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이글거리던 땅, 스페인
A said :
7.17 Alcossebre PM 21:36
크게 숙취는 없었지만 아침에 즐겨해 오던 침대에서의 뭉그적뭉그적 꿀렁임을 반복하고 있던 찰나, 방문 밖에서 부산한 움직임이 들려온다. 슬쩍 일어나 살펴보니 Marc는 벌써 그의 강렬한 열정을 대변하는 듯한 붉디붉은 사이클 저지를 입고 복도를 왔다 갔다 분주하다. 상하의가 일체 된 그의 저지는 마치 세계 대회를 준비하는 사이클 선수의 느낌이다. 주방에 간단히 아침이 있다고 알려 주며 채근하는 목소리는 ‘얼른 먹고 출발할 준비를 해라 이 게으름뱅이들아’라고 말하고 싶은 듯 무언의 압박이 느껴진다.
자전거를 끌고 건물 밖으로 나서면서 첫 숨에 들이켜지는 공기의 느낌이 심상치 않다. 어째 이 더위는 도무지 적응이 되는 법이 없다. 건식 사우나에 들어온 듯한 입 속의 말라 비틀어진 공기가 영 껄끄럽다. 무더운 날씨 덕에 출발부터 발이 천근만근이 지만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웃음이 터진다. 전날의 조용한 Joan과의 동행 중에는 가끔 절경이 나올 때 나오던 감탄사나 옅은 미소뿐이었지만 오늘 Marc는 조금 다르다. 푸근한 몸과 비례해 여유롭게 달려 따라가기 좋고(전날 Joan을 따라가느라 꽤나 용썼다..) 내내 길이나 옆에 보이는 장소들을 수다스럽게 설명해주는 모습이 훨씬 나이 많은 형이지만 어울릴지 모를 귀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지막 헤어지는 로터리에서까지 지도를 펼치고 갈 길을 일러주는 Marc 덕에 복잡한 길을 헤매지 않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간다.
Marc와 헤어지고 마주치는 길은 줄곧 직선이다. 직선이라 헤맬 필요도 없이 앞에 보이는 길을 따라 지긋이 페달을 밟을 뿐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강풍이 불어온다. 후덥지근한 날에 난데없이 불어 닥치는 바람 때문에 자전거가 잘 나아가지 못한다. 재난 영화에서나 볼 법한 바람 때문에 아무리 힘을 써도 앞으로 가지 못하는 자전거가 원망스럽다. 길옆으로 계속 보이는 표지판에서 보이는 거리가 도통 줄어들지를 않는다. T형도 비슷했는지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휴게소에 자전거를 세운다. 간단히 점심을 먹으면서 지도를 보아하니 오늘은 영 힘들겠다 싶다. 내일 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던가 오만 가지 핑계들을 스스로에게 되묻기를 반복하던 끝에 근처에 묵을 곳을 찾아본다. 다행히 얼마 안가 해변가에 작은 마을이 있어 그리 가기로 정한다. 한동안 끝이 보이지 않는 차도를 따라만 가다 옆으로 새는 길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는지 내내 안장에 엉덩이를 두지 못한 채 신나게 춤추듯 페달을 굴린다.
내일 갈 길도 멀고 휴식을 취하는 김에 제대로 쉬어보겠다고 가까운 해변으로 해수욕을 간다. 해변까지 기분 좋게 내려가는 내리막에서 마주하는 바닷바람에 한껏 설렌다. 아담하고 예쁜 마을에 다다른 행락객들에 섞여 모래사장에 자리 잡고 앉는다. 한껏 달아오른 모래에 주저앉아 멍하니 바라보는 눈에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그 밑에 출렁이는 파란 바닷물, 온통 파란색이다. 바닷물에 몸도 담가보고 주전부리도 해보며 주변의 여유로움을 흉내 내어 본다. 글자 몇 자 읽어보려 했지만 뙤약볕 때문인지, 글자와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머릿속 때문인지 폼 잡아보기가 영 힘들다. 기나긴 여름 해는 저녁시간이 다 되어도 질 줄 모르고 그 아래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육신이 점점 참기 힘들 때쯤 모래사장에서 일어난다.
T said :
DAY 23
[업힐에 대한 고찰] 스페인 도로 CP-331
날씨는 찌고, 맞바람은 부는데,
저 멀리 길고 긴 업힐이 보인다.
드랍바를 잡고, 고개를 아래로 묻고,
아이고야 모르겠다 페달을 돌린다.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내가 업힐 위에 있다.
그리고 업힐은 이미 거의 끝나간다.
언덕이 제일 무서운 건 멀리서 보았을 때다.
물론 보기보다 사나운 언덕도 있지만
대부분의 언덕은 생각보다 오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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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힐을 오르는 두 가지 방법.
첫째 업힐 진입에 앞서 최고 속도를 내서
그 속도를 이용해서 단숨에 오른다.
짧은 언덕을 오를 때 적합한 방법으로
긴 언덕에서 사용하다가는 얼마 오르지 못하고 지쳐버린다.
둘째 업힐 진입에 앞서 기어를 최대한 높이고
천천히 느리고 편하게 오른다.
긴 언덕에 오를 때 적합한 방법으로
짧은 언덕에선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하기도 한다.
어떤 언덕인지에 따라 어떻게 올라야 하는 지도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