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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Aug 31. 2022

엄마도 행복해지기 프로젝트- 반신욕 편

엄마도 좋아하는 것 하자. 쫌!


그날 저녁 나는 또 목욕 전쟁을 시작했다. 시간이 9시가 다 되어 가는데 아이들은 목욕을 미루고 또 미루기 시작했다. 기다려야 하고 윽박질러야 하고 나의 귀한 시간들이 증발하는 걸 무력하게 목도하고 있자 뿔이 났다. 악마처럼 뿔이. 오늘은 화내는 악마가 아닌 방임의 악마다. 나는 나 혼자 씻고 너희는 알아서 씻으라며 나 몰라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또 아이들은 엄마가 거부해서 인지 혼자 씻는 게 너무 막연해서인지 생떼를 쓰기 시작했고 나는 바짝 약이 올랐지만 모른척했다. 결국 아이들은 땀 뻘뻘 나는 여름날 저녁에 그 땀의 짠내를 싹 씻어버리지 못하고 옷만 갈아입은 채 잠들어야 했다.

나는 고민을 했다. 왜 아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씻기는 게 힘들까. 첫째는 벌써 8살이고 둘째도 씻으러 가는 게 쉽지 않은 아이다. 결국 들어가면 잘 노는데 그 들어가기까지 시간 끌기, 핑계대기 그 모든 걸 겪고 나면 결국 마무리는 윽박으로 끝나고야 마는 것이다.

신혼집에 깔끔하게 하느라 욕조를 없앤 게 문제였나? 아니면 내가 윽박지르며 한 목욕이 문제였나?

결국 그 둘다라는 게 결론이었다. 씻는 게 행복하지 않고 늘 윽박지르며 끝났으니 싫을 수밖에. 어른이야 내려오는 물줄기를 맞으며 개운함이라도 느낀다지만 서서 하는, 자기가 온전히 하는 것도 아닌 샤워는 다리만 아프고 힘이 들겠지.

욕조를 또 사야 하나? 앞에 실패한 대형 욕조가 벌써 두 개였다. 처음 대형 욕조는 접이식이었는데 크고 무거운데 좁은 데서 접고 펴는 게 일이었고 차츰 접힌 부위에 물때가 생기기 시작하고 실리콘 비슷한 재질이라 잘 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버리고, 두 번째 핑크 욕조는 바나나처럼 생긴 긴 욕조였는데 세워놓기에 너무 길고 커서 결국 베란다에 방치되어 있다.

나는 쇼핑 사이트에서 ‘욕조’라고 검색을 해보았다. 주르르륵 욕조들 리스트가 나왔고 내가 요새 육아용품을 많이 사지 않아 알고리즘이 어른 물건으로 더 맞춰진 덕인지 어른 욕조가 먼저 나왔다. 나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나도 반신욕이나 할까?

순간 스친 생각이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뜨끈하게 몸 지질 때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이 먹어서야 뜨끈한 탕 목욕이 주는 개운함을 알게 되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마저도 못 간 지 오래였다. 나는 갑자기 성인이 들어갈 수 있는 욕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음. 이건 너무 크고, 이건 접이식이라 싫고, 흐물흐물 튜브처럼 생긴 것도 있었는데 이것도 역시 물때가 많이 낀 경험이 있었다. 욕조만 몇 개를 산 건지. 내 무의식에서 떠나갔던 욕조들도 기억나자 그동안 실패의 경험들이 모여 내 선택에는 아주 큰 효율성을 제공해주었다. 나는 줄자를 가져와 욕실의 가능 크기를 재보았다. 마침 색깔이나 깊이가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 있었다. 등받이에 기댄 모델이 아주 편안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자 내 손가락은 어느새 결제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드디어 이틀 뒤, 우리 아이들 둘이 들어가 숨으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크고 깊은 회색빛 욕조가 현관문 앞에 와 있었다. 플라스틱이고 비싸지 않은 거라 그런지 부피는 컸지만 무겁진 않았다. 나는 욕실에 그걸 가져다 놓고 한번 먼지를 비누로 싹 씻어냈다, 만족스러웠다. 목욕 시간이 기대되기까지 했다.

저녁 7시 반. 저녁을 먹고 정리를 한 후 나는 물을 받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물소리가 시원하게 욕실에 울렸다. 평소에 물 받는 소리를 들으면 조바심이 먼저 난다. 아이들 씻기고 닦이고 재우고 시간 계산을 하며 벌써부터 피곤해진다. 또 자매인 데다 남편 몸이 안 좋아지면서 목욕은 온전히 내 몫이 된 지 오래. 육아의 꽃은 목욕이라고 할 만큼 둘을 다 씻기고 나면 내 하루 기력을 다 소진하고야 만다.

하지만 그 물소리는 다르다. 나를 위한 물소리다. 아 이 얼마나 시원하고 아름다운 소리인가.

내가 들어가 있으면 분명 아이들이 들어와 방해하겠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가질 수 있는 반신욕의 자유의 시간을 만끽할 기대감에 들떴다. 물이 종아리만큼 까지 밖에 안 찼는데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저녁을 먹은 뒤 아이들이 아빠와 이야기하고 있는 시간에 옷을 훌렁 벗어던지고 욕조로 들어갔다.

뜨끈한 온수가 내 하체를 감싸며 말했다. 어서 와! 힐링해!

나는 욕조의 높은 등받이에 몸을 한껏 기대었다. 아 좋아라.

매일 저녁은 아이들 위주의 시간이었다. 내가 개운하게 씻은 뒤라도 아이들을 씻기고 나면 또 땀이 흥건히 흘러있다. 샤워로 개운함을 가져야 하는데 마르지 않은 머리에 땀을 흘려 오히려 찝찝함만이 남는 그런 소모적인 샤워에 진절머리가 났는데 이건 천국이었다. 뭐 물론 그 천국이 오래가진 못했지만.

내가 반신욕을 즐기고 몇 분 지나지 않아 그렇게 목욕을 미루는 첫째가 옷을 다 벗고 생닭같이 말간 피부를 뽐내며 들어와 배시시 웃으며 나도 할래. 한다.

나는 한번은 좀 있다가 와. 엄마 혼자 하게. 하며 보냈지만 두 번째는 거절하지 못했다. 아이와 내가 둘이 들어가 있으니 좁아터지는 욕조. 아이는 날씬하긴 해도 8살이고, 나는 몸집이 있으니 비좁다 못해 몸이 겹쳐지는 상태. 거기다 게임까지 하잔다. 나는 기분 맞춰주려 몇 번 하고는 나와버렸고 그날은 나의 계략대로 아이들 모두 일찍 씻었다.

그날부터 저녁 시간 3일 연속으로 반신욕을 했다. 10분 15분 짧은 시간이라도 좋았다. 아이들이 잠든 후에야 가졌던 자유였는데 잠시나마 자유를 느낄 수 있으니까. 아니, 뭐 시간의 짧고 길고를 떠나 나는 나의 반신욕을 위해 욕조에 물을 채우고 있다는 게 소중했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내 스스로 만드는 기쁨에 생각했다.

그래. 이제 엄마도 먼저 좀 행복해지자. 엄마가 행복해야 너희도 행복하게 키우지.

나는 이제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것 말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걸 하나씩 하기로 다짐했다.


+ 덧붙이는 말.

1. 일과가 끝나지 않은 채로 하는 반신욕은 몸을 나른하게 해서 이후의 시간이 좀 힘들다는 걸 각오해야 함. 몽롱하게 육아하기.

2. 엄마가 '먼저'행복하자라고 해서 아이의 행복을 제쳐두지는 말자. 며칠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만 생각하다 보니 아이에게 화를 내도, 짜증을 내도 이건 내가 행복하기 위함이야 라고 구실을 만드는 나를 발견. 이제 깨달은 이상 그걸 가장 경계해야겠다. 나만 행복한 걸 원하는 게 아니라 나도 행복하고 가족도 행복한 것이 내 궁극적 목적이니까. 가끔은 이기적이어도 좋지만 계속 이기적인 마음은 곤란하니까.


엄마 먼저 행복해지기 프로젝트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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