 했다. 하루 내내 신경 쓰이던 일이 장난감 하나로 해결되자 뭔가 허무하면서 허탈해서 그것도 기분이 좀 별로였는데, 결국은 또 장난감 안 받아도 되니까 가겠단다. 그래서 또 잘 있겠단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목적지로 향했다. 유모차를 끌고 큰아이, 작은 아이 둘 다 데리고 말이다. 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반가웠고, 늘 만나도 예전 그대로였다.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해 주고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겪어준 그들에게 늘 위안을 받는다. 아이에게 모진 협박과 회유로 아이도 힘들었겠지만 나 역시 이미 지쳤다. 그래도 친구들을 보니 또 즐거워졌다. 친구들은 나의 어린 딸도 반가워하며 맞아주어 지친 내 맘이 한결 편해졌다. 그들에게 슬쩍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엄마에게 욕먹으며 온 딸을 반겨달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내 못된 심보인지 진짜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 집 근처에 가기로 한 가게는 분명 검색했을 때는 10시부터 오픈이라고 했는데, 가보니 11시 20분이나 되어야 밥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또 그걸 꼭 먹어야겠다며 커피숍에 가서 두런두런 이야길 나누며 꾸역꾸역 기다렸다. 그렇게 아침 못 먹은 친구는 배고픔에 허덕거릴 때쯤 다시 식당을 찾았다. 메뉴는 복어불고기. 한 친구가 10년을 다닌 집이라고 했다. 난 우리 집 앞이지만 몇 년 전에 그 친구와 함께 가본 이후론 간 적이 없던 곳이었다. 기대하며 나오는 복요리 코스들을 보며 사진도 찍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주입식 교육을 한 덕인지 우리 딸은 그래도 보채지 않고 잘 있어주었다. 그렇게 서서히 감정을 회복하고 있는데 한 친구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윽. 이거 뭐야?"


그녀의 앞접시에서 나온 그건... 벌레였다. 그것도 엄청 큰! 출처를 알 수 없는!

공벌레처럼 생긴 그놈은 크고 동그랗고 다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놈은 반토막 나 복어찜의 콩나물 사이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즉시 사람을 불렀고, 그 집 아들로 보이는 주인 분도 참 놀랐다. 그분은 연신 죄송하단 인사를 하며, 밥값도 받지 않고 다시 해주시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벌레를 본 순간 놓아버린 우리의 젓가락들을 다시 들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눈빛 교환 후 우리는 괜찮다며 말하고 가게를 나왔다. 고픈 배를 부여잡고 우린 정처 없이 향했다. 이젠 맛있는 걸 챙겨 먹을 시간이 아니고, 어쨌거나 배를 채워넣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냥 너희 집 가서 시켜먹자."


우리 집이 바로 코앞이었고, 근처에 걸어서 갈만한 맛집도 없었기에 그냥 우리 집에 가기로 했다.

그렇게 떼놓고 가려고 애썼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우리 딸들과 우리 부부가 사는 우리의 홈으로 다시 돌아왔다.

집에 와서 가장 빨리 도착하는 패스트푸드를 시켰고, 매콤한 떡볶이도 시켰으며, 디저트까지 시켜먹었다. 맛있는 걸 먹길 기대한 기대감은 채우지 못했지만, 친구들과 맘 편하게 수다 떨고 잘 놀았다.


이모들이 하나 둘 떠나고 마지막 남은 이모와 도미노 놀이까지 하며 잘 노는 딸아이를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둘째는 아빠에게 맡겨두고 큰 딸아이와 함께 저녁이 되기 전 떠나는 친구 한 명을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해주고 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어린 딸아이를 구박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 신께서 친히 행차하여 복어찜에 벌레를 넣어둔 건 아니었을까? 그만 좀 구박하라며.


어찌 됐건 내 손을 맞잡은 아이의 작은 손을 보며 한없이 미안하고, 이기적이었던 자신을 반성했다.

그리고 이모들을 너무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게 소중한 내 친구들. 평생을 함께 할 친구들이다. 그러면 우리 딸도 아마 평생을 보게 될 이모들이겠지? 나의 역사와도 같은 내 친구들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딸을 보며, 우리 딸이 언제 커서 이렇게 엄마 삶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게 됐는지. 기특하고 감격스러웠다.


그래. 평생을 볼 사이인 이모와 너 사이에 엄마가 중간 다리 역할을 잘할게.

네가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자.

어차피 사춘기를 겪으면 따라오라 해도 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지금 네가 눈을 빛내고 엄마의 모든 것을 궁금해하는 것에 감사하고, 감격스러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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