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우선순위

이혼 가정에서 자란 내가 이혼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법.

by 꽃구름

"내 우선순위는 늘 마누라. 당신인데?"


지금 6살인 아이가 3살인가 4살 때쯤 한 남편의 말에 나는 기가 찬 듯 콧방귀를 뀌었다.


"아이고. 어련하시겠어?"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이런 투로 이야기하니 진짠데! 하며 억울해하던 남편의 얼굴이 기억이 난다.


첫아이 3,4 살 때 이틀에 한번 꼴로 밤에 울어대고, 천성이 예민한 데다 엄마인 나의 성향과는 좀 안 맞는 부분이 있어 그랬는지 한번 꽂히면 심하게 떼를 쓰곤 했다. 그 무렵 나는 아이 때문에 육아와 일상에 지쳐있었다. 그러다 보니 남편과 다툼도 많았고, 진지하게 이혼해서 한 부모 가정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던 그 시기에 자기 우선순위는 뭐야?라는 내 질문에 돌아온 저 대답은 나에겐 그리 믿기는 답은 아녔다. 또 싸우기 싫고 내 기분 맞춰주려는 입바른 소리일 뿐이라고 믿는 건 지극히 당연히 일이었다.


그렇게 미운 네 살의 육아의 암흑기가 지나고, 서서히 먹구름이 걷어지면서 나는 문득 남편의 그 대답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남편을 잘 관찰하다 보니 그 대답이 진심일 수도 있겠구나. 에서 지금은 아 그 대답이 진짜였구나!로 바뀌어버렸다.


이건 내 결혼 생활, 아니 부부 생활에 있어 꽤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사실 처음 질문했을 때 나는 우선순위는 당연히 아이들이지. 이런 답을 정해놓고, 이른바 답.정.아이들. 을 정해놓곤 물어본 거였다. 왜냐하면 나는 그랬으니까. 아이가 아프면 밤잠을 설치고 보초를 서야 했고, 아이가 떼를 쓰면 육아 정보 프로그램이나 육아서를 뒤지며 한없이 자책감에 빠지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게 내 거의 모든 생활을 차지했으므로. 아이가 크는 것, 인성, 자존감, 건강 같은 아주 작은 것들부터 큰 것들까지 내내 고민해야 할 것들 뿐이었으므로 나는 당연히 아이가 내 관심사 1순위였다.


우리 남편은 나보다 더 심한 걱정 로봇이라 아이가 조금만 다치고 이상 행동을 해도 걱정의 바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타입이라 나는 남편도 당연히 그렇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함께 나이 먹을수록 자세히 관찰해보니 그게 진심이란 걸 깨닫기 시작했다.


남편은 주말이면 어디를 갈지 늘 내 눈치를 보고 있었고,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곳도 많이 가지만 늘 처음 묻는 건 그거다.


"자기 어디 가고 싶어?"


하지만 난 오히려 주말에 멀리 가면 남편이 피곤해할까 봐 배려하다가 가까운데 아무 데나 이야길 하곤 했다. 그러면 난 또 그게 쌓인다. 내가 원하는 데 언제 한 번이라도 갔어? 그 말에 황당해하던 내 남편은 억울한 거였다. 분명 내가 가자는 데로 갔는데 내가 원하는 데는 한 번도 간 적 없다고 불평하니 황당할 수밖에.


사실 내 기억은 왜곡돼서 중간에 행선지를 바꾼 건 거의 대부분 나였으면서 기억하기론 내가 원하는데 한 군데도 못 가봤어. 이렇게 기억이 된 거였다. 그러면서 불만이 쌓이고 오해가 쌓여 싸우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싸울 때는 정말 말이 너무 안 통하는 이 남편이라는 종자! 라면서 속을 끓였는데, 서로 기억하는 게 달랐던 거였다. 남편은 내 말을 너무 곧이곧대로 잘 들었고, 나는 그 미묘한 감정 변화까지 캐치해주길 바랐던 거였다. 그래서 그걸 깨달은 요즘은 확실하고, 간결하게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말한다. 쭈뼛대지 않고, 빙 돌리지 않고 말이다. 그러면 또 성실하게 잘 들어주는 게 내 남편이다.


그런 것 외에도 경상도 남자라 무뚝뚝해 살가운 말투는 아니지만 늘 내 기분이 어떤지, 먹고 싶은 게 뭔지 늘 물어봐주고 들어주려 노력한다. 한마디로 나를 엄청 신경 쓰는 거였다. 아이들의 안위보다 내 안위가 더 걱정인 사람이었다. 왜 난 그걸 늦게 깨달았을까?


처음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 까진 참 지독히도 많이 싸웠던 것 같다. 서로 맞춰가느라 그랬다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는 그 아픈 대화들을 다시 하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첫 아이 태어나고는 한 1년은 평화롭다가 아까 말한 육아의 암흑기 때 우린 또다시 전쟁을 치렀다. 그때는 전보다 더 심하게 더 강하게 싸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서로가 처음으로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고, 사위, 며느리가 되면서 그런 혼란스러움과 어려움들이 폭발하듯 부딪혔다. 서로 네가 덜했니, 내가 더했니 하면서 싸우니 부부싸움은 끝도 없이 지속되었다.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저 동거인으로 불편한 상황만을 모면하며 살았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할 남편이란 존재와 이렇게 사는 게 과연 맞는 것일까? 좀 더 행복하게 살 수는 없는 걸까?


몇 년 전, 심하게 싸우고 이혼 이야기가 오갈 정도로 서로의 감정이 상했을 때, 나는 용기 내 그에게 화해를 요청했다. 모진 말을 듣고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지만 다른 이유는 없었다.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남편이나 나나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그런 가정에서 자라면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며 크게 되는지 말이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늘 주눅 들어 살아야 했고, 가족 이야기라도 나오면 우리 부모가 이혼했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고민하고 주저하게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우리가 모를 리 없었다. 이 세상에 사연 없는 가정은 없다지만 그래도 친구 중에 꼭 있는 화목한 가정을 볼 때마다 부러움과 시기심, 열등감 같은 내 안의 내면과 싸워야 하는 삶. 이혼가정에서 자란 나는 부모의 선택에 희생된 희생양이지만, 그런 피해의식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감정을 느끼며 성장해야 한다는 것. 그런 인생을 되물려 주고 싶지 않았다.


당시 내 아이는 내 1순위, 무엇보다 앞서는 우선순위였으므로 아이들 때문에 그랬다.


하지만 그렇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면서 나는 생각했다. 왜 예쁜 아이들만을 위해 살아야 할까? 아이들은 이제 학교에 가고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면서 점차 자기 삶을 찾아갈 텐데 내 삶을 같이 헤쳐나가야 하는 남편과 소원하다가 그때 돼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며 나는 차츰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남편이 얼마나 나를 신경 쓰고, 내 눈치를 보고 있고, 나를 아껴주고 있는지 말이다. 남편은 화목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본능적으로? 아내와 잘 지내야 한다는 걸 알았던 듯싶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남편은 결격사유란 게 없다.

술 담배도 안 하고, 성실하고, 책임감 강하고 가정적이다.

이런 그의 장점을 발견하며 우리 사이는 급속도로 좋아지기 시작했고, 둘째를 낳은 지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 행복을 겪으면서 느낀다. 내가 얼마나 이런 행복을 바라왔는지 말이다.


부부란, 참 어려운 사이이면서 동시에 행복을 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이렇게 사이가 좋다가도 또 전쟁을 치러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난 다짐할 것이다.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로, 서로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고민할 것! 서로가 서로를 늘 최우선 순위에 두고 고민할 것!

부부가 행복할 방법은 우선순위에 있는 것이다.





부부


너는 그 말을 하고,

나는 이 말을 한다.


아 안 맞아 안 맞아.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너는 이 말을 해서,

나는 저 말을 해서,

이어지지 않는다. 말이 섞이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너와 내가

감정을 할퀴며 다가가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불행하다.


너와 난 어떤 행복을 찾아야 할까?


함께 아이들을 업고 간다.

너 하나, 나 하나 나눠 업고 간다.

풍요로운 새싹의 잔디를 지나,

더운 땡볕의 벌판을 지나,

쓸쓸한 가을 억새밭을 지나,

발이 푹푹 빠지는 눈을 헤치며,

그렇게 우린 함께 걸어간다.


네가 지칠까 봐, 네가 쓰러질까 봐

나는 신경을 쓴다.

힘들진 않을까

걱정을 한다.


무거운 어깨를, 굽은 등을,

부르튼 발을 함께 매만지며 걸어가자.

너와 나

정상에 도달하면 그때 미소 짓자.

서로 얼싸안아주자. 고생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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