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카 준비 - 내 인생의 스승

이혼 가정에서 자란 내가 이혼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법.

by 꽃구름

내 인생의 큰 스승은 내 아이다.

"스승"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 이란 뜻이다. 내 아이들은, 특히 첫 아이는 언제나 날 가르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인도한다.


우리 첫째 아이는 치약이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꽤 오래 쓴 저불소 치약인데 용량도 적고 가격이 사악하고, 하나는 우리 아이 나이인 6세부터 쓰는 슈퍼에서 산 비교적 저렴이인 치약이다.


늘 쓰던 치약보다 사기도 쉽고, 싸고, 6세 언니가 되었으니 도전해볼 만하다 싶어 직접 슈퍼에 함께 가서 고른 치약이었다. 근데 써보더니 맵단다. 처음 썼을 때부터 매워 매워하며 맘에 안 들어했다. 사실 전에 이런 꼴이 난 치약이 2-3개가 있었다. 먹자마자 맛이 이상하다며 싫고, 맵다 하며 싫고. 그래서 어린이집 친구들과 같이 쓰라고 보낸 게 벌써 두세 개였다.


예전 같았으면 맛 하나도 안 이상한데 무슨 소리냐며 면박이라도 주었겠지만 이번엔 그대로 화장실에 널부러 놓고 그냥 두었다. 눈에 보이고 익숙해지면 좀 낫겠지 싶어 몇 달을 방치했다. 늘 가는 화장실에 버젓이 있는데도 우리 아이는 저 맛없는 치약을 도전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대로 또 치약을 버릴 수 없겠다 싶어 할 때마다 이거 할래? 저거 할래? 물어보기를 또 몇 주.

그러다가 이번에 충치 치료를 엄청 받고는 조금 맵더라도 연령에 맞는 치약을 쓰자며 내가 권해서 자기 전 밤에는 그 치약을 쓰기로 했다.


할 때마다 맵다며 엄살을 부리는 아이. 물론 뭐 아이 입장에선 엄살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러고 나서 아이는 요즘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바로 자기 전 치카를 할 때 가짜 양치 준비를 먼저 하고 진짜 치카를 하는 것이다. 양치 준비라는 건 설명하자면 시뮬레이션 같은 거다. 세면대 앞에 서서 등을 돌리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칫솔을 손에 쥐듯 하곤 양치하는 척을 한다. 양치할 때처럼 손이 아래위로 몇 번 일렁이고 나면 비장한 각오를 마치고 돌아본다.

"시뮬레이션 끝났으니 이제 드루와!"

이런 표정으로 말이다.

그러면 맵긴 하지만 한결 나은가 보다.


우리 아이는 어려서부터 새로운 환경, 낯선 것들에 관찰이 긴 아이였다.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기질의 아이다. 예전에는 덥석덥석 장난감 가지고 잘도 노는 옆의 아이를 보며, 놀이터에서 모르는 누군가 와도 씩씩하게 제 하고 싶은 걸 척척 해내는 다른 아이를 보면 내 아이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이는 새로운 장난감이, 처음 가보는 키즈카페가 너무 재밌어 보이지만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놀이터 계단을 올라가다 모르는 아이가 따라오면 잽싸게 비켜버린다. 낯선 아이를 피해버리는 거다. 6살인 지금도 여전히 그런 경우가 다른 아이보다 많은 편이다.


예전엔 정말 그게 답답해서 면박도 주고, 혼내도 보고, 계속 눈으로 좇으며 신경을 썼다. 물론 6살인 지금도 아예 그런 날이 없다고는 할 순 없지만, 지금은 아이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려 노력한다. 자신도 하고 싶지만 못해서 정말 답답할 텐데 엄마까지 등을 떠밀면 위태위태한 줄타기를 억지로 하게 되는 것 같은 심정이 될 것 같아서. 그래서 그저 너는 적응에 시간이 필요한 아이야라고 생각하며 초연하려 노력한다.


그래서 양치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 너는 지금 낯설고 맵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을 마주하기 전 네 나름의 마음의 대비를 하고 있구나. 말랑하기만 한 마음의 굳은 살을 만들고 있는 거구나.'


자신만의 방법을 스스로 찾아냈다는 게 참 기특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어리다고 생각했던 아이에게서 어른들의 모습도 발견한다.

중요한 무언가를 준비하거나, 두려워질 때, 긴장될 때, 무언가를 이겨내고 도약해야 할 때 우리는 마음의 대비라는 걸 한다. 그걸 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어려움에 맞설 용기를 주니까. 힘든 걸 맞닥뜨렸을 때 고통을 경감시켜주니까.


매운 치약에 대비할 뿐인 가녀린 어깨지만 아이는 나에게 더 큰 가르침을 준다.

[ 마음의 준비. 시뮬레이션.]

힘든 고난이 있을 때 마음의 대비를 하자.

현명한 내 아이 준 가르침처럼.

낯설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 내 마음을 잘 단련시키자.


아이가 크면 말해주고 싶다.

어떤 힘든 일이 있을 때 나도 너처럼 마음의 시뮬레이션을 하겠노라고. 네 덕분에 난 또 한 뼘 성장했노라고 말이다.



대비하다.

두렵고 걱정되는 맘을 회피하기보다 미리 예상하고 대비해본다.

내 작은 어깨의 스승.

난 너에게 생존을 가르치고, 넌 나에게 삶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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