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생길에는 돌들이 있다는 걸 아는 것
인생의 길목에는 늘 크고 작은 돌들이 놓여 있다. 이 돌멩이들을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그 돌을 마주하는 이의 마음에 달린 일이다. 누군가는 절망적인 장애물로 여기고, 누군가는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다. 나는 늘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내 인생길에 놓인 크고 작은 돌들은 더러 나를 휘청이게 하는 걸림돌이었으며, 내 등의 짐이 되기도 했다.
오월 초 황금연휴, 가족과 함께 떠나려던 태안 여행 이틀 전의 일이다. 무심코 먹은 참옻순 때문에 전신에 빨간 두드러기가 돋아나고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이 몰려왔다. 병원에서는 옻순의 독성이 옻나무보다 강하며 증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과거 약물 알레르기로 응급실에 갔던 기억이 공포감으로 되살아났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아야 함에도, 내가 여행을 취소하겠다고 하자, '약골'인 나를 배려하기 보다 내 허약함에 실망하는 눈치였다. 나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하는 것에 미안해해도 모자랄 판에, 나는 오히려 나의 약함을 내세워 배려받는 것에 서운했다. 약한 것이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양, '나는 원래 약한 사람이니 너희들이 나를 이해하고 보듬어야 한다'고 큰소리를 친 것이다. 결국 나는 인생의 작은 돌멩이조차 디딤돌로 밟아보려 하기보다, 그 돌에 걸려 넘어지자마자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 전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 영숙이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주었다. 10년 전 남편의 사업 실패와 실직, 연이은 부모님의 병환을 감당하며 그녀는 늘 고군분투하며 살아왔다. 친정아버지를 홀로 부양하고 집안의 가장 노릇을 도맡았다. 주중에는 학습지 교사로,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억척스럽게 돈을 벌었다. 그녀에게는 휴일이란 없었다.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은 야간 근무 후 밀린 잠을 자는 시간이었고, 오후에는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하는 연속이었다. 친구들은 저러다 영숙이가 건강을 잃을까 걱정했다.
우리의 우려와는 달리, 그녀는 5년째 그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놀랍도록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했다. 물론 그녀에게도 인간적인 두려움은 있었다. 언젠가 단둘이 만난 자리에서 그녀는 "이러다가 암으로 죽은 언니처럼 나도 암에 걸리지나 않을지 두렵다"고 속내를 비추었다. 하지만 그 잠깐의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오뚝이처럼 자기 역할을 굳건히 해내며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힘들 때가 많았지. 그래도 당장 애들을 키워야 하고 아버지를 돌봐야 하니, 힘들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아." 영숙이의 덤덤한 목소리에는 지난 세월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지만, 그 고통을 이겨낸 강인함도 느껴졌다. 그녀는 인생의 고난을 그저 넘어져야 할 돌멩이가 아니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디딤돌로 기꺼이 여겼다.
물론 삶의 고통은 저마다 다르고, 그 무게 또한 쉽게 가늠할 수 없다. 소소한 질병의 불편함이라도 삶의 무거운 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영숙이의 삶을 보면서 깨닫는다. 누구에게나 있는 인생길의 돌을 누군가는 걸림돌로 여기고, 누군가는 디딤돌로 밟고 지나간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고통을 그저 피하고, 벗어나고 싶은 대상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그 고통에 갇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마치 발목을 잡는 족쇄처럼, 우리를 제자리에 묶어두고 끊임없이 괴롭힐 뿐이다. 하지만 고통을 성장의 기회로, 더욱 단단해지는 시련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고통은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 넘어졌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흙먼지를 털고, 힘찬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을수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작은 긍정의 씨앗을 마음속에 심고 싹을 틔워간다면 힘든 시간을 통해 우리는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