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엄마
가을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나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빛을 내려놓고, 공기마저도 한 겹 얇은 슬픔을 두르고 있는 계절. 나는 올해 유난히 이 계절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필요했다. 엄마가 떠난 해가 2018년 12월이었으니, 어느새 일곱 해가 지났다. 시간이라는 것이 이렇게 빠르게 도망칠 줄은 미처 정말 몰랐다. 그냥 하루하루 버티며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벌써 그렇게 됐구나” 하고 말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올해가 바로 그런 해였다. 나는 그동안 이 길을 일부러 피했다. 사진 속 메타세쿼이아 길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가을 풍경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한 번도 쉽게 걸을 수 없는 자리였다. 잎이 떨어지고 나무가 비워지는 그 순간들이 엄마를 떠올리게 했고, 나를 자꾸만 겨울로 데리고 갔기 때문이다. 그 겨울은 내가 살면서 가장 길고 차갑고 먹먹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이 길에서 멀어지는 것이 살아가는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피하며 살았는데, 올해는 이상하게도 아무리 피하려 해도 이 길이 내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떤 장소는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속에서 자꾸 부르고, 어떤 기억은 잊으려 해도 다시 떠오른다. 그래서 결국 나는 조용히 이곳으로 돌아왔다. 7년 만이었다. 길에 들어선 순간, 한동안 잊고 지냈던 감정들이 겹겹이 밀려왔다. 햇살은 다정했지만, 가슴은 묵직했고, 바람은 산뜻했지만, 마음은 오래된 먼지를 털어내는 듯했다. 그런데 그 모든 감정이 이상하리만큼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 그래도 오긴 해야 했지” 하고 오래 기다려주던 장소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나무 위로 내려앉은 금빛이 바닥을 덮고, 바람이 잎사귀를 흔들 때마다 작은 파도가 치듯 흔들렸다.
그 순간, 아주 오래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가을이면 나는 엄마와 함께 우리 도시에 있는 자그마한 공원에 가곤 했다. 엄마는 김밥 도시락을 싸셨는데 내 어렴풋한 기억에 사각 모양의 그릇이었다. 그 그릇에 김밥을 차곡차곡 쌓고 맨 위에는 김밥을 다 싸고 남은 계란지단이 몇 줄 있었던 기억이다. 공원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는 낙엽을 일부러 밟으며 장난치듯 뛰어다니면 엄마는 “조심해라, 넘어질라” 하면서도 결국은 내 뒤를 따라오시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아이처럼 나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며 낙엽을 밟아주던 날도 있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함께 낙엽을 밟으며 걸었던 그때의 엄마 손등 온기를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따뜻함은 그냥 손의 온기가 아니라 엄마, 그 자체의 살아 있는 체온이었다. 또 하나의 기억은 엄마가 마지막 가을을 병실에서 보내던 날이었다. 창문 너머로 은행잎이 흔들릴 때 엄마는 숨을 고르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막둥이 잘하고 살어.” 아무 맥락 없이 툭 던지셨던 말. 잘하고 살라는 이 짧은 말엔 너무나도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삶을 붙잡아주는 힘이 되었다.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오히려 당황스러웠고, 갑작스러워서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도리어 불끈하면서 던진 말,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어 엄마는. 괜찮아질 거야. 걱정하지 마.” 하지만 지금은 안다. 엄마의 마지막 응원이었다는 걸. 그리고 나는 그 응원을 꽤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품고 살았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의 밤도 떠오른다. 겨울의 찬 공기가 병실 바깥을 가득 채우던 날. 엄마의 병세가 점점 악화해 가고 있었다. 엄마의 정신력에 한계가 보이기 시작해서 조금이라도 온전하실 때 좋은 기억을 남겨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항암치료를 받기 1주일 전에 단 둘이 함께 갔던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병실에 갔다. 크게 인화된 사진을 엄마에게 보여주면서 “엄마 여기 기억나? 좋았었지?”라고 물으면 엄마는 “그럼, 기억나지. 바람도 많이 불고 바닷빛이 너무 예뻤어.”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어쩔 도리 없었지만 쓰디 쓴 신음은 꾹 눌러 참았다. 엄마의 손끝은 차가웠지만 손등만큼은 아직도 따뜻했다. 그 온기는 기적처럼 오래 남아 있다. 사람의 온기는 삶이 남긴 마지막 흔적이라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그 이후로 겨울이 올 때마다 손끝이 시렸다. 그리고 그 시림은 일곱 해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 길을 다시 걸으며 나는 비로소 그 시림에 조금 숨을 넣을 수 있었다. 시간은 상처를 지워주지 않지만, 상처를 끌고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나는 그 법을 지난 7년 동안 배워왔다. 완벽하게 극복한 건 아니지만, 무너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고, 흔들릴 때마다 가만히 숨을 고르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지금 이 길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엄마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조용한 내면의 언어로. “엄마, 나 이렇게 살고 있어. 잘하고 살라고 말해준 그 말 덕분에 그래도 여기까지 왔어.”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면서 소리를 냈다. 대답 같기도 하고, 위로 같기도 한 그런 소리. 나는 그 소리에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길의 끝에 다다랐을 때, 나는 뒤돌아보았다. 금빛으로 가득한 풍경 속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겹쳐 보였다. 잃어버린 것, 지켜온 것,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한꺼번에 담긴 듯했다. 엄마를 그리는 마음은 여전히 나를 따라오지만, 이제는 그 감정이 무너뜨리기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더 조용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엄마가 보고 싶다. 미칠 듯이 보고 싶다. 얼굴 한번 다시 매만지고 싶다. 그리고 따뜻했던 손등의 체온을 다시 느끼고 싶다. 그리움은 어쩌면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은 내게 작은 용기를 주었다. 아주 조용하지만, 확실한 용기 말이다.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것도 내 삶의 일부라는 걸 인정하게 만드는 힘. 그리고 이제는 안다. 나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낼 것이다. 흔들리더라도, 가끔 멈춰 서더라도, 다시 걸음을 내디딜 것이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내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그렇게.
그리고 올해 가을, 이 모든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곧 엄마의 기일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일곱 해가 지났지만, 그달만 되면 마음이 다시 가라앉고, 조금은 익숙해진 줄 알았던 감정들이 천천히 되살아난다. 그래서 나는 결국 이 길을 다시 걸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가 그리워서. 그리고 그리움 끝에서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확인하고 싶어서. 언제 또 이 길에 오게 될지는 모른다. 설령 다시 오지 못하더라도, 설령 언젠가 내 머릿속에 기억을 갉아먹는 벌레가 자라 이 길을 떠올리지 못하는 날이 온다 하더라도, 누군가가 나를 이곳에 데려다준다면, 그리고 그 순간 내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면, 나는 분명 이 길을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 길은 엄마와 함께 걷던 길이라는 증거. 그리고 그 기억만큼은 끝끝내 사라지지 않는다는 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