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면 의외로 내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시간이 많아진다. 첫 아이를 키우는 건 너무나 막막하고 어렵기만 해서 낭떠러지에 선 심정으로 내 경험을 많이 들추어 보게 된다.
나는 어릴 때 어땠었더라? 우리 엄마가 어떻게 했더라?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억울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슬프고 아픈 기억까지 떠올리곤 한다. 그중에는 성인이 된 뒤에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던 기억도 있지만 내 무의식의 세계 저 끝자락에 남의 얘기처럼 방치되었던 기억들도 있다. 하지만 무의식의 세계에서 유물 발굴하듯 그 기억을 찾아내고 나면, 그건 기억하고 있던 기억보다 훨씬 큰 울림으로 내게 다가온다.
나를 가장 당황스럽게 한 기억은 내 중학교 시절의 기억이었다.
엄마, 아빠는 맞벌이였고,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사이가 쭉 좋지 않으셨다. 좁은 아파트에 밀착되어 살지만 서로가 서로를 불편해하는 관계, 정서적으로는 전혀 밀착되기 힘든 사이셨다. 어려운 형편에 주말여행은커녕 엄마, 아빠가 한 공간에 있으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눈치가 보였기에 단란하게 식사하는 장면도 잘 연출되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 6살 차이 나는 언니는 20살 성인이 되어 자신이 하고 싶은 애니메이션 채색 일을 위해 서울로 방을 얻어 올라가게 되었다. 그래도 집에서 그나마 나와 제일 많이 소통하던 언니마저 없어지게 되자 나는 하교 후 텅 빈 집안에서 홀로 집에 누워있었던 생각이 났다. 한동안 꽤 오래 잊고 있었던 무수한 혼자만의 시간. 왜 잊고 있었던 걸까?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참 외로웠고, 쓸쓸했다. 내 나이 고작 14-15살 정도였다.
그때의 난 너무 어려서 내가 외로워하는지도 몰랐었던 것 같다. 뭐가 필요한지, 왜 외로운지도 모르는 어린아이였다.
나는 그 시절의 작디작은 내방을 떠올리자 마치 적들을 피해 만든 요새 같은 느낌이 났다. 상처 받고 싶지 않아 만든 쓸쓸한 요새.
중학교 때도 친한 친구들은 몇 있었다. 방과 후나 점심시간에 오자미나 농구 같은 걸 하며 친구들과 뛰어놀았고, 털털하고 배려하는 성격 덕분에 두루두루 친구들은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친구들 속에 있어도 외로웠다. 왜냐 곰곰이 생각해보면 또 친구에 대한 생각으로 가지를 뻗는다.친구관계에서도 내 외로움을 나눌 정도로 만족하지 못해서가 그 이유인 것 같다.
그때 또렷이 기억나는 건 내가 좋아하는 친구는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내가 별로 안 친해지고 싶은 친구들은 나를 좋아했다.
나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내가 좋아했던 친구는 재미있고 털털해서 늘 가까이하고 싶은 친구였는데, 이상하게 그 친구는 나에게 일정한 벽을 치곤 했다. 친하게 잘 지내다가도 침범하려 하면 벽을 쌓고 들어가려 하며 막아버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와 너무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자꾸 경계를 두는 모습에 어느 날은 집에 들어와 가방을 벗지도 못한 채 내 방에서 통곡하며 울었던 기억도 있다.
그 친구와는 성인이 되고, 서로 엄마가 된 뒤에도 만났는데, 어쩜 중학교 때와 같은 패턴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뭔가 경계를 두는 듯한 느낌. 그래서 지금은 연락은 잘 하지 않고 지낸다. 그 친구도 자기가 편한 친한 친구들이 있고, 나도 나를 너무 이해해주는 다른 친구들을 만났기에 이젠 그저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랄 뿐 그 이상은 원하지 않게 되었다.
그에 반해 내가 별로 안 친해지고 싶은 친구는 날 그렇게 불러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자기표현이 솔직하고, 확실한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가 감정 표현에 서툴고, 다른 사람에게 좋게 보였으면 하고 바랄 뿐 자기 의견이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리고, 불행한 부모 밑에서 감정표현을 배우지 못했고, 터질 듯한 안 좋은 감정들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꾸역꾸역 담아만 둘 뿐이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더 그래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를 좋아한 그 친구는 자기감정이 우선이었고, 감정 표현도 확실했으며, 당당했다. 지금의 나는 그게 대단하고 부럽지만 그때의 난 그게 두렵고 싫었나 보다. 마치 금기시되는 일을 하는 것처럼 그 친구가 그럴 때면 조마조마했고, 두근두근 했으니까. 그래서 뼛속까지 내 마음을 보일 수 없었고 이해할 수 없다고 느껴 그랬던 것 같다.
이 친구관계의 괴리감이 밖에서의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지 못했고, 나의 작은 방안에 가끔 틀어박혀 있게 만들었다.
누구 하나 내 이야길 들어주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더 애틋한 이유는 그 방 안에서 참 많이도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 가지 공상들을 무수히 많이 했다. 순정만화에 빠져 살던 난 여자 주인공이 되어 사랑도 하고, 가슴 설레어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공상의 시간들이 지금의 내게 '이야기'를 주는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시절 나는 '죽음'에 대해 참 많이 생각하고 공포스러워하고 그랬었던 기억이 난다. 딱히 아픈데도 없던 내가 왜 죽음에 대해 그렇게 고민했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때만큼 죽음에 대해 절실하게 심오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존재가 소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지만 내 손을 잡아주며 "그건 자연스러운 과정이야 두려워하지 마." 하고 상세히 설명해줄 어른이 없었고, 나는 그걸 오롯이 내 공상으로 상상으로 스스로 헤쳐냈다. 작지만 강한 아이로 성장하게 해 주었다.
그때 그 외로움이 지금의 내 삶에 든든한 자산이 될 줄 그 나이의 나는 상상이나 했을까?
고등학교 때는 좀 더 나이가 먹어서인지, 싸우고, 대립하고 표현하며 전투적으로 친구를 사귀었고, 평생을 같이할 친구들을 만났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반짝반짝 빛나는 건 다 친구들 덕이 아닌가 늘 감사하며 살아간다.
지금의 나는 그 공상의 시간들이 감사하고,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싶지만 그래도 중학생인 나에겐 그건 지독한 외로움의 값이었다.
그래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나 자신을 위로할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외로워하지 말라고. 20년 후엔 내 눈치 보는 남편과 날 닮은 예쁜 아이들이 엄마엄마 찾으며 외로울 틈을 주지 않는다며.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고.
처음 그 말을 스스로에게 했을 때 나는 눈물이 났다. 아니, 지금도 사실 눈물이 난다.
그 말을 할 때면 내 작은 방안에 교복 입은 어리고 앳된 얼굴의 내가 눈을 맞춰 보는 것 같다. 그래. 다시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